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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7.그들만의 서방정토 포탈라궁 [上]

기자명 법보신문

달라이라마와 함께 타고 갈 꿈의 반야용선

 
티베트인들은 포탈라궁을 그들만의 극락정토로 꿈꾸었다. 포탈라에서 바라볼 때 왼편에 있는 작은 연지에 비친 포탈라는 서방정토의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을 상징하듯 그 모습이 신이하고 장엄하다.

감히 포탈라궁 정면에 섰다.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자연스레 무릎을 꿇고 포탈라 초입의 담장에 이마를 대고 합장했다. 그리고 1300여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온전히 포탈라를 보살펴주신 불보살님들과 달라이라마, 수 없이 많은 티베트 민초들의 가피와 보시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이 옛 모습 그대로, 그들만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이곳 포탈라에 다시 모이게 하소서. 포탈라를 지켜주신 수많은 인연 공덕의 가피에 귀의하오며 온전한 티베트의 모습으로 몬람축제(티베티인들의 대규모 기도)가 다시 열리게 하소서. 포탈라 보살님께서도 영원불멸하소서.”

라싸와 포탈라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가 연화좌대에 올라앉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연잎을 닮은 라싸의 고봉들이 연화좌대라면 라싸의 정수리에 나투신 포탈라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듯 그 장엄함이 오감(五感)을 충만하게 한다. 건축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고 자연 환경 역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만큼 척박한 이곳에 포탈라를 건립하는 과정은 신들의 이야기처럼 설화적이다.

티베트 고대 역사에 따르면 포탈라는 7세기경 티베트를 통일한 위대한 지도자 송첸 감포 대왕이 라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붉은 언덕에 명상을 하기 위해 지은 임시 법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후 1000여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17세기경 제5대 달라이라마는 1645년부터 1649년까지 5년간의 공사끝에 9층 높이의 백색 궁전을 완공한데 이어 다시 포탈라의 중심인 붉은 궁전(홍궁)을 건립하려 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13층 높이의 홍궁이 2층 쯤 완성되었을 때 입멸했고 달라이라마는 죽음 직전에 내각의 섭정에게 자신의 죽음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신의 죽음을 대중들이 알았을 경우 자칫 홍궁 건축이 중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섭정은 달라이라마의 유지를 받들어 “성하께선 오늘부터 10년 동안 명상에 들 것”이라고 민중들을 향해 선포한 뒤 공사를 다시 추진한다. 달라이라마의 죽음을 비밀에 부친 채 12년 동안 공사를 시행해 결국 1694년 홍궁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참으로 신화 같은 이야기이다. 하루 종일 달라이라마에 귀의하며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이 자신들의 귀의처인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무려 12년 동안이나 공식 석상에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그 지도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궁전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니, 민초들의 달라이라마를 향한 영원불변의 존경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순례에 앞서 포탈라의 전체 모습과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니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이 포탈라에 부여한 신앙적 의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탈라에 구현하고 싶었던 그들의 이상향, 그것은 바로 미륵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정토 세상이 아니었을까. 포탈라의 정면에는 커다란 연지를 조성해 포탈라가 늘 이 연지에 비쳐 마치 미륵세상으로 향하는 배를 연상하도록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포탈라 정면의 대형 연지는 볼 수 없다. 중국이 티베트 해방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좌우의 소형 연지는 그대로 놓아둔 채 중앙의 대형 연지를 흙으로 메운 뒤 인민광장을 세웠기 때문이다.

포탈라와 연지에 비친 포탈라, 그들의 그것은 우리의 ‘해수관음신앙’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티베트인들 역시 포탈라란 궁전을 관세음보살이 미륵부처님을 받들며 주석하는 연화세계로 여겼을 것이며 연지에 비친 포탈라를 달라이라마와 함께 서방정토의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믿었을 것이다. 130m 높이의 포탈라와 붉은 언덕을 오르는 길은 인간의 삼라만상을 표현하듯 지그재그 형태로 조성돼 있었다. 포탈라의 홍궁과 백궁을 둘러싼 담과 자연석, 나무에는 경구를 새기고 오색 룽다를 걸어 팔만사천법문을 설한다.

 
포탈라의 백궁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 계단은 달라이라마 전용 계단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포탈라의 신앙적인 완성은 궁극적으로는 티베트 불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성지돌기(코라)를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달라이라마에 귀의하기 위해 성지순례에 나선 티베트 불자들의 기도에 의해 포탈라는 비로소 완전한 연화세계로 화현한다. 중국의 무자비한 식민적 침탈에도 티베트 불자들의 수행과 정진은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하다.

지난 130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은 티베트의 후예들이 포탈라에 귀의한다. 초를 공양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초를 올리고 쌀을 공양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쌀을 올리고 금을 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금을 보시하면서 포탈라를 연화세계로 완성하기 위한 기도 또한 멈추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과거의 악업에 대해 참회하고 가장 맑고 아름다운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를 올리고 그리하여 극락으로 향할 수 있는 미래를 맞이하려는 티베트인들의 쉼없는 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포탈라는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이 꿈꾸는 극락정토이며 샹그릴라이다. 그러기에 포탈라에서, 그 주위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반야용선에 승선하기를 일심으로 염송했을 터. 한참 일해야 할 오전 11시인데도 성지돌기를 하는 티베트인들은 포탈라를 포위하고도 남을 정도로 넘쳐났다. 그 행렬은 거대한 인간 띠로 된 원이 되어 포탈라를 둘러쳤다. 중국의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인민광장을 뒤로한 채 포탈라 정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 역시 중국이 그 어떤 탄압을 하건 간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수행 삼매에 들어 있다. 마치 50년 전 달라이라마가 주석했던 그 때 그 시절처럼. 검붉은 티베트인들의 코라 행렬을 보고 있자니 참회의 게송이 떠오른다.

