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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보완 스리랑카]1. 불치사와 스리랑카 불자

기자명 법보신문

치사리 간직한 자부심으로
열강 침략 이겨낸 인욕 보살들

 
스리랑카 불자들은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부처님께 주로 꽃을 공양한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봐야할 50곳’ 중 41위로 손꼽힌 불교 국가 스리랑카. 지난 7월 짧은 기간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스리랑카 순례 기회가 찾아 왔다. 카메라와 운동화, 그리고 수첩과 펜 등 간단한 짐만 배낭에 담고 길을 나섰다. 꽉 찬 배낭엔 스리랑카를 담을 수 없으리라. 짐도 마음도 비운 채 스리랑카 순례에서 만난 그네들의 눈물과 희망으로 채운 배낭을 푼다.

길을 나선다. 낯선 땅 스리랑카로 향한다. 상좌부 불교 국가라는 짧은 지식만 갖고 나선 길. “안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풍경들에 대한 새로움과 두려움만 안고 간다. 비운 만큼 채울 수 있단 어설픈 용기와 희망을 가져본다.

인도의 끝 동남쪽에 있으면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이방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견뎌온 섬나라. 그리고 선포되지 않은 전쟁으로 불리는 내전의 위험과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쓰나미 해일의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스리랑카라는 지리적, 역사적 공간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 많은 위험과 상처들은 어디로 갔을까. 스리랑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평화로운 얼굴에 넉넉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고통과 평화가 공존하는 모순의 두 얼굴을 가진 나라 스리랑카. “아유보완(안녕), 스리랑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리랑카는 7월 7일 오전 11시에 인천을 떠난 낯선 이를 현지 시간으로 7월 7일 저녁 10시 30분이 돼서야 맞이했다. 현대 문명의 이기인 비행기를 이용했다지만 장시간의 여행에 몸과 마음은 쉬이 지쳤다. 툴툴 거리며 콜롬보 공항을 나서는 데 낯선 풍경에 정신이 퍼뜩 든다. 장총을 어깨에 둘러멘 군인, 검게 그을리고 곱슬곱슬한 머리를 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잦은 침략을 견뎌온 탓일까. 낯선 이의 방문을 쉬이 허락하지 않으려는 심산인가보다. ‘길에서 낯선 이를 만나고,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스리랑카 속담이 있다던데…. 낯선 이에 대한 아량과 넉넉함이 느껴지는 속담인데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그래도 스리랑카의 밤공기를 폐에 잔뜩 들여 마시는 것으로 낯선 땅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본다.

하루 세 차례 사리함 공개

다음날 부처님 송곳니 사리가 있는 캔디시의 심장 불치사(佛齒寺)로 향했다. 두 갈래로 나뉘어 길게 늘어선 줄에 호기심이 일었다. 1998년 불치사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타밀 반군 때문에 검문이 강화됐다고 한다. 다행히도 불치사 입구에서 폭탄이 터져 치아사리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고. 하지만 불교 신자인 싱할리족과 힌두교 신자인 타밀족의 대립으로 20년간 6만 4000여명이 숨졌던 아픔을 간직한 땅이라는 기억이 새삼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반면 검문을 마치고 불치사로 들어서니 부처님의 치아사리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불치사에 모셔진 치아사리는 AD 4세기 인도 남부 오릿사주 카랑카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모셔왔다고 한다. 부처님 치아사리를 처음 모셨던 곳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였으나, 1590년 다르마수리야 1세 왕이 캔디에 2층 사원을 짓고 사리를 모셨다. 이후 18세기에 나렌드라싱하 왕이 사원 주위로 해자를 파고 건물을 확장해 지금의 2중 구조를 완성시켰다.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진 캔디 불치사.

