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중 기자의 일본템플스테이]① 히에이잔 엔랴쿠지
[정하중 기자의 일본템플스테이]① 히에이잔 엔랴쿠지
  • 법보신문
  • 승인 2008.12.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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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권력 즐겨찾던 산사에서 400년 역사의 배려를 느끼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과 전통이 잘 보전해가고 있는 나라다. 그중에서도 참배객을 위한 숙박제도인 ‘슈쿠보(宿坊)’의 전통은 몇 백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슈쿠보는 단순한 숙박시설이나 제도가 아니다. 사찰마다 고유의 서비스와 체험 프로그램을 잘 발달시켜 놓았다. 11월 19~23일 일본의 템플스테이 ‘슈쿠보’를 체험하며 한국불교의 템플스테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편집자 주

 

 
아침예불과 함께 좌선을 시작하고 있는 템플스테이 실무자들. 좌선이 시작되면 콘본추우도오의 모든 불이 꺼진다. 오직 불멸의 법등과 몇 개의 촛불만이 밝혀진 채로 이곳은 삼매의 공간이 된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첫 냄새는 마치 단맛의 간장을 연상케 한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상공에서 흔들리는 기체를 애써 바로잡는 동안 온 몸 가득 배어 있던 긴장감은 공항의 열린 문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일본 특유의 냄새에 금새 풀어지고 말았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오른 버스를 타고 2시간 30여 분. 오사카 외곽을 따라 흐르는 도로를 달려 쿄토 인근의 시가 현에 도착했다. 창 옆으로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 延曆寺)’의 이정표가 스쳐지나간다. 산등성이를 타고 버스의 몸이 기울어지기에 도착인가 싶었다. 그러나 기울어진 버스는 일본 특유의 2차선 좁은 산길을 굽이치며 30여 분을 더 거슬러 올라갔다. 해발 600m. 그리 높지 않은 곳임에도 일본 최대의 호수라는 비와(枇杷)호를 정원 삼아 앉아 있는 히에이잔 엔랴쿠지에 발을 내리니 마치 선계(仙界)와도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엔랴쿠지를 찾는 관광객의 90%가 사찰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 화려한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온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이내 깨닫게 됐다.

엔랴쿠지에서 슈쿠보를 체험하기 위한 시설인 ‘엔랴쿠지 카이칸(會館)’은 의외로 토오토오(東塔)의 입구 바로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상당히 큰 규모다. 지상 5층, 지하 2층에 객실과 연회장, 미팅실, 온천, 대형 식당, 카페, 토산품 판매점 등의 공간들이 가득 차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이곳이 사찰의 숙박시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도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호텔, 그 중에서도 최고급 호텔을 연상케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현대화된 시설에 깔끔한 내부구조를 갖췄다.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대형 숙박시설이다.

객실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2인실부터 40인이 함께 잘 수 있는 대형 객실까지. 대부분이 다다미방으로 꾸며져 있지만, 3년 전 전면 개보수를 하면서 서양인들을 위한 침대방도 구비해 놓았다. 엔랴쿠지의 총무부장 고바야시 쇼죠 스님은 “이곳은 히에이잔을 찾는 모든 참배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일 뿐 사찰의 생활을 체험하러 오는 사람들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엔랴쿠지에 슈쿠보 시설이 마련된 것은 1600년대 에도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에도 참배객들을 위한 숙박은 가능했지만 전문화된 시설을 갖춘 것은 이 시기부터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온 슈쿠보는 다른 사찰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라고 쇼죠 스님은 설명했다.

