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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소장의 미국에서 차를 마시다]3.지성의 산실

기자명 법보신문

美, 사찰의 차 문화로 동양의 얼 이해

 
미국에서 차의 이해는 한국 사찰의 다실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다. 사진은 보스턴 문수사 주지 진우 스님이 차를 달이고 있는 모습.

무더운 알링턴을 출발한 것은 7월 말, 시카고를 경유하여 보스턴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경유한 시카고 공항에서 시장기나 면해 보려고 산 샌드위치는 어찌나 크고 느끼한지 반 정도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을 먹은 후,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 콜라를 마셨더니 답답하던 속도 진정되고 느끼한 뒷맛도 사라졌다. 탄산음료인 콜라가 주는 마력 같은 것이다. 이 때문인지 패스트푸드점에는 다양한 종류의 탄산음료가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음식들의 다량 섭취로 인해 생긴 비만문제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런 종류의 음식들이 넘치는 곳도 또한 미국이다.

비만,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보스턴으로 향하는 기내 초등학생쯤이나 되었을까, 어린 티가 역력한 중국인 여학생을 만났다. 방학 중에 보스턴으로 여행을 가는 길이란다. 반짝이는 눈빛에는 당당함과 호기심이 어려 있다.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는 명랑하고 수다스러운 미국인 아주머니 웰리스의 어눌한 중국어 자랑에도 차분하게 답하는 모습이 당차 보인다. 마치 경제력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중국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긴장되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보스턴공항은 한산하고 썰렁하다. 날씨마저 서늘하여 반팔 차림으로는 한기가 느껴진다. 비행기까지 연착된 탓으로 문수사의 회주이신 도범 큰스님께서는 한 시간을 넘게 우리 일행을 기다렸단다. 환하게 웃으시며 서 계신 스님, 인자하신 시골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편안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스님의 눈빛에는 한 줄기 스치는 바람처럼 선뜻하고 예리한 선미가 어려 있다. 오랜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빛이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여 예를 올렸다.

다음 날, 재잘대는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이미 창밖은 훤하게 밝았다. 경쾌하고 맑은 목탁 소리, 정진 중이신 스님의 경책소리인 양, 사방에 낭자하다.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법당의 부처님께 겨우 예를 올렸다. 공양 간으로 들어가니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들이 정갈하고 다소곳하다. 노 보살님이 정성과 신심으로 만든 구수한 된장국 냄새에서 따뜻하고 살가운 정이 느껴져 편안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구수한 손맛, 그대로이다. 한숨에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문수사는 보스턴 웨이크필드에 있는 한국 절이다. 흰 색의 목조 건물은 모두 세 동이며 법당과 객사로 이루어져 있다. 뜰 한 모퉁이에 한국 시골집 텃밭처럼 작은 밭이랑을 만들어 고추와 가지, 상추를 심었고 호박, 오이도 주렁주렁 열려 있다. 이곳은 보스턴 인근에 사는 교포들에게는 주말이면 모여 따뜻한 동포애를 나누는 곳이며,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이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수사가 한국 불교의 포교 일 번지를 자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범 큰스님은 70년대 초, 한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차 문화 운동을 주도했던 분이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초기 차 문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이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의 면면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뜻을 가졌던 필자로서는 여간한 행운이 아니었다. 도범 큰스님이 들려주신 당시의 이야기는 현대차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서 매우 소중하다. 당시 그들이 인식했던 차에 대한 이해와 차 문화운동의 목적 그리고 차에 대한 열정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후인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보스턴에 있는 문수사 전경, 아담하고 조용하다.

한편 이 절의 주지인 진우 스님은 한국의 절처럼 소박한 다실을 꾸며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나 미국인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방석을 준비하여 좌식으로 앉아 차를 마시게 한다. 그들도 한국적인 이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미국 차 시장 가능성 엿보여

찻잔과 은주전자, 나지막한 차탁들은 익숙한 다구들이다. 보스턴 지역의 물이 무겁고 둔탁하여 맑은 차를 마시기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차를 보급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특히 좌식은 주객이 서로 편안히 바라 볼 수 있는 공간배치이기 때문에 피차간에 온화한 마음이 교류되고 정중한 예를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인들이 이런 좌식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차가 인간의 정신을 순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곳이 바로 한국 사찰이며, 그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간도 한국 절의 다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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