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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섭 교수의 불교와 시간]⑧불교의 시간관3

기자명 법보신문

현실은 삼세 공존하는 중중무진의 세계

 
지금 보이는 세계가 그대로 현재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고, 수많은 다른 과거의 별들이 중첩되어 있는 세계라고 할 수도 있다.

유부 삼세실유설은 과학적
현재만이 실재라는 건 오류

아비달마 논사들의 첨예한 논쟁거리 중 하나가 삼세(과거·현재·미래)와 사물의 실재성에 관한 것이었다. 경량부는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고, 설일체유부는 “과거·현재·미래의 일체법은 실체적으로 존재한다[三世實有]”고 하여 팽팽히 맞섰다.

우리의 일상경험으로 볼 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흘러간다. 우리는 현재에만 살고 있는 것이고,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므로 오직 현재만이 실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너무 명백한 사실로 보이는데 왜 ‘삼세실유’같은 엉뚱한 학설이 나오게 되었을까? 상대성 시공간론에 비추어 이 문제를 고찰해 보자.

나에게 과거·현재·미래가 있듯이 내 옆 친구에게도 과거·현재·미래가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나의 현재가 내 친구의 현재와 같은 것일까? 이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물론 나의 시계 12시와 내 친구의 시계 12시를 다 같이 국가표준시계에 맞춰놓고 보면 두 사람의 현재가 같을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황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상대론에 의하면 달리는 시계는 흐름이 다르다고 되었으니까 내 친구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의 현재가 나의 과거나 미래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고 따라서 문제가 복잡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좀 더 과학적인 것으로 바꿔서, 지구로부터 10광년쯤 멀리 떨어진 별에 사는 친구 ET를 생각해 보자. 이 친구에 대한 소식은 빛으로 알려 와도 10년은 걸리고 다른 수단으로는 이보다 더 걸린다. 오늘 낮 12시에 그 별에서 친구 ET의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빛으로 막 알려왔다고 하자. 그럼 현재 ET동생의 나이는 몇 살일까? 그야 물론 10살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12시 현재와 저 별에서 ET동생의 10살 생일파티가 동시이고 우리와 같은 현재의 세계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생각은 나의 관점에서 세상사를 보고 있으며, 앞서 말한 경량부의 주장과 일치하고, 상대성 이론에서도 맞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상대론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고 일종의 편견이라고 말하고 있다. ET군이 자기 동생이 태어남을 보면서 광속 로켓을 타고 지구로 출발했다면 낮 12시에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ET군에게 “네 동생 몇 살이니?”라고 물으면 그는 “0살. 지금 막 태어났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에겐 ET동생의 출생이 10년 전 과거일이지만 그에게는 오늘 현재인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삼세(과거·현재·미래)로 구분하는 것과 그가 삼세로 구분하는 기준이 전혀 다른 때문이다. 달리 말해 우리에게는 ET동생의 생일파티는 현재이므로 실제로 있는 것이고, 그 동생의 출생은 10년 전 과거이므로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ET가 보기에는 자기 동생의 출생은 아주 조금 전 일이므로 사실상 거의 현재나 다름없고, 동생의 생일파티는 미래의 일이다.

상대론에서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은 운동하는 관찰자마다 다르므로 나에게 과거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래의 사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만이 실재다.”란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과거세계는 지나가서 없어졌고 미래세계는 오지 않았으니 없다는 것도 틀렸다. 따라서 상대론에서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건들의 전부를 함께 다룰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시공간의 통합이다.

‘설일체유부’의 ‘찰나생 찰나멸’과 ‘삼세실유’설은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학설이었고, 거의 궤변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상대론과는 거의 ‘부합여절’이라 할 만큼 세계관이 일치한다. 통합된 시공간에서는 삼세의 모든 사건이 함께 펼쳐져 있기 때문에 이를 통째로 보는 관점에서는 실로 삼세실유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시공간을 형성하는 요소를 사건이라 하는데, 이것은 한 점이기 때문에 그 길이가 없는, 진정한 찰나생멸이다. ‘법’이 존재가 아니고, 존재의 인식 ‘요소’라고 보듯이, 상대론에서 다루는 ‘사건’도 ‘사물’이 아니고, 사물을 형성하는 ‘요소’란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므로 ‘통합된 시공간상의 모든 사건’이 바로 ‘생멸하는 법의 삼세실유’를 생각했던 ‘설일체유부’의 주장과 상통한다.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하면 ‘4차원 시공간의 연속체 상에서 생멸하는 소립자들(TV화소의 켜짐과 꺼짐의 시간적 집합에 비유)’이 ‘삼세실유’에 해당하고 우리들이 인식하는 사물들(TV화면에서 우리가 보는 영상들에 비유)은 하나의 상에 불과하며 무아이고 무상인 것들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별들과 내가 함께 현재 이순간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머리로 생각해 보면 별들에서 온 빛은 가까이는 몇 년 전부터 멀리는 몇 천만 년 몇 억 년 떨어진 곳에서 온 것이니 내가 보고 느끼는 현재의 세계는 실은 수많은 과거가 중첩된 세계인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한다면 가까운 나의 주변 존재들도 모두 다른 시간대의 중첩이다. 그런데, 상대론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모두 현재의 세계이기도 하다. 몇 만 광년의 먼별에서 출발한 빛이 보여주는 소식 그대로가 지금 이곳의 나와 함께 ‘현재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머리로 생각하기 전의 느낌 그대로가 상대론적 관점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현재의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는 과거나 미래의 세계일 수 도 있으므로 ‘현재의 세계만 실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특수 상대론이란 좁은 관점에 한해서 고찰했는데, 일반 상대론까지 고려하면 위치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데, ‘현재의 세계’란 것이 제대로 정의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따라서 과거·현재·미래로 나누는 이 생각 자체를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승 ‘공(空)’사상의 시간관이 등장하는 것이다.

소광섭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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