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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차를 마시다]④ 지성의 산실 -끝

기자명 법보신문

찻집 늘고 있지만 수준은 ‘간이음식점’

 
보스턴에 있는 찻집 ‘다도’. 하회탈이 걸려 있고 ‘다도(茶道)’라는 묵서(墨書)가 인상적인 곳.

다음 날, 일찍부터 서둘러 보스턴 시내에 있는 하버드 광장으로 향했다. 하버드 광장을 들어서니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스님들이 티베트의 자주독립을 촉구하는 한편 중국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무자비한 무력행사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붉은 가사 위로 이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애잔한 눈빛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엔칭 도서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동양학 자료의 산실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의 고문서류와 근·현대 도서들이 구비되어 있다. 거거년 차에 대한 자료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열람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터라 이번 기회에 자세한 자료열람을 계획하였다. 세계 도처에서 모인 학인들이 활보하는 캠퍼스는 젊음과 자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묻어 있으며, 학인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배여 있는 듯하다.

보스턴 차사건 후 차문화 쇠퇴

특히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도서관의 수많은 장서와 편의시설, 무제한으로 공여되는 도서 대출이다. 이곳은 실로 학인들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아마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 이런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정말 놀랍고 부러운 일이다.

보스턴에는 찰스 강을 따라 하버드대와 MIT공대, 보스턴대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어느 곳보다도 차분하고 격조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차를 마시는 가게의 분위기도 다른 도시에서 느꼈던 그것보다 품위가 있다.

혹시 동양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는가를 수소문해 보니 ‘다도’라는 차가게가 있단다. 차와 다른 음료, 그리고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이라 하여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런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보스턴에도 몇 곳이 있다고 들었지만, 일정관계로 하버드대에서 가장 가까운 ‘다도’를 찾아 갔다.

막 문에 들어서니 하회탈과 함께 ‘다도(茶道)’라고 쓰인 족자가 벽에 걸려 있으며, 청자 잔과 분청 찻잔도 진열되어 있다. 진열대 위에는 중국 우롱계통의 차와 홍차, 허브 종류로 만든 차가 있고 한 편에는 일본 차 그릇도 놓여 있다. ‘다도’는 찻집이라기보다 간이음식점에 가깝다. 이곳에서 한국식 차 마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더구나 맑은 차를 다루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미국의 음식이 그러하고 물이 그러하다. 불교를 이해하거나 동양적인 사유와 예술에 안목을 가진 사람은 차의 가치를 조금은 이해한다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여유롭게 자신을 반추할 시간과 성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반사람들이 차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에는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였다.

 
1773년 보스턴 차사건이 일어 났던 현장.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다음 날,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물어물어 찾아 갔다. 보스턴 항구에 위치한 이곳은 1976년에 당시의 배를 복원, 박물관으로 꾸며 옛 의상을 입은 안내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먼 옛날 보스턴 항구에 흐르던 물은 지금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건만, 부당한 차세에 저항하여 차(茶)상자들을 바다에 던지던 옛 군중은 어디에 있는가. 1773년 겨울에 일어난 보스턴 차사건은 미국의 독립 전쟁으로 이어져 미국의 독립을 가져 왔지만 홍차는 미국인의 생활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때 이미 커피의 일상화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문화의 전파가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차가 그러했다.

일반인에게 차는 ‘건강보조식품’

중국에서 시작되었던 차는 한국과 일본에 영향을 미쳐, 삼국은 각자 특수한 풍토성을 가진 차 문화를 이룩하여 왔으며, 차의 품색(品色)도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하지만 차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준다는 가치만은 변한 적이 없다. 이 가치는 동서양을 물론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미국에서 차에 이해는 일천하다. 지금은 다만 건강을 보조하는 식품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차의 원천적 가치를 이해할 날을 기대해 본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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