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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걷는 소의 미덕 필요한 해

기자명 법보신문

[새해특집]소띠 해를 맞이하며
원효·히틀러·나폴레옹·찰리 채플린이 소띠
불교에서 깨달음 단계 소 찾는 과정으로 상징화

소의 한없이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느낌에 젖어들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시냇가 엄마 개구리의 배풍선을 터뜨리기도 하고, 농부로 하여금 젊은 시절의 황희정승에게 귓속말을 하게 하기도 한다. 떼를 지어 휴전선을 건너가기도 하고 또 한편 광화문 네거리를 인파로 가득 메우게 하기도 한다.

우리 문화에 나타난 소의 모습은 고집세고 어리석은 측면도 있지만 대체로 풍요, 부유함, 길조, 의로움, 자애, 여유, 우직함 등으로 축약된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 의로움을 불태운 소 이야기가 있다.
어느 시대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소를 몰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아들이 찾으러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소가 죽은 아버지를 판자로 덮고 호랑이와 대치를 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아버지를 물어가려고 달려들다가 소뿔에 받혀 죽고 말았다. 아들은 호랑이를 끌고와서 가죽을 벗겨 집앞에 있는 바위에다 걸어 두었다. 이튿날 아침 풀을 뜯기러 집을 나서는데 소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가죽만 보고 달려가서 들이받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구하려 한 소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며 정중히 묻어 주었다. 훗날 이 소가 이중섭의 소로 다시 태어난 것은 혹시 아닐까. 부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진 게으름뱅이가 집을 뛰쳐나왔다가 쇠머리탈을 쓰고는 죽을 고생을 하다가 에라 죽자하고 무우를 먹은 다음 다시 사람이 된 이야기도 널리 전해져 오고 있다.

소가 인도에서 신성시되고 있다는 것은 부연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는 머리가 소의 형상이고 몸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농경시대에 농사를 짓는데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소를 신령스럽게 여겨 후세사람들이 신농씨를 농사의 신으로 신격화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불상이나 신상이 소를 타고 다니는 그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소를 부처님이나 신들을 태우고 다니는 사신(使臣)으로 여긴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소가 결실의 신인 이시스 여신의 신성한 짐승으로 숭배된다. 서아시아에서는 말이 가축화될 때까지 소가 주로 수레를 끌었는데, BC 4000년경에 수메르인은 두 마리의 소에게 전차를 끌게 하기도 했다.

전세계에 450여 종의 품종이 있는데 중국과 몽골, 유럽,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는 오록크형의 가축소가 분포되어 있고,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중부 지방에는 제부형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오록크형에 속하는 한우는 기원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농사를 짓는 일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소는 고고유물과 고분벽화에도 등장하고 있고 역사문헌과 미술품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소싸움 등의 민속행사에도 등장하느라 매우 바쁘다. 여러 고전작품에도 많이 나온다.

특히 장자 양생주편에 나오는 소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는 음미해볼만 하다. 문혜군이라는 임금이 포정에게 소를 잡게 하였는데 소잡는 솜씨가 천연의 리듬에 척척 맞아드는 것을 보고, “소잡는 솜씨가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하고 묻는다. 포정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을 움직이는데 언제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19년이 지나도 칼날을 새로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뼈와 살이 엉긴 곳을 만날 때면 저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경계를 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살과 뼈가 해체되어 흙처럼 땅위에 툭 떨어집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뿌듯한 기분으로 가득찹니다. 그리고는 칼을 잘 닦아 간직해 둡니다.” 그러자 문혜왕이 말한다. “나는 포정 그대의 말을 듣고서 양생법을 체득했도다.”

여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 마음이라 할 수도 있고, 우리네 인생살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위치에서 얼마든지 자신에 맞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소띠 해가 밝았다. 소해에 태어난 사람은 일반적으로 우직하고 낙천적이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여 성공을 가져오는 사람 중에 소띠 태생이 많다. 소띠들의 공통점은 근면과 성실이다. 반면에 그야말로 황소고집이 대단해서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소신대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힘들다.

둔한 것 같으면서도 신명이 나는 일을 만나면 쇠뿔도 단김에 빼듯 침식조차 잊어버리고 해내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것도 소띠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한 번 마음먹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치우고 마는 사람 역시 소띠이지만, 한 번 화가 났다하면 한 바탕 난리굿을 피우는 단점도 없지않아 있다. 강자에게는 더욱 강해져서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예상밖으로 인정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한없이 태평스러운 온순함과 쇠가죽처럼 질긴 고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사교적인 듯 하면서도 깊은 고독의 심연을 즐긴다.

모든 띠에서 인물이 나오는 법인데 소띠 중에서도 제법 알려진 인물들이 많다. 히틀러, 나폴레옹, 루이 13세, 빈센트반고호, 찰리 채플린, 단테, 바하, 까뮈 등이 소띠로 알려져있다. 원효대사님도 정축생 소띠라고 한다.

‘소 타고 소 찾는다’는 속담도 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있다. 요즈음 경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주춤거리고 있다. 그런 상황을 소 닭보듯이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인가. 열 두 띠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뒷걸음치다가 쥐잡는다는 이야기는 속담일뿐이다. 경 읽어주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소처럼 묵묵히 걸어야 할 때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에게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덕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덕은 서두르지 않고 꾸준한 것이다.
둘째 덕은 돌밭이건 진창이건 가리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고 가는 것이다.
셋째 덕은 자신이 하는 일을 뒤돌이켜보고 그 잘못을 반성하며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넷째 덕은 자애로운 것이다.
다섯째 덕은 재물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여섯째 덕은 불행과 병을 몰아오는 귀신을 막아주는 것이다.
일곱째 덕은 잡다한 세상사에 초연하여 유유자적한 것이다.
여덟째 덕은 초월자의 모범을 인간에게 교시해 주는 것이다.

불가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소를 찾는 과정으로 상징화하여 표현한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수행자가 자신의 본성을 찾아나서는 첫 단계인 심우(尋牛)에서부터 본성의 자취인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의 과정을 거쳐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의 그림이 있다.

한없이 여유로운 소의 발걸음과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목동의 천연스러운 표정이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저 목동을 태운 소가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담장 한 켠에서 실컷 먹고 콧숨을 뿜어내는 얼룩배기 황소와 더불어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는 소해가 되기를 축원올려본다.
 
박상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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