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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2.하늘을 달리는 칭장열차[上]

기자명 법보신문

삼독의 열차도 넉넉히 포용한 탕구라보살이여!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5시간가량 떨어진 낙추역에 도착한 칭장열차. 제 아무리 빨리, 멀리 달린다지만 티베트의 맑은 하늘과 광활한 티베트 고원을 벗어날 수는 없다.

바로 우리가, 돌고 도는
자리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조그만 안식을
얻는 것이지요

찰나를 영원으로 인식하고
그것마저 넘어
적멸의 자리를 꿈꾸는
눈 시리게 푸르른 날
여러분 모두가
나그네였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집을 빼앗기고 비인간적인 모욕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는 중국으로부터 반세기 이상을 끊임없이 수탈당하고 핍박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맑은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잃지 않고 있으며 비폭력 평화운동이란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면서 오히려 중국의 수탈과 학살을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포용해 왔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티베트의 이러한 모습은 대단히 두렵고 피곤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제일에 근접해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티베트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달라이라마와 수많은 티베트인들을 인도의 오지와 세계 각지로 몰아 냈음에도 달라이라마의 영적인 가르침은 불자들은 물론 이웃 종교인들조차 귀의의 대상일 정도로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식민적 수탈과 학살, 탄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비와 사랑을 근본바탕으로 한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의 순수한 영성은 오히려 더 멀리, 더 넓게 확산되고 있다. 불교적인 심성만이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을 사라지게 하고 상생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그들의 메시지가 테러와 갈등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전파되고 있다.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자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중국은 티베트에서 티베트인들의 평화적인 봉기가 일어날 때마다 더욱 악랄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사태를 진압해 왔다. 평화적인 시위마저도 유혈폭력사태로 유도하면서 티베트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그들을 학살했다. 자연에 거슬림이 없이 느리고 가만히 인내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한 생(生)을 촌각 정도로 여기며 윤회와 카르마(業)를 철저히 믿고 따르는 티베트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조급하게 표출된 한 단면이리라.

개통일은 공산당 창당 85주년

12억 중국인들의 위대한 업적이자 중국 최고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칭장(靑藏) 열차, 그것이 갖는 의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중국의 두려움과 조급함이 종합적으로 결집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의미이다. 철로의 평균 고도만 하더라도 4000m에 달한다 하여 ‘하늘열차’로 불리는 칭장열차는 중국의 탐욕과 증오, 어리석음이 담긴 삼독(三毒)의 상징물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티베트를 통째로 빼앗아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면 자기 것이 된다는 탐욕과 자비롭고 평화로운 티베트 불자들을 총과 칼로 위협하면 스스로 굴복할 것이라는 진심(嗔心), 영혼의 땅인 티베트에 ‘물질만능주의’란 씨앗을 파종해 그 영성을 탁하게 물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음이 빚어낸 결과가 바로 칭장열차라는 뜻이다.

2006년 7월 1일은 칭장열차가 라싸로 처음 떠난 날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티베트고원 동북부의 시닝(西寧)에서 이 열차의 개통식을 가졌다. 중국이 굳이 시닝에서 칭장열차의 개통식을 개최한 까닭은 무얼까.  ‘시닝이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시닝은 티베트 불교에선 없어서는 안 될 위대한 스승이자, 달라이라마가 속해 있는 겔룩파를 창시한 총카파(1357~1419년) 대사께서 탄생하신 곳이다.

숫자와 내용 하나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의 습성 상 티베트의 성지를 칭장 열차로 굴복시켰다는 나름의 계산이 깔린 포석으로 보인다. 티베트의 성지에서 티베트의 영혼을 삼독에 가둘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으며 칭장 열차를 개통하던 날, 중국인들은 “100년 숙원의 역사인 하늘 길(天路)을 열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을 통해 “칭장 철도의 개통으로 티베트 서장자치구의 낡은 교통설비가 크게 개선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 역시 향상될 것”이라며 선전을 하는 데 열을 올렸다.

개통식이 열린 이 날은 공산당을 창당한지 꼭 85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며 2006년은 홍군 진군 승리 70주년, 문화혁명 종료 30주년 등 중국 공산주의 역사에 있어서 의미가 아주 큰 해였다. 중국은 그 해 동쪽 지방의 3대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에서 라싸로 향하는 칭장 열차를 속속 개통해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위한 운송 시스템을 완성했다.

중국은 칭장 열차를 개통함으로써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의 비폭력 평화운동에 큰 좌절을 안겨주고 싶었을 것이며 티베트인들의 영혼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950년 1월 20일 티베트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임을 선포한 이래 59년 동안 끊임없이 티베트를 억압하고 탄압했음에도 여전히 하늘과 바람, 돌, 구름에 귀의하며 포탈라궁에서 코라(성지 돌이)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여는 티베트인들의 영성을 보면서 답답하고 두려웠을 법도 하다.

