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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승 기자의 아유보완 스리랑카]5. 호국불교와 내전

기자명 법보신문

아물지 않은 상처서 발견한 순백의 희망

 
아이를 안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꽃과 갖가지 과일을 함께 든 청년들 등등. 모두 하얀 사리를 입고 루완웨리세야 대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누라다푸라의 6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라의 발전과 내전이 하루 속히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숙연할 따름이다. 아누라다푸라에 우뚝 솟은 순백의 루완웨리세야 대탑은 경이로웠다. 5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탑. 가까이 할수록 탑의 위엄은 순례자를 한 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다. 고개가 아팠다. 합장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경건하지 못한 순례자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숙일 수밖에. 처음 루완웨리세야 대탑이 건축될 땐 그 높이가 110미터였다고 하니 그 웅장함을 가히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장엄함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순백의 루완웨리세야 대탑에는 침략과 정복, 항전이라는 핏빛 역사 그리고 호국불교의 기치를 세운 성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탑이 온몸으로 간직한 그 역사를 더듬어본다.

창 끝에 佛 사리 담고 전쟁…불교 수호

기원전 2세기경 어느 날. 무수한 코끼리들의 발자국 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이 아누라다푸라를 침략한다. 아누라다푸라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바람을 타고 땅의 울림을 타고 살육의 칼날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었다. 왕국에서 기쁨과 환희의 소리는 점차 사라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여인네들의 비명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 했다. 백성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눈빛은 생기를 잃어 갔다. 아누라다푸라의 쪽빛 하늘은 이미 핏빛으로 물들었다. 당시 아누라다푸라의 통치자였던 둣타가마니 왕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백성들의 생명과 나라의 멸망, 더불어 불교의 소멸 등등.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직감했다. 둣타가마니 왕은 나라의 모든 신료들과 백성들 앞에서 전쟁을 선포한다. “나, 여러분의 왕은 이제부터 왕조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겠다. 이것이 너희들의 왕, 내가 내리는 명이다.” 일순간 불교를 믿는 백성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부처님의 법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왕은 창끝에 부처님 사리를 넣고 선두에 섰다. 결국 아누라다푸라는 불법을 수호하고야 만다.

 
높이 55미터에 이르는 순백의 루완웨리세야 대탑.

그러나 전쟁에 승리하고도 둣타가마니 왕은 기쁘지 않았다. 살육의 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로인해 몹시 괴로웠다. 이생의 인연이 다해가자 왕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순백의 탑 불사를 결심한다. “내 업장이 두꺼운 만큼 높은 탑을 세워 그들을 위로하리라.” 이윽고 110미터 이르는 루완웨리세야 대탑 불사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사다팃사 왕자는 아버지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공사에 박차를 가했다. 허나 이미 아버지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사다팃사 왕자는 대나무와 흰 천을 모았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탑 모양을 만들었다. “아버지. 탑이 완성됐습니다. 어서 눈을 떠 탑을 보십시오. 수천, 수만의 영가들이 순백의 탑에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왕자는 침실 창문을 열어 탑을 보였다. 쇠잔해진 기력과 시력마저 흐릿해진 왕은 아련히 탑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왕자는 순간 엷게 퍼지는 아버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루완웨리세야 대탑 입구에는 둣타가마니 왕의 동상이 있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눈길을 하염없이 탑을 향해 보내고 있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자니 참 처연하다. 그러나 간절했다.
탑을 올려보다 목이 아파 절로(?) 고개를 숙이니 스리랑카 불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얀 사리를 입고 앉았다. 눈 한번 뜨지 않았다. 그 엄숙한 경계에 가만히 발을 디뎠다. 옆에 가만히 서 본다. 꿈쩍도 않는다. 부처님이라도 감탄하고 남을 지경이다. 그들이 눈치 채지 않게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셔터 소리에 놀란 건 오히려 순례자였다. 혹여 방해됐을까 황망히 발을 돌렸다. 탑돌이를 한 후 루완웨리세야 대탑을 등지고 차로 향하다 입구서 재미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어느 노 비구니가 뙤약볕에 앉아 있는데 슬금슬금 삐쩍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삐쩍 마른 고양이와 비구니의 시선이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볕을 피해 비구니의 그늘에 당당히(?) 들어온 고양이. 먹을 것 찾다 지쳤는지 도통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래 잠시 더위를 피하렴. 잠시 생을 위한 몸부림을 내려두렴. ’‘그래요 스님. 오랜 고행 잠시 놓고 쉬세요.’

