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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승가의 조건 ① -학회발표를 마치고-

승가 성립은 경계의 설정에서 비롯돼
결계 이뤄지지 않는다면 승가 아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비롯하여 5월은 특히 불교계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달이다. 불교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무렵에는 다양한 학회나 세미나가 열린다. 지난 주 토요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계율의 현대적 재조명’이란 이름으로 한 학회가 열렸다.

성문계와 대승계의 양립 문제, 율장과 종헌·종법과의 문제, 그리고 율장과 청규와의 문제 등, 주로 한국불교승가, 특히 조계종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율장에 비추어 재조명해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재가인들이 모여 경청하는 모습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계율에 관한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도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승가화합의 판단조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종합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를 받았다. 그것은 필자가 논문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다음 구절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불교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계(界, si ma), 즉 경계가 승가공동체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율장에 의하면, 승가의 성립은 경계의 설정〔結界〕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경계의 설정 없이는 승가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질문은,‘그렇다면 경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한국불교승가는 율장에 비추어 본다면 승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17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승가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자, 현재 승가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인 만큼, 필자로서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율장에 근거해서 보았을 때’라는 전제하에, 한국불교승가는 승가라고 보기 어렵다는 사견을 분명히 밝혔다. 그 이유는 화합승가의 기본 범위를 정하는 경계 설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더불어 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포살 등을 비롯한 화합갈마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상했던 대로, 학자들 사이에서도 스님들로부터도 많은 질문이 있었다.

“현전승가만 승가인가, 사방승가라는 개념도 있지 않은가?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한국불교는 물론이거니와 결계를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아 왔던 중국이나 일본의 모든 승가는 다 승가가 아니라는 말인가?”승가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에 따라 이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방승가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과거·현재·미래 이 지구상에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승가를 다 포함하는 이념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사문석자이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출가승들의 집단을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이 개념으로 승가를 이해한다면, 한국불교승가 역시 승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이 사방승가의 개념으로 승가의 본질을 논할 수 있을지 필자는 의문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율장의 조문들이 전제로 하는 승가는 사방승가가 아닌, 현전승가라는 점이다.

이 점은 필자에게 처음 질문을 던졌던 분의 추가 질문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것은 그 날 발표된 다른 논문에 기술된 율장의 조목을 보면 ‘바라이죄를 저지른 자에게 승가가 불공주(不共住)의 벌을 내려 추방한다. 혹은 승가가 승잔죄를 내려 별주시킨다’는 등의 표현이 있는데, 이 때 처벌을 내리는 승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핵심이 담긴 질문이다. 사방승가의 개념으로 승가를 이해한다면, 율 조문에 수 없이 등장하는 승가의 실체는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율장에서 승가 형성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되는 경계 설정의 본질적인 의미, 그리고 그 안에서 실행되는 화합갈마가 상징하는 바에 대해 좀 더 깊이 음미해 볼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계속〉

도쿄대 이자랑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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