그러나 슈쿠보 시설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엔랴쿠지의 문을 활짝 열려 있지 못했다. 엔랴쿠지 자체가 막부 권력을 등에 업은 사찰이었기에 민간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될 수 밖에 없었고, 자연히 이곳의 숙박시설은 소수의 권력자와 그들의 가족, 친인척들만을 위해 제공됐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민간인들에게도 슈쿠보가 개방됐지만 메이지 이전까지 여성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금기의 지역이었다. 엔랴쿠지가 문을 활짝 열고 문턱을 낮춘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당연히 대규모 인원의 숙박이 가능해진 것도 메이지 이후부터다. 몇 백 년을 권력과 함께 해온 전통이 있었으니 일반인에 문을 열어줬다고 해도 일반 참배객을 위한 배려가 있을 리 만무했다. 카이칸 관계자에 따르면 엔랴쿠지의 슈쿠보가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하지만 현재 엔랴쿠지 카이칸의 서비스는 최고급 호텔이나 그보다도 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일본의 료칸(旅館)과 비교할 만 하다. 슈쿠보를 체험한 템플스테이 실무자들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서비스에 놀랐다”며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템플스테이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과연 엔랴쿠지의 체험 프로그램은 어떨까. 여기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운영 중인 체험 프로그램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년 전부터 매년 3~11월 고지린(居士林)이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찰의 수행을 재가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엔랴쿠지의 수행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는 엔랴쿠지에서 수행하던 참가자의 발톱이 빠져버리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추위가 너무 심한 겨울에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고지린 참가자들은 전용 숙박시설도 따로 있다. 이곳은 카이칸과 달리 난방이 잘 되지 않고 제공되는 식사도 다르다. 움직일 때에도 무조건 차수를 해야만 한다. 이는 우리네 행자와도 같은 생활을 하면서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수행임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참선과 사경을 체험해볼 수 있다. 엔랴쿠지 측은 “보통 기업이나 단체가 정신교육을 위한 연수로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고 밝혔다.

엔랴쿠지 슈쿠보 시설을 이용하며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먹거리다. 카이칸에서는 전통적인 사찰 음식인 쇼진료리(精進料理)를 제공하고 있다. 쇼진료리는 야채와 채소만으로 모든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일본 사찰 고유의 요리 방법이다. 그러나 맛과 함께 음식의 멋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요리답게 음식 하나하나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일본 음식의 특성상 요리의 맛은 심심한 편이다. 그러나 일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느끼기 힘든 일본 음식의 특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게 쇼진료리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평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엔랴쿠지의 슈쿠보 시설을 돌아보고 나니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일본에서도 첫 눈이라는 얘기가 들렸다. 단풍나무 잎사귀는 아직 고운 제 색깔을 품고 있는데, 하늘은 이제 그만 그 잎사귀들에 마지막 인사를 하란다. 흰 색과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절경을 뒤로 하며 산을 내려가는 길, 카이칸 관계자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서비스는 참배객이 떠나는 순간까지인 모양이다. 

raubone@beopbo.com

엔랴쿠지의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이곳의 자연 뿐만이 아니다. 엔랴쿠지에서 제공하는 쇼진료리(精進料理)는 입과 함께 눈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 延曆寺)는

1200년간 법등 밝혀온 일본 불교의 중심지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 延曆寺)는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이다. 성덕 태자로부터 ‘전교대사(傳敎大師)’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던 일본의 고승 사이초오(最澄, 766~822) 스님에 의해 785년 건립됐다. 처음에는 산 속 토굴처럼 지어 놓은 조그만 암자였지만, 사이초오 스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면서 점차 그 규모를 키워갔다.

히에이잔 엔랴쿠지는 크게 토오토오(東塔)와 사이토오(西塔), 요카와(橫川)로 구분된다. 토오토오는 히에이잔 삼탑의 중심이자 엔랴쿠지의 발상지다. 중요한 암자는 대부분 이곳에 모여있다. 토오토오에서 북쪽으로 1㎞ 가량 떨어져 있는 사이토오에는 엔랴쿠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샤카도오(釋迦堂)가 남아 있다.

히에이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법당도, 사람도 아니다. 바로 등불이다. 1200년간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는 ‘불멸의 법등’이 지금도 히에이잔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788년에 세워진 엔랴쿠지의 본당 콘본츄우도오(根本中堂)에서는 언제나  불멸의 법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히에이잔에서 ‘엔랴쿠지’라는 간판은 찾아 볼 수 있어도 그 어디에도 ‘엔랴쿠지’라는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100여 개의 탑과 암자, 법당, 불단이 가득한 히에이잔 자체가 엔랴쿠지인 까닭이다. 법당 옆을 지키고 선 수많은 나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연들조차 이곳에서는 승가의 일원으로 불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엔랴쿠지가 그 아름다움을 가장 뽐내는 계절은 가을이다. 히에이잔 엔랴쿠지의 가을 단풍은 일본 전국을 통틀어 최고로 칠 만큼 아름답다. 노랗고 빨간 단풍의 색은 각 건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그대로 하나가 된다. 아마도 히에이잔 엔랴쿠지의 가을 풍경은 1200년의 세월이 만들어준 조화의 산물일 것이다. 히에이잔 엔랴쿠지의 아름다움은 유네스코에서도 인정 받아 1994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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