대탑 주변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여기저기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아이를 안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꽃과 갖가지 과일을 함께 든 청년들 등등. 모두 하얀 사리를 입고 루완웨리세야 대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낯설다. 탑을 찾는 그네들의 평온한 웃음이, 행복한 표정들이 낯설다. 지금도 스리랑카 북부에선 선포되지 않은 전쟁, 타밀반군과의 내전은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있지 않던가. 2006년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군사병원에 임산부로 가장한 여성 테러범이 육군 사령관이 탄 차량으로 뛰어들어 자폭한 끔찍한 일도 있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얘기는 충격이었다. 아직 또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놀아야할 아이가 자살 폭탄테러를 훈련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겨우 열네 살이지 않은가. 더구나 여자아이란다. 한국 돈 20만원에 팔린다고 한다.

어린 영혼들의 죽음을 사고파는 선포되지 않은 전쟁. 스리랑카 내전은 지난 20여 년 동안 7만 명에 이르는 무수한 희생자들을 피의 제물로 바쳤다. 안타까운 생명들이 부질없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 스리랑카의 타밀 족은 19세기 후반 영국이 식민지 인도로부터 남인도로 이주시킨 민족이며 힌두교를 믿는다. 이들이 스리랑카로 대거 들어온 계기는 바로 홍차 농장에 필요한 인력 때문이었다. 홍차에 우유를 타 먹는 것을 즐기는 순례자에게 이 사실은 달갑지 않았다. 이 시점을 계기로 스리랑카 다수 민족인 싱할라 족이 불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호국불교와 같은 맥락으로 봐야할까. 결국 1948년 2월 스리랑카는 독립했지만 독립 후 주요 권력을 다수의 불교계 싱할라 족이 차지했고 소수 힌두계 타밀족에 대해 1972년 국명을 타밀어인 국호 ‘실론’에서 싱할라어인 ‘스리랑카’로 바꾸는 등 차별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타밀 족의 분리독립운동이 시작됐다. 이 긴 싸움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7월.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결성되면서 대규모 반정부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종족 간 갈등 불심으로 정화

호국불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순백의 루완웨리세야 대탑. 한편 스리랑카의 호국불교는 자국의 소수민족뿐만 아니라 자국민에게 큰 아픔을 주고 말았다. 그러나 루완웨리세야 대탑을 순례하던 날 탑에 모여든 스리랑카 불자들은 하나 같이 평온해보였다. 이유인 즉 아누라다푸라의 6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라의 발전과 내전이 하루 속히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월 보름이나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6월 보름 외에도 수시로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호국불교라는 그네들의 모순된 민족주의를 다시 불교의 힘, 신심의 힘, 기도의 힘으로 정화하는 것이리라. 핏빛을 감춘 순백의 탑에서 낯선 희망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뙤약볕에 앉아있는 노 비구니 그늘에 슬그머니 몸을 숨기는 고양이.

“매일 아침 당신에게 8만 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날 그 통장에서 꺼내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날 밤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그날 모두 사용하려고 애쓰시겠지요. 8만 6400원은 다름 아닌 매일 아침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 8만 6400초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하루라는 선물을 또 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더글라스 아이베스터 코카콜라 전 회장이 어느 해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한 얘기다. 우리는 오늘 아침 하루라는 선물을 또 받았다. 하루 300초, 5분이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한 창가 먼지를 닦을 수 있고, 책상을 정리할 수 있고, 히말라야 설산을 목숨 걸고 넘는 티베트 아이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고, 중국 쓰촨성 지진 때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아이라도 살려보고자 아이를 안은 채 발견된 어머니의 마음도 어루만질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할 수 있다. 오늘 우린 누구를 위해 기도 했는지 되물을 일이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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