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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배려-한 번 인연, 평생 불자로 만든다”

기자명 법보신문

[新사찰패러다임_낙산사서 찾는다] ⑤ 찾아오는 사찰 만들기

 

‘1회성 인연을 평생 불자로 만들자.’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잠깐 들렀다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에게도 불교를 알려 평생 불자로 만들어야 된다”고 역설했다. 낙산사가 찾아오는 사찰을 만들기 위해 설치해 놓은 지압로〈사진 위〉와 무료 커피 자판기〈사진 아래〉.

“이거 정말 되는 거야?”
“그런가보네, 여기 무료라고 써 있잖아. 한 번 눌러봐.”
“어? 진짜로 나오네. 와 이거 정말 좋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낙산사 보타락 아래서 커피자동판매기 한대를 둘러싸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함껏 터져 나온다. 자동판매기 옆에 붙어있는 ‘커피 한잔의 여유, 무료입니다’라는 문구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자동판매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톡’하고 따끈한 커피 한 잔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오자 그제야 활짝 웃음을 터뜨린다.
“낙산사는 전에도 온 적이 있지만 몇 해 전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처음 와 봤어요. 가족들과 함께 낙산해수욕장에 놀러왔다가 무심코 들렀는데, 입장료도 받지 않고 이렇게 커피까지 무료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여행을 좋아해서 사찰도 자주 찾는 편이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인천에서 낙산사를 찾아왔다는 윤선영(43) 씨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윤 씨는 기와 한 장을 골라 ‘낙산사가 아름답게 복원되길 바라며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적어 놓고는 가족들과 함께 가벼운 발길을 옮겼다.
고작해야 원가 50원짜리 자동판매기 커피 한 잔. 그 작은 배려가 낙산사를 찾는 이들로부터 이렇게 많은 웃음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낙산사 측도 처음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껏 낙산사의 무료 커피를 즐긴 인원만도 10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니 이들의 미소가 연중 낙산사에 가득하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2005년 화마 직후 입장료 폐지

문화재관람료사찰이었던 낙산사는 2005년 화마 직후 입장료를 폐지했다. “낙산사를 사랑해주신 국민들과 낙산사 화마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입장료를 폐지한다”는 주지 정념 스님의 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찾아온 여름휴가 철, 낙산사에서는 연중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이 시기 매일같이 공양간에서 점심 무료 국수 공양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무료 공양은 이후로도 계속 돼 지금까지 50만 여 명 이상이 낙산사에서 무료로 공양을 했다.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첫 손에 꼽히는 낙산해수욕장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낙산사는 그 어느 사찰 못지않게 관광객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양양 뿐 아니라 강원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보니 사찰은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대부분은 관광객. 그러다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전략은 낙산사가 풀어야할 오랜 화두이기도 했다. 혹자는 “관광객이 많으니 입장료만 받아도 사찰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며 낙산사를 ‘관광지’로 규정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낙산사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낙산사를 영동지역 최고의 포교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옹골찬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료 커피 한 잔이 평생 불연으로

“중년층 가운데는 어려서 할머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따라가 비빔밥 한 그릇, 국수 한 그릇 먹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기억 속 사찰은 작고 소박했지만 인정과 인심만큼은 늘 넉넉하고 따뜻한 곳이었지요. 어려서는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것이 불교의 자비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박한 비빔밥 한 그릇, 국수 한 그릇으로 인연을 맺어 불자가 된 이들도 적지 않고, 비록 불자라고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찰과 불교에 대해 친숙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불교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낙산사에서는 바로 그러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자 합니다. 국수 한 그릇을 공양한 어린이들 기억 속에 낙산사와 불교는 그런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또 낙산사를 찾은 모든 이들이 불자이거나, 혹은 타종교-무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사찰과 불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포교의 첫 출발이 될 것입니다.”
“한 번 인연을 평생 불자로 만들자”는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비록 잠깐 들렀다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에게조차 불교를 알리고 전하는데 소홀하지 않겠다는 포교 신념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의지는 낙산사 곳곳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변화의 모습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낙산사유스호스텔을 지나 홍예문에 이르는 낙산사 진입로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 하나 더 생겼다. 동글동글 매끈한 자갈과 갖가지 모양의 돌들로 만들어진 지압로가 바로 그것. 일주문을 들어선 이들이 신발을 벗고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발바닥이 지압돼 피로가 풀리는 이 지압로는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동시에 편안한 사찰,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사찰의 느낌이 전해지는 것도 보이지 않는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곳곳에 벤치-지압로-쉼터 마련

낙산사 경내 곳곳에는 벤치가 설치됐다. 원통보전 앞 동해바다와 해수관세음보살상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는 작은 소나무 군락지 사이에 설치된 벤치는 낙산사의 일등 전망대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향긋한 솔향과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무그늘 아래로 스며들 때면 “한 번쯤 이런 고찰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닦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누구나 가져보곤 한다.

의상기념관 옆 다례헌도 낙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다례헌에는 잘 정돈된 잔디위로 벤치와 테이블이 설치돼 있다. 홍련암과 의상대를 돌아 내려온 불자들은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벤치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실 수도 있고 그냥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갈 수도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모두 낙산사가 사찰을 찾아온 불자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 공간인 셈이다.

“사찰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쉬어갈 수 있는 의자 하나, 차 한 잔을 대접하는 작은 배려와 친절을 베푼다면 굳이 불교의 교리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신행을 강조하지 않아도 은은한 향기가 몸에 배이듯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향기가 스며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정념 스님은 “휴가철, 주말, 각종 행사 등 시기와 지역 특성에 맞춰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작지만 필요한 것을 준비해주는 배려가 이뤄진다면 단 한번 사찰을 찾은 이들과도 불연을 맺는 귀한 결실이 이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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