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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4.침묵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 어떤 것도 마음이 만든 이미지일 뿐
언어로는 결코 진리 표현-전달 불가능해

변계소집은 형상에 의해서 무자성이고,
의타기성은 스스로 그러한 성품이 없고,
원성실성은 앞에서 말한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집착을
멀리 떠난 까닭에 무자성이다.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이것은 제24송이다. 이것은 원성실성, 의타기성, 변계소집성이 무자성인 이유를 각각 다시 밝히고 있다. 23게송은 무자성임을 선언한 것이고 여기서는 무자성(無自性)인 근거를 논한다.

먼저 변계소집이 무자성인 이유는 형상 그 자체가 무자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형상은 인식된 이미지, 표상을 말한다. 앞에서 실례를 들었듯이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한 것과 같다. 새끼줄을 뱀이라는 착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성품(無自性)을 갖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한 사람은 이것이 오류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런 종류의 착각은 일상에서 상당하게 자주 발견된다. 어떤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데 몇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자신감을 잃고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잘 부르지 못한 학생의 경우와 같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밖으로 나간 것이지만, 그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를 범한 경우이다. 다른 예를 들면 수학에서 원이란 단지 모양일 뿐이고 실제로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표상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성을 가질 수가 없다.

둘째로는 의타기성도 역시 무자성이다. 2개의 볏단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을 의타기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H2O는 2개의 수소와 1개의 산소로 구성된 물의 화학적 구조이다. 물이란 구조는 수소와 산소가 상호 의존된 상태로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존재한다.

물은 산소와 수소의 상호결합, 상호 의존성에서 존재하게 되는 까닭에 그 자체의 고유한 자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일상에서 남편은 절대적으로 아내와 연결된 사회적인 상호 의존된 관계, 관습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 자체로 성품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것은 언제나 아내와 연결된 관계, 맥락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를테면 아내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사람을 남편이라는 사회적인 용어로 호칭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서로 의존된 모든 현상은 스스로 자체의 성품을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이 자체로 성품이 존재한다고 하는 착각이고, 언어적인 분별의 결과로서 마음의 작용일 뿐이지 스스로 성품을 가진 실체는 아니다.

셋째로 원성실성은 역시 무자성이다. 자아와 세계라는 견해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상과 모양에 의해서 파악할 수가 없고, 그것은 오히려 금강경에서 말한 바처럼, 일체의 모양과 형상이 본래 없음을 자각함으로서 도달한다. 자아와 세계는 어떤 형상과 모양으로서 형상화한 비유이고 문학적인 표현이다. 오히려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원성실성에 도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떤 성품을 가질 수가 없다. 만약에 어떤 성품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때의 원성실성은 바로 변계소집이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어떤 모양과 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은 실제로는 변계소집성이 아니고, 의타기성이 아니고, 원성실성이 아니다. 단지 이름하여 변계소집성이고, 의타기성이고, 원성실성이다. 단지 이것은 마음의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자성이다. 우리는 자꾸 말이 있는 곳에는 그 사물도 실재한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하지만 불교, 유식에서는 사물은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의식에 의해서 표상된 이미지, 말만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언어에 의해서는 결코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고,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말할 수 없을 땐, 다만 침묵을 할 뿐이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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