밤 8시, 어두운 사천성의 청두(成都) 역 휴게소에 앉아 핍박받는 티베트와 핍박하는 중국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에 젖어 마음이 착잡하다. 10여분 가량 흘렀을까, 한줄기 빛이 갑작스레 눈을 어둡게 했다. 육중한 몸집의 칭장 열차가 차가운 쇠바퀴 소리와 함께 불빛을 번쩍이며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칭장 열차는 영락없이 군청색 군복을 입은 중국 군인이었다. 열차의 첫 인상은 1959년 3월 20일부터 21일까지 달라이라마가 탈출한 것에 격분한 나머지 48시간 동안이나 박격포를 동원해 포탈라궁과 노블링카를 파괴했던 붉은 눈의 중국 군인을 빼 닮았다. 하나의 중국 아래서 한족이건 소수민족이건 평등하고 동등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중화(中華) 사상’ 아래 티베트가 있음을 선포하겠다는 듯 그 위세가 대단하다. 중국의 힘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칭장 열차는 개통 이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라싸로 운송하며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 그리고 사천성을 비롯한 티베트고원 동북부와 인접해 있는 지역의 한족들을 티베트에 이주시켜 결국 티베트 전역을 중국의 서장자치구로 완성해 가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죽하면 칭장 열차가 개통한 이후 ‘한족은 기차가 낳고 소수민족은 사람이 낳는다’는 자괴 섞인 말들이 티베트와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으랴.

그런 칭장 열차에 오르려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밤 8시 26분, 출발 시간이 되니 기차는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미끄러져 나아갔다. 청두를 막 나선 기차의 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 두텁게 깔려 막막하다. 침대칸에 올라 앉아 밖을 내다봤지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렵다.

45시간 달려 티베트 라싸에 도착

칭장 열차는 청두 역을 출발해 앞으로 2박 3일(45시간) 동안 3360km를 달려 목적지인 라싸에 도착한다. 티베트의 북쪽 가장 자리에 있는 쿤룬(崑崙) 산맥과 북쪽에서 약간 남쪽에 있는 탕구라(唐古拉) 산맥의 험난한 지류들을 뚫고, 이름 모를 4000m 이상의 고봉들을 지나 라싸로 라싸로 향한다. 그리고 차장 밖으로는 만년 설산과 세계 최고 높이에 있는 호수, 티베트 민족의 보배로운 가족인 야크(티베트 고산지대의 소과 동물), 초르덴(불탑)〈사진 위〉, 룽다, 오체투지 성지순례에 나선 티베트인 등을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 놓을 것이다.

영혼의 땅에 탐욕 심기 위한 도구

칭장 열차는 이제 청두를 벗어나 황토 고원지대인 란저우를 지나 시닝, 꺼얼무, 낙추를 향하고 있다. 열차 밖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황토언덕과 설산〈사진 위〉, 척박한 풍광,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호수들은 티베트인들이 끝없이 마음을 낮추면서 자연과 부처님께 귀의하는 까닭을 친절하게 일러주는 듯하다. 중국인들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해 놓은 거대한 칭장 철로와 역사들, 칭장열차에 전기를 공급해 주는 전기 철탑들〈사진 아래〉 그리고, 3000m 고지에 세운 도시 등 일체의 조형물들을 티베트의 고원은 넉넉히 품어 안을 만큼 웅장하고 자비로웠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멋대로 산을 파헤치고 터널을 뚫어 철로를 놓고 수십만이 거주하는 도시를 건설했음에도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 또한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차 옆길로 우뚝 솟은 전기철탑들은 수천 년을 버틸듯이 오만함을 뽐내며 이웃한 설산들에게 시비를 걸어보려 하나 설산은 늘 넉넉한 웃음으로 철탑을 끌어안고 있는 형상이다.

4000m 고원지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눈에 비친 티베트의 자연들 역시 티베트인들이 자연과의 합일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산꼭대기의 한 편에, 될 수 있으면 소박한 규모로 룽다를 걸어 성지를 표시하거나 어느 고승의 초르덴를 세우더라도 나지막한 지대에 작은 규모로 세워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마음들이 엿보인다. 숲이 넉넉할 때는 더욱 화려하고 장엄하게 룽다를 걸어 귀의처를 표시하지만 척박한 계곡과 고산지대에선 될 수 있으면 작은 규모로 자신들의 영성을 표현했다. 간혹 눈에 띄는 티베트인들은 될 수 있으면 천천히 걸었다. 평지에 비해 산소량이 60% 수준 밖에 안 되는 티베트 고원에 적응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자연에 귀의하면서 오롯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민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쿤룬산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으로 눈물이 마를 줄 모르지요 / 독수리도 오르지 못하는 그 곳 / 탕구라산에 이르면 손으로 하늘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다시 또 이어지는 고원의 철길, 밖의 풍경을 보면 볼수록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궁금증만 커졌다. 녹색 기운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척박한 설산과 거친 들녘, 살을 도려낼 것처럼 차갑게 보이는 호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곳엔 야크를 키우는 목장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간혹 순례를 하는 티베트인들도 스쳐 지나갔다. 티베트의 옛 국가였던 7세기 경 ‘토번 왕국’ 당시에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고원을 지나며 수미산으로 향했다. 힘에 부치거나 병든 순례자들은 순례 도중 세연을 다하며 흙과 물, 온기, 바람이 되어 다음 순례자들을 맞이했다. 그러한 인연이 이어져 오늘의 순례자들 역시 옛 순례자들이 그러했듯이 ‘옴마니 반메 훔’을 염송하면서 윤회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발원하며 순례에 나선다.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순례자들의 ‘멈추지 않는 기도’가 마음의 귀를 열게 한다.

가끔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보십시오
또 가끔은 홀로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아 보십시오
가슴은 맑아지고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바로 우리가, 돌고 도는 자리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조그만 안식을 얻는 것이지요
찰나를 영원으로 인식하고 그것마저 넘어 적멸의 자리를 꿈꾸는
눈 시리게 푸르른 날, 여러분 모두가 나그네였습니다
-『티벳 불교의 향기』 중에서
 
티베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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