불치사 치아사리함은 스리랑카 동서남북 4개 지방에 떨어져 있는 장관 4명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 모여 각자가 가진 열쇠 4개를 사리함에 꽂아야 열린다고 한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시간도 하루 딱 세 번. 오전 6시와 11시 30분, 그리고 오후 6시 30분 공양을 올리는 푸쟈 시간 때뿐이다. 사리함에 봉안돼 있는 치아사리가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8월에 캔디서 열리는 사리 이운 축제 페라헤라로 1년에 딱 한 번 뿐. 황금으로 만든 연꽃 좌대에 모셔진 치아사리를 코끼리에 태워 캔디 시내를 도는 데 그 장엄한 광경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사리함 공개 시간이 다가오자 2층 법당에 올라섰다. 정작 사리함을 본다는 부푼 기대보다는 꽃을 공양하고 두 손을 모아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스리랑카 불자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 진중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민망할 정도다. 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아이를 안고 온 사람들, 노인부터 어린 아이까지 모두 숨을 죽였다. 내쉬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족들의 건강과 아이들의 학업성취, 그리고 내전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그들의 기도의식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꽃 공양을 올리는 스리랑카 불자들로부터 눈을 돌리니 법당 곳곳에 편하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네들은 법당서 들리는 독경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쌓는다고 믿고 있다. 법당이 공덕을 쌓는 복전이자 사랑방인 것이다. 주말이면 주말, 평일이면 평일, 하루 일과를 법당에서 마무리한단다. 염불, 108배 등 의식을 마치면 서둘러 법당을 빠져 나오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16세기엔 스리랑카를 강점했던 포르투갈이 부처님 치아사리를 빼앗아 파괴하려고 까지 했다는데 이를 지켜낸 그네들의 신심이 실로 부럽다. 그리고 “스리랑카 불자들의 마음은 늘 불치사가 있는 캔디를 향해 있다”는 말이 절로 실감났다.

드디어 다고바(탑) 형태의 사리함이 공개됐다. 7개의 사리함 속에 부처님 치아사리가 있다는데 사리함은 온통 황금이다. 화려한 목걸이와 장신구 등이 휘감겨 있었고 모두 옛 왕비들이 자신들의 장신구를 공양한 것이라고 한다.
어둠이 따가웠던 오후를 삼키자 밖에선 등 공양이 한창이다. 버터기름에 심지를 넣어 불을 붙이고 기도를 올리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모습과 바람에 춤을 추는 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리 저리 바람에 흔들거리며 주위를 밝히던 등불. 잦은 내전과 서양 국가의 침략으로 받은 고통에도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굳은 심지를 지닌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은 어두운 고통을 살라 먹고 평화를 밝히고 있는 것이리라.

요람서 무덤까지 사원과 함께

이쯤 되니 스리랑카 불자들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못 이겨 발가락이 절로 오므려질 정도였다. 가이드를 붙잡고 캐묻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매일 아침 불살생계 등 불자들이 지켜야할 오계를 암송하고, 모든 학교에서 ‘자비경’을 암송하며 자애명상을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불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집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는 가정도 많은데 대부분 불단에 음식을 공양한다. 12시 전엔 음식을, 12시 후엔 음료수를 공양한단다.
또 스리랑카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스님들은 아기를 위해 독경을 해 주고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글자를 배우려 할 때, 학교에 갈 때, 결혼을 할 때, 죽었을 때의 장례 등과 같은 의례 일체를 사원과 합의하에 해결한다. 불교와 그네들의 생활 자체를 도무지 뗄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지나면서 보이는 가게도 생선이나 고기를 잡아 파는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잠깐 과일 가게에 들렀다. 바나나는 노란색이 아니었던가! 붉은 빛깔의 바나나가 눈에 띈다. 1kg에 1달러란다. 꿀꺽 침만 삼키며 돌아서는데 동행했던 이가 불쑥 붉은 바나나를 건넨다. 맛이 아조 달다. 과일을 파느라 분주한 아저씨와는 달리 과일을 먹고 있는 낯선 이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아주머니와 아이의 시선이 재밌다.

풍성한 열대 과일을 자랑하는 과일가게. 붉은 색 바나나가 눈길을 끈다.

눅눅한 밤공기와 함께 불치사의 기억들을 한껏 들이마셨다. 크게 심호흡하다 잠깐 올려다본 하늘에 덩그러니 뜬 달이 시선을 유혹한다. 얼마나 배고픈지 볼이 옴폭 파여 있는, 밥그릇 같은 모습으로 달그락 대는 것 같다. ‘어서 네 마음에 스리랑카를 담아’라고 속삭인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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