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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외호하는 우직한 큰 일꾼의 모습

기자명 법보신문

사찰연기설화에 나타난 소

소와 관련된 창건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은 공주 갑사, 해남 미황사, 보은 법주사 등이다.
갑사에는 대웅전 중창불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소실된 갑사를 재건하기 위해 인호 스님을 비롯한 대중 스님들이 대웅전복원에 나섰다. 그러나 그 원력에 비해 공사의 진행은 너무나 더뎠고, 불사에 필요한 자재조차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호 스님의 꿈에 소 한 마리가 나와 “불사를 도울 것이니 걱정 말라”며 절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꿈에서 깬 인호 스님이 방문을 열자 문 밖에 그 소가 서있었다.

이후 소는 매일 같이 향나무와 기와 등 법당 중건에 필요한 자재를 구해와 힘을 보탰다. 소의 도움으로 공사는 원만하게 진행됐고 마침내 불사의 회향을 앞둔 어느 날, 기력을 다한 소는 지쳐 쓰러진 채로 숨을 거뒀다. 갑사 스님들은 소의 공덕을 기려 탑을 세웠는데, 그 탑이 바로 갑사를 오르는 길목에 지금껏 자리 잡고 있는 ‘공우탑(功牛塔)’이다.

법주사가 위치한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명칭의 유래에 대해 법주사를 창건한 진표율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속리산은 당시 구봉산으로 불렸는데, 신라 선덕왕 5년 진표 율사가 법주사를 건립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러자 인근 논밭에서 일을 하던 소들이 일제히 율사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이에 농부들이 감명받아 속세를 버리고 율사를 따라 출가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사람들은 구봉산을 속리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조선 숙종 18년 병조판서 민암이 쓴 사적기를 통해 전해내려 온다. 신라 경덕왕 8년의 어느 날 땅끝마을 사자포에 화엄경, 법화경 등의 경전과 문수·보현 보살상이 담겨 있는 금합, 그리고 검은 소를 실은 돌배가 나타났다.

같은 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나는 인도 우전국의 왕인데 불상과 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절을 짓는다면 국운과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고 일러주었다. 의조 화상은 이를 그대로 따랐고, 소가 멈춘 곳에 절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미황사다.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바다를 통해 불교가 유입됐다는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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