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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승 기자의 아유보완 스리랑카]4. 보리수와 보리수 신앙

기자명 법보신문

2300년 희로애락의 숨결을 더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 주변에는 꽃과 코코넛 등의 공양물이 눈에 띄었다. 옆으로 뻗어 황금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는 나무가 최초 보리수.

학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맑은 마음을 지닌 이에게 그 영혼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득 채워주는 것이 깨달음 아닐까. 한 치의 의심 없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 앞에 문득, 가을바람에 이는 황금빛 물결이 전하는 풍요로운 향기가 밀려든다.

온갖 특혜를 누릴 수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다. 인도 아쇼카 왕의 딸이었던 그녀는 공주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세간의 모든 일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온 우주의 법계가 모두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리고 부왕의 명을 받고 전법의 길을 나섰다. 기원전 3세기경 비구니 11명과 오빠 마힌다 스님이 먼저 떠났던 스리랑카라는 섬으로 향했다. 부처님이 일대사를 해결했던 인도 부다가야 보리수 가지를 품에 소중히 간직한 채.
스리랑카 불도 아누라다푸라에서는 우거진 보리수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스리랑카에 비구 승가를 설립했던 마힌다 스님의 누이동생 상가미타 스님이 보리수를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심은 후 여러 곳에 옮겨 심은 탓이다.

아누라다푸라엔 상가미타 스님이 가져왔다는 그 성스러운 보리수를 직접 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스리마하보디(성스러운 보리수) 사원이라 일컬어지는 보리수 사원이 그곳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이 사원을 목숨처럼 여긴다.

 
갖가지 소원을 적은 천이 나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스리랑카 신심의 근원 보리수

보리수는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일으키고 전파한 아누라다푸라가 불도로서 그 자격을 갖추게 된 상징이었고, 상가미타 스님이 왕비와 많은 스리랑카 여인들을 출가시켜 비구니 승단을 만든 시발점이기도 했다. 당시 아누라다푸라의 왕이던 데바남피야 티샤 왕이 상가미타 스님에게 직접 보리수 가지를 받아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드가야의 보리수는 말라 죽었고,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은 다시 보리수를 살리기 위해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서 보리수 가지를 가져다 그 자리에 심었다고 하니 스리랑카 불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신성하게 여기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켜본 보리수는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임을 불자들에게 상기시키고, 불사리처럼 주위를 청정하게 하는 힘이 있으며 마장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져 왔다.

보리수 사원은 사방이 순백의 벽이다. 한 가운데 상가미타 스님이 가져온 보리수가 싱그러운 초록빛을 내고 있었고, 그 보리수의 주변에도 많은 보리수가 우거져 있었다. 보리수 앞에서는 꽃이나 코코넛 등의 공양물들이 눈에 띄었다. 축대가 설치돼 있어 보리수를 직접 만져본다거나 할 순 없었다. 그러나 상가미타 스님이 가져왔다던 보리수는 스리랑카에서 남방불교가 퍼져나가듯 축대 밖으로 그 가지를 뻗고 있었다. 언뜻 보니 한 나무 같다. 옆으로 크게 뻗어있는 가지가 상가미타 스님이 가져온 보리수이고 위로 곧게 뻗은 나무는 그 이후의 것이란다. 기원전 3세기경에 가져온 보리수는 그 가지를 황금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에 기대고 있는 것이리라. 보리수로 인해 스리랑카 불자들은 부처님이 전한 법을 믿고 따르게 되지 않았던가.

그 나뭇잎을 잠깐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다. 만지고 나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수상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도둑 마냥 슬금슬금 손을 내밀어보지만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리수 잎사귀를 함부로 떼어 가거나 만지면 안 됩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보리수를 매우 신성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고개를 홱 돌리고 툴툴거리다 시선을 떨구니 땅에 떨어진 보리수 잎사귀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은밀한 유혹은 달콤한 법. 그래도 소심한 성격 탓에 만져보기만 하고 말았다.

