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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소장의 미국의 茶를 마시다]①다양한 삶의 공존 지역

기자명 법보신문

비만 사회문제 대두 속 차문화 크게 부각

 
치소스 산 장중한 봉우리 사이로 저녁노을이 장관이다. 붉은 암반사이로 구름 층이 아름답다.

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13일까지 텍사스 알링턴을 시작으로 보스턴, 뉴잉글랜드 지역 등 유명 경승지를 답사했다. 자동차로 장장 1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통해 박 소장은 차가 웰빙의 대표 주자로 각광 받는 현시점에서 미국 내에서 차에 대한 이해 정도와 함께 답사 지역의 물이 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층적인 조사를 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미국에서 차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일상을 탈출하여 떠나는 여행은 묘한 긴장감과 함께 설렘이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여 댈러스로 가는 길, 경비를 절약할 양으로 선택한 노선이다.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다리를 펴기에도 여유롭지 않다. 몸은 천근인데 머릿속은 긴장한 탓인지 팽팽하다. 눈을 감고 미국에서 할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상상의 날개는 이미 지루하고 부자유한 공간을 벗어나 푸근하고 여유로운 세계로 접어들어 꾸벅꾸벅 잠 속을 헤매고 있다. 얼마가 지났는지,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 부스스 눈을 떠보니 벌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단다. 잠결에 수만리를 날아온 것이다. 서둘러 댈러스로 가는 국내선 소형 비행기를 탔다. 수더분해 보이는 여 승무원들이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팔고 있기에 무려 5달러나 하는 스낵세트를 주문했다. 달랑 들어 있는 건 바싹 마른 빵 몇 조각과 너트로 만든 과자 그리고 크림치즈뿐, 어찌나 간단한지 공연히 쑥스럽다. 댈러스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된 셈. 검색대를 어렵사리 통과하고 나오니 함빡 웃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보고나서야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차의 연구는 물에서 시작

다음 날, 우리는 휴스톤에 있는 나사 본부로 향하였다. 도로가에는 오래된 나무와 잘 정비된 잔디, 붉은 목백일홍이 화사하다.
잘 닦여진 고속도로변, 주유소 곁에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커피, 탄산음료들, 아이스 홍차까지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홍차를 시켰더니 달달하게 설탕을 넣은 것을 가져왔다. 홍차의 떫은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약간 촌스럽고 어설프다. 아마 단맛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것이리라.

이것은 최근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미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음료란다. 비만이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생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대체 음료로써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니 반가운 일이다. 잠깐 동안의 휴식에서 얻은 첫 수확, 홍차의 새로운 기능성이다. 다시 차를 달려 도착한 나사본부는 허허로운 벌판에 있다. 창문이 거의 없는 건물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아 보인다. 다만 과학의 집적이라는 우주선은 규모나 위용이 인간의 꿈만큼이나 크고 견고해 보였다.

다음 날 우리는 치소스 산맥에 있는 빅밴드 내쇼널 파크로 길을 재촉했다. 마치 요새처럼 생긴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사막지역 특유의 선인장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은은한 꽃 향이 싱그럽다.

검붉은 돌산에서 풍기는 기세에는 또한 사람을 압도하는 위용이 있다. 여기에 유명한 약수가 있다하여 안내소에 물어물어 약수를 찾았더니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다. 빈 페트병에 약수를 담아 물을 맛보았다. 혹하고 느껴지는 유황 냄새,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물맛, 물의 기세가 장대하다. 분명 좋은 약수의 규모를 갖추었다.

이 산의 바로 밑에 숙소를 정하고 아쉬운 대로 전기밥솥에 물을 끓여 차를 다렸다. 혀끝이 다소 묵직하게 와 닿지만 촉감은 실크처럼 보드랍다. 차의 후향(後香)이 여울물처럼 밀려온다.

오묘함은 알아차리는 이의 몫

 
대형마트의 건강 식품 코너. 수 많은 먹거리 속에 그린티와 홍차가 보인다.

명나라 서위(徐渭)는 『전다칠류(煎茶七類)』에서 “차가 입에 들어가면 먼저 깨끗이 씻어진다. 그 다음 다시 천천히 마시면 달다가 혀끝에 향기 일렁이니 곧 차의 진미를 얻은 것이다.(茶入口 先須灌漱 次復徐 俟甘津潮舌 乃得眞味)”고 하였다. 오묘한 찰나의 경지는 알아차리는 자들의 몫이다. 어디를 가든지 다구와 차를 챙기는 버릇은 때로 이런 묘미가 있어 좋고 긴 여행의 피로와 다소 권태로운 기분을 전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차의 연구는 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론은 옛 사람들도 누누이 언급해 왔던 것이다. 필자가 경험해 본 미국의 물은 대개 무겁고 짜다. 막 청년기로 들어선 대지의 설익은 기세가 품고 있는 미숙한 풋 맛이 들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동춘 소장은
1953년 충북 진천생인 박 소장은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한학 사사를 받고 초의 스님의 종법손인 응송 스님(1893~1990)에게 초의스님의 제다법을 전수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현재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소 소장으로 세계인들의 차문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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