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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칼럼]문 못 여는 국회

기자명 법보신문

국회, 구시대적 발상으로 대립만 일삼아
국가 이익 위해 양보-수용 미덕 갖춰야

몇 달 전에 이 자리를 통하여 신라의 경문왕의 혀와 귀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이 나라 백성의 입과 귀를 대신하여 나라 살림을 논의할 전당으로 가겠으니 ‘나를 보내 달라’는 외침이 한창일 때 소시민의 바람을 토로했던 것이다. 그 글의 결론을 되새겨 보면 이렇다.

‘경문왕의 귀가 긴 것은 백성의 말을 널리 들으려 함이요, 혀가 가슴을 덮은 것은 말을 할 때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훈계이다. 아울러 두 혀[兩舌]를 열 가지 죄악의 하나로 경계한 불교의 율법도 항시 마음에 새겨 ‘말 풍년’으로 늘어놓았던 공약들을 반드시 성취시켜 서민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능력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회가 열린 지가 두 달 이상을 흘렀는데도 아직도 실질적인 원을 구성 못하고 있다 하니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가벼운 걸음으로 투표소로 가서 신성한 마음으로 투표했던 이 소시민의 정성은 어디에서 보상 받아야 하나. 자신이 나라의 대의원이 되면 나라의 미래가 보장될 것처럼 화려했던 말 풍년이 이제는 ‘네 탓’이라고 상대방만 헐뜯는 ‘말 다툼’의 아수라장이 되고 있으니, 이 안타까운 꼬락서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국회란 글자 그대로 나라 백성의 의사를 대신하여 논의하는 국가 대의원의 모임이 아닌가. 이는 공인 중에서도 공인의 집합소이다. 말씨 몸짓 하나 하나가 국민을 대신하는 것인데, 선출해 달랄 때의 공약과는 거리가 먼 개개인의 이익 집단처럼 보인다면 나라의 살림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설혹 정당적 견해가 맞지 않아 대립되는 의견이 있더라도 나라의 살림을 보다 더 잘 해 보려는 충정이라면 이해와 설득으로 양보하고 수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국회 밖에서는 서로 상생의 정치를 하자 하면서, 의사당에 앉으면 상극의 대치로 기 싸움만 하고 있으니, 나라의 최고 의결기관인 국회가 동네 마을회관의 오손도손한 이웃 정만도 못하지 않은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 있는 것은 사람살이의 당연함이다. 사람이란 1에서 무한으로 확대되는 집합명사이고, 집합은 최소한의 1:1로 시작되는 것이니 모이면 다른 두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이는 동물의 기본 동작을 일으키는 두 다리와 두 날개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대립되는 두 집단을 좌익 우익이라 하여 새의 두 날개로 비유했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이념적 두 축으로 인용되면서 영원히 일치할 수 없는 대립처럼 비쳐진 것이 그 동안의 사정이다.

그러나 대립되는 두 날개가 없으면 새는 날지 못하듯이 남이 없으면 나 또한 없는 것이다. 내게 이로우려면 남에게 이로움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신라 원효의 사상인 ‘화쟁(和諍)’이 돋보이게 된다. “온갖 다른 논쟁을 조화시키자(和百家之異諍)”의 준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동과 지혜의 고른 갖춤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行智俱備 如車二輪 自利利他 如鳥兩翼)”

좌우익은 새의 두 날개이다. 두 날개가 한 몸통을 운행시킨다. 이념적 대치의 좌우익이 의미 없는 시대가 되는데, 한 의사당에 앉아서 구시대적 발상의 대치로 허송세월을 한다면 어느 세월에 선진국의 대열에 들 것인가. 국회의원들이여, 의사당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왼발이 앞서면 오른 발은 뒤에 있고, 다시 오른 발이 앞서면 왼발이 뒤에 있는 한발작의 걸음에서 양보와 수용을 느껴, 자리에 앉거든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조금 전의 발걸음을 되새겨 큰 틀의 미덕을 보이시오.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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