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홍 박사의 新 교상판석]16. 세컨드 라이프와 정신세계
[연제홍 박사의 新 교상판석]16. 세컨드 라이프와 정신세계
  • 법보신문
  • 승인 2008.10.2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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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가상세계와 불교적 화엄세계
가상에서나마 물질의 집착 벗어나야

인터넷의 확산으로 우리는 전 세계의 정보망이 시공을 넘어서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인터넷으로 지구저편과 화상대화를 하고 시장에 가지 않고도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그뿐인가! 조만간 학교에도 출석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거나,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재택근무 하는 새로운 생활패턴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터전과는 달리 가상공간 내에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생활을 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성립되었다.

다시 말해 가상공간 내에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이용하여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얻는 등 현실과 동등한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린든 랩(Linden Lab)에서 개발한 세컨드 라이프라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 세계로 2003년에 시작되었다. 이렇게 세컨드 라이프에서 만든 모든 아이템은 개인 소유의 지적재산권이 부여되고, 또한 실제의 돈으로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세계와 공존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가상의 화폐인 린든 달러(Linden dollar)가 통용되고 있으며, 이는 환전소에서 실제 화폐인 달러로 교환이 가능하며 환율이 변동된다. 이제 더 이상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별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모든 정보와 행동반경이 시공간을 넘어서 순식간에 교류되는 것은 불교인에게는 그리 낯설지가 않다. 불교에서는 개인을 넘어서 대승적 화엄세계의 불보살까지 다양한 차원의 의식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왔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다양한 의식세계를 경험하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단지 오감의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더 넓고 광대하고 정밀한 정신의 세계를 인식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화엄학에서는 마음의 세계는 인드라망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보살은 수없는 몸으로 나투며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와 우주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거대한 무선 우주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각과 동시에 입체적 형상을 공간에 창출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듯이 나와 컴퓨터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우리 각자는 이미 마음이라는 개별적인 가상세계에 존재하며, 이러한 가상세계를 통하여 다른 사람 및 존재들과 상호간에 정보교류를 하여 거대한 연합 가상세계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삼계유심소현(三界唯心所現)이라고 말한다. 즉 개인적 차원에서도 자기세계를 마음에서 만들지만,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거대한 세상도 역시 개개인의 마음이 상호 중첩된 결과로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상호 연기적인 상황을 불교에서는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더불어 사는 삶인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표현한다.

앞서 언급한 세컨드라이프라는 가상세계가, 미래의 새로운 경제활동을 창출하리라는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21세기의 고도로 발전된 물질문명의 발전상에서 정신의 피폐함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새로운 경제활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그렇게 물질에 집착하고 끌려가야하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상세계에서만이라도 정신문명이 주도하여, 그간 뒤 안보고 달려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통 생각이 몸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으로 운영되는 가상세계가 화엄 불보살의 동체대비로 충만하다면, 이는 필시 몸인 현실세계에 불국토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는 『금강경』 사구게의 마지막구절에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일체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짐을 알라는 말이 될 것이다.

연제홍 영국 뉴캐슬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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