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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언제나 당당하신 적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늘 무소유 실천하며 걸림없이 사셨던 수좌
꾸미지 않아 담백했고 욕심없어 당당했던 스님

영가 천도문제로 번뇌하는 스님이 있었다. 출가사문이 되어서도 속가 가족의 천도를 성실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 스님께서는 천도의식이 있을 때마다 항상 동참하고 자신의 출가 전 조상들을 천도시키기 위해 특별히 기도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차담을 나누다가 출가자가 조상들에 대한 천도와 세속의 일가친지 부모형제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인가 아닌가를 두고 설왕설래하게 되었다. 솔직히 모든 중생을 위한 기도와 축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일가친척들의 축원에 열을 올리는 스님에 대한 의아한 생각을 떨칠 수없는 터였다.

그때 마치 나의 견해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분명하게 말하신 스님이 계셨다. 출가 후 오랜 시간을 참선 정진하셨는데 조용히 듣고 있더니 출가를 했다면 출가 전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며 구태여 그분들을 위해 천도재를 올리고 기도를 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모든 대중들을 위한 생각을 하는 것이 보다 출가자다운 생각일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음직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얘기가 오고가는 중에 본인의 분명한 입장을 여과 없이 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스님으로부터 참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들은 강원에서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많은 과목을 교육 받으며 때로는 깊이 공감하여 큰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책을 탁 덮어두고 오랜 시간 많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아무래도 현실의 문제로 쉽게 닿아 오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날 처음 가까이에서 본 수좌스님에게서 참선하는 스님들은 그저 한없이 고요만 즐기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깊은 수련을 통하여 표출되는 말씀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끌어들였다. 강원을 막 졸업하자 일타 큰스님께서는 자꾸 율원에 가서 잠시라도 율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만 결국은 그 멋진 수좌스님을 닮고 싶은 마음에 선원으로 발길을 옮기고 말았다. 언제나 단순하시고 담백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신 스님은 일타 큰스님의 상좌이신 적인 스님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스님의 속가 동생이 먼저 출가하였는데 후에 출가한 형도 같이 일타 큰스님께로 출가하여 세속의 동생이 사형이 되고 형이 사제가 되었다. 출가 후에도 더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출가 전 얼마나 우애 돈독한 형제였는가 짐작이 간다.

적인 스님께서는 한때 지리산 깊은 토굴에서 전기, 전화도 없는 원시적인 삶을 살면서 정진하셨다. 당시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토굴에서의 정진은 언제나 깊은 향수로 남게 됐다. 스님은 너무나 강직해서 과장하는 말을 하실 줄 모르시고 아름답게 말을 꾸미시지 않는다. 너무나 직설적이라 때로는 상대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거짓 없는 마음에서 나온 직설은 마치 우리 몸을 투과한 엑스레이처럼 우리들 마음속의 병들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지리산의 높은 토굴에서 겨우내 눈이 쌓여 갇힌 채 한 철을 지내고 내려오셨을 때도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혼자 살면서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언제나 당당하고, 잃을 것이 없어 누구에게 굽실거릴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지 취임 후 복잡다단한 일들을 처리하고자 동분서주 하다 보니 언제나 우리들에게 향기 없는 향을 뿜고, 꾸미지 아니하여 담백한 맛을 내고, 이익을 좇지 않아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지니신 내 마음의 수좌로 남아 있는 적인 스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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