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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서 찾는다]⑦사찰은 모든 사람의 꿈의 도량

기자명 법보신문

24시간 정진으로 수행-기도 도량 괄목 변신

 

홍련암 기도동참 불자들의 숙소인 연하당

‘…관세음보살을 지성껏 부르면 설사 큰 불이 들지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며, 큰 물에 빠질지라도 죽는 일이 없으며, 바다에서 검은 바람을 만나 죽음에 임박했더라도 해탈을 얻을 것이다.…’ 『법화경』 보문품 중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낙산사를 몽땅 집어 삼키고 동해바다까지 치달아 오를 듯 기세등등하던 4월의 화마 속에서도 티끌하나 묻지 않는 연꽃처럼 탈 없이 무사했던 홍련암의 모습 앞에서 불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끝까지 홍련암을 보듬고 화마를 막아준 것은 수행과 기도의 원력으로 낙산사를 다시 세우라는 뜻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마에 덴 상처가 여전히 쓰리던 2005년 11월 홍련암에서는 낙산사 복원을 발원하는 천일기도가 시작됐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홍련암에서의 기도소리는 마침내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어 원통보전과 홍예문을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관세음보살 상주처라는 낙산사의 본래면목까지 되살려냈다.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이를 바라보며 “관세음보살님의 큰 서원이 이 도량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낙산사는 본래 동해제일의 관음기도처였다. 예부터 이곳이 관세음보살의 상주처라는 말을 들은 의상대사가 이곳 관음굴에서 기도정진 끝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사찰이 낙산사였다. 그 후로 낙산사는 서해의 강화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관음성지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낙산사는 ‘동해 제일의 관음도량’이라는 이름대신 ‘동해 제일의 관광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텅 비었지만 도량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남아있는 ‘매표소’는 한 해 수십만이 찾던 ‘관광지 낙산사’의 지난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108법륜석이 설치된 해수관음전

이러한 속에서 시작된 낙산사 복원 불사는 관음성지로서의 낙산사, 기도도량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일인 동시에 수행정진 도량으로서의 위상을 새로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는 분명히 있습니다. 홍련암 법당은 무사하고 낙산사의 관세음보살님은 이 참화 속에서도 모두 무사하십니다. 형상으로 나를 보지 말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으나 저희들에게 있어 이것은 기적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매표소에 ‘무료입장’의 팻말을 붙이고 산문을 활짝 열어젖힌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화재 직후 전 국민들에게 올린 글을 통해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오직 기도 정진의 힘만이 이 화마를 극복해 낼 원동력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내는 입장료 대신, 불자들과 전국민들이 보내주는 복원의 원력과 성원으로 낙산사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홍련암에서 24시간 천일기도 정진을 시작한 낙산사 측은 부족한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산유스호스텔을 불자들의 숙소로 무료 개방했다. 서울, 경기, 부산, 마산, 창원, 울산, 대구, 포항, 대전 등 전국에서 낙산사로 향하는 무료버스도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낙산사 복원 불사가 하나 둘 진행되는 동안 홍련암에서는 단 한 순간도 기도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낙산사 측은 기도 동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낙산유스호스텔과 더불어 홍련암 아래에 연하당을 마련, 기도 불자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20여명 사중 스님들의 기도 정진에 따라 매일 4, 50여 명의 불자들이 홍련암에서 함께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다시 새벽을 맞았다. 그 기도 원력에 의지해 원통보전이 마침내 낙성되었고 좌우로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신도들의 교육공간인 정취전과 설선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련암 기도객들의 숙소이자 템플스테이 공간인 취숙헌을 마련한 것도 주목할 만한 낙산사의 변화였다. 특히 원통보전 전면에 단기출가를 희망하는 신도들을 위한 무문관 형태의 수행공간 응향각이 들어선 것은 낙산사가 기도도량뿐 아니라 수행도량으로서도 손색없는 사격을 갖추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뿐만 아니다. 동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해수관음전에는 108법륜석이 설치됐다. 108개의 석대에서 한 사람씩 앉아 108배를 하고 기도 정진할 수 있도록 마련된 새로운 기도 공간이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남긴 조선시대 낙산사의 모습, 기도와 수행 도량으로서의 본래 면목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기조차 두려울 만큼 화재로 인한 낙산사의 상처는 크고 깊었다. 하지만 최근 보여지는 낙산사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찰은 본래가 기도하고 수행하는 공간입니다. 사격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그 안에 기도와 수행 정진의 원력이 없다면 그곳은 죽은 공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다녀가더라도 그 속에서 기도와 수행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면 단 한명도 포교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더라도 수행과 정진이 없다면 지역주민들의 존경과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낙산사 복원의 참 뜻은 기도와 수행이라는 사찰의 본래 면목을 되살리는데 있으며 그 원력 역시 오직 기도와 수행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홍련암에서는 불자들의 기도가 24시간 이어지고 있다.

무문과, 시민선방 등 수행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연하당, 취숙헌, 108법륜석 등 기도 공간을 확보하며 단기출가, 템플스테이 등 불자들이 동참하고 불교를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복원 불사 구상단계에서부터 낙산사의 공간 배치를 새롭게 설정했던 정념 스님의 설명은 대작불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과연 큰 전각과 불상을 세우는 참 뜻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홍예문을 들어서는 순간 기도와 수행의 향긋한 법향이 느껴지는 요즘 낙산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진정한 사찰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사찰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은 오롯이 수행과 기도에 있어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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