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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맑고 투명한 삶 사는 하림 스님

가까이 하고 싶었던 스님 소식 전해 들으며
귀한 인연 이어가지 못하는 내 모습 참회

절에 살다보니 기억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도들과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언젠가 명함을 정리하다가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당시 마치 수많은 생을 서로 그리워하다가 만난 듯 의기투합되어 영원히 함께 할 것같이 차를 마시고, 같은 취미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의 명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망각의 술이라도 마신듯 완전히 잊혀진 듯 살아가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화를 해봤다. 그 사람도 어제 일같이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현실적인 삶은 아름다운 인연의 끈을 마치 가녀린 연뿌리가 끊기고서야 이어지는 가는 연실처럼 만들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화를 끊고 어쩌면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제는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인연 앞에 조금은 겸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절의 새로운 운영지침이 필요해서 정했다. 선연호지(善緣護持)! 우리말 표현으로 ‘아름다운 인연 잘 이어가자’라고 했다. 정말 처음 절을 지으면서 열렬히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선연들과의 인연을 다시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두루 살펴보다 보니 정말 아름답고 가슴 뭉클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림 스님이 책을 내셨다. ‘하림이예요’ 정말 처음 책을 대하면서 엄청 놀랐다.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선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진 듯했다. 우리는 언제나 좀 더 단순하게 살자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일상은 언제나 번잡하고, 주변은 언제나 너절하기만 한데, 스님은 정말 책의 모습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너무나 단순했다. 단순한 말투, 담백한 내용, 다정하고 더없이 친근한 미소, 처음 본 사람이면 누구나 흠뻑 빠지고 말 것 같은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니셨다.

그런데 스님께서 부산 광복동 미타선원 주지가 되신다고 했다. 그전 두 번의 주지 스님을 잘 아는 터라 앞날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내심 많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완전한 기우였다. 스님은 운영방식이 너무나 단순했고 분명했다. 또한 어쩌면 그토록 간결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가지셨는지 소임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심 한가운데에 적합한 여러 신행방법을 발굴하고 이끌면서 면면히 꾸려져가던 사찰을 도심의 수행 문화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처음 만나고 헤어져 가는 스님을 바라보면서 오래토록 자주 연락하면서 가까이 지내고 싶었고,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내 맘속에 참으로 아름다운 사문의 이미지를 던져 주었던 스님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전화마저 제대로 못 드리는 것 같다. 너무 일상의 번잡함 속에 묻혀 살고 있는 것 같다. 스님의 책을 들고, 그 디자인과 펼쳐지는 이미지 컷만으로도 스님 삶의 간결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스님이 현재 비쳐지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의 이력을 고스란히 현재의 삶에 담아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하림 스님을 생각하다보면 해맑은 의식과 투명한 현재의 삶이 과거의 잔상을 여과 없이 그대로 투영해 나타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다른 사람이 가지는 자신의 이미지는 고사하고 나 자신도 스스로를 바라보면 정말 오리무중인 것 같다. 불교는 자신을 찾는 종교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하고 수행하여야 하림 스님처럼 맑아질 수 있을까? 아마 스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길을 따로 고민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서귀포의 맑은 물속 마냥 언제나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살아가시니까 말이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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