만년설산이라도 햇볕이
끊임없이 내리쬔다면
설산은 그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녹아내리리
억겁의 세월동안 이어져 온
죄악의 설산이라도
햇볕과 같은 계율 염송으로서
멸할 수 있으리

천지 사방이 암흑으로
겹겹이 쌓여 있어도
밝은 등불 하나로 암흑을
남김없이 몰아내리
억겁의 세월 동안 쌓아 온
악업의 암흑 역시
염송의 등불로서 단박에
물리칠 수 있으리

 <참회의 게송 중에서>

이 게송에서 말한 것처럼 참회는 악업을 씻어내는 최상의 도구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Lam Rim)의 저자인 티베트 불교의 중흥조 쫑카파 대사께선 참회를 통한 업장 소멸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염송의 등불’을 제시하셨다. 참회를 하려면 삼과(三果)가 일어나는 도리를 깨달아야 하며 금강살타의 참회 진언을 쉼 없이 염송함으로써 죄악과 악업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설하고 계시다.

쫑카파 대사의 게송과 함께 티베트 경전들을 살피다 보면 유독 ‘만년설산’이니 ‘억겁의 세월’ 혹은 ‘인연의 공덕’ 등 특히 오랜 세월과 관련된 말들이 많이 나온다. 티베트인들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는가를 일러주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포탈라를 건립할 수 있었던 원력도, 포탈라를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끈기도, 포탈라에서 대를 이은 수행 행렬도 모두가 생의 윤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실현된  현상들이다.

100분의 1초까지 다투는 속도 경쟁에 익숙한 우리네 첨단(?) 경제의 시각으로 보는 시간에 대한 개념, 그것은 분명 티베트인이 시간을 대하는 마음과는 차이가 크다. 비록 공간은 다를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그들이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이유는 무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티베트인들의 경우 윤회에 대한 믿음이 투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엔 탐욕의 마음이 자리 잡을 틈이 없다.

그러하니 전생, 그 전생에 지은 과보를 지금의 내 것으로 여기며 이번 생을 촌각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매 시간을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삼독(三毒)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들은 억겁의 세월동안 윤회하면서 자신과의 인연으로 지은, 비록 터럭만큼 미약한 죄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씻어내기 위한 염불 수행에 매달린다.  

2003년 8월, 나는 다람살라에서 담췌 겔췐이란 고승을 친견한 적이 있다. 이 스님은 달라이라마가 인정한 다람살라의 대표적인 교학승으로, 티베트의 대학자를 상징하는 ‘하람 게쉬’학위를 증득한 강백이다. 다람살라 강원의 학장이었던 이 스님은 당시 티베트인들의 윤회에 대한 굳은 믿음을 설명해 주셨다.

“(티베트인들이)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은 윤회를 믿고 그 가르침에 귀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업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씻어내는 수행을 게을리 하면 그 작은 업장은 생을 거듭할수록 더욱 두터운 업장으로 자라 더 큰 악업의 인연을 부릅니다. 그 동안 자신이 이어 온 삶에 대해 끊임없이 참회하는 이유도, 지금 이 시간에 참회하는 이유도 악업의 윤회를 끊기 위해서 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스님은 “아마도 오늘 인연을 보니 한두 해 안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겝니다”라고 말하며 여운을 남겼었다. 당시에는 다람살라에 가지 않는 한 또 뵐 일이 없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스님의 예언과도 같은 이 말은 1년 뒤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담췌 겔췐 스님이 부산의 한 티베트 도량에 오신 것이다. 부산에서 뵌 스님께 뵙자마자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셨느냐’고 여쭈었다.

티베트 고승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잔뜩 기대했으나 스님의 답변은 김빠진 사이다 맛이 생각날 정도로 싱거웠다. 빙그레 웃으시더니 “한국에 가야할 인연이 있었지 뭐, 나라고 다른 신통력이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대한민국이란 머나먼 나라에서 인도 다람살라까지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할 정도의 불연(佛緣)이라면 당신께서 한국에 갔을 때 반드시 찾아오리라 확신하셨던 것이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포탈라의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됐다. 오랜 세월 동안 기꺼이 티베트를 위해, 인류를 위해 넉넉히품을 내어 준 포탈라, 주인을 잃어서일까 생기가 없고 그 느낌이 칙칙하다. 조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왔던 티베트인들은 외부와 멀리하는 것이 자신들의 평화를 지키는 최상의 길로 확신했다. 그런 그들로부터 포탈라를 빼앗은 중국과의 인연은 과연 어느 시기의 어떤 업연으로부터 온 것인가. 포탈라를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고 더디다.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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