수령이 2300여 년이나 되는 보리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스리랑카 불자들과 많은 역사를 함께 해오며 자연스럽게 그네들의 신앙 중심에 자리했다. 보리수가 스리랑카에 오기 전 스리랑카 사람들은 큰 바위나 나무를 보며 기도를 해왔다. 동네 마을 어귀의 큰 나무에 기도를 했던 우리의 옛 모습과 다름없이 말이다. 보리수 사원을 찾은 날도 여전히 많은 스리랑카 불자들이 인등과 꽃을 들고 보리수에 공양올린 후 마음을 모아 합장한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갖가지 서원과 소원을 적은 천이 나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뭐가 적혀있는지 물었더니 가족들의 건강이나 시험 합격, 승진 등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네들의 정성스러운 기도를 보고 있노라니 괜히 숙연해진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새벽마다 처음 길은 우물물을 장독대 위에 놓고, 그 정화수 안엔 새벽달을 띄우고 손이 닳도록 자식들의 평안을 기도했던 그 간절함. 꼭 그것이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눈엔  스리랑카 불자들의 모습이 미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눈물겹게 아름다울 따름이다.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다. 빌고 또 빌면 자식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질거란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해 부처님의 삶을 닮고자 하는 모습들은 고스란히 환희심으로 돌아올 것이다. 전통대로 스리랑카 스님은 이 보리수 앞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촛불을 밝히고 염불을 하며 세계평화를 기원 드리고 불자들은 언제든 이곳에 달려와 기도한다고 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보리수에서 의식을 봉행하기도 한다. 스리랑카 불교명절 중 5월 석가탄신일 ‘베삭’ 다음으로 6월 보름에 봉행되는 보리수 공양 의식 ‘포손’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날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작은 의식도 있지만 6월 보름엔 ‘포손’ 의식을 치른다. 각종 위험이나 재난, 질병과 액으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해 보리수에 물을 붓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보리수로 부처님을 대신하기 보리수 앞에 차, 과일, 꽃, 향과 같은 공양물을 올리고 스님이 읽어주는 게송과 시 등을 따라하면서 기도를 올린다. 이 날은 수천 만이 이 축제에 참가하는 날이다. 스님을 모시지 않고도 시간이 나는 대로 보리수에  물을 부으며 게송을 읽는데 자녀들의 시험, 승진 등 일상에서의 여러 소원들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보리수 사원 주변에는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경전을 읽는 스님과 불자들이 있었다.

6월 보름 ‘포손’ 축제 수천만 동참

이런 연유로 스리랑카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보리수는 왕실의 소유였고 왕권으로 지켜졌다. 어느 스리랑카 왕이 늘 보리수 앞에서 정근하며 시간을 보내자 분개한 왕비가 보리수를 싹 베어 없앤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무보다 뒷전인 자신을 보며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었을까. 이 웃지 못할 사연이 전해지지만 다행히 뿌리에서 새싹이 나와 오늘날까지도 싱그러운 보리수 잎사귀가 방문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보리수 사원을 나섰다. 높이 55미터에 달하는 루완웰리세야 대탑이 자석처럼 호기심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사원을 나오니 주변에는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경전을 읽는 등 그네들의 풍경은 소풍 나온 것처럼 단란해보였고 고즈넉했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구도의 치열함과 숭고함은 잠시 접어두자. 그 길에 이르는 길은 노래 부르며 가든 울면서 가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과 부딪히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화해하며 살아가는 길. 현재 이 순간들의 놀라움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들을 지나가면서 영원을 표현하고 영원한 참 나의 아름다움을 찾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도달하는 일정한 규칙이란 없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이 깨달음이다. 학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맑은 마음을 지닌 이에게 그 영혼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득 채워주는 것이 깨달음 아닐까. 한 치의 의심 없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 앞에 문득, 가을바람에 이는 황금빛 물결이 전하는 풍요로운 향기가 밀려든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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