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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특집 인터뷰]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덩치에 비해 세상에 미치는 영향 너무적다

 
세상을 디자인하는 남자 박원순. 그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후 그것을 사회로 회향했 듯 오늘날의 불교 역시 세상을 향해 대안과 실천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정하중 기자

국내 1호, 아니 전 세계 최초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가 된 남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다. 2006년 신실학운동을 구현할 수 있는 중추로 정부와 기업, 민간이 연계된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이래 그는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희망을 만드는’ ‘희망을 나누는’ 그리고 ‘희망을 심는’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최근 발간된 그의 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희망을 심다』의 제목처럼 그의 화두 역시 늘 ‘희망’이다. 화려한 봄 햇살 속을 매서운 바람이 마구 헤집던 4월 22일 오후, 사무실 이전(희망제작소는 4월 26일 평창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을 앞두고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손을 놓지 않고 있던 박 상임이사가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30분, 1시간 단위로 빼곡이 일정이 적혀 있는 그의 펼쳐진 다이어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가 만나야할 사람, 찾아야할 현장이 그만큼 많은 탓이리라.

“세상엔 다양한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흑백이 아닌 무지갯빛이어야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는 똥을 치워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거름삼아 먹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순환입니다. 그 속에서 각각의 역할이 다르며 그 과정 속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 그리고 자신의 책에 손수 적어 건 낸 ‘세상에 나누지 못할 가난은 없습니다’라는 문구에서 전해지는 그의 소신. 인터뷰 내내 박 상임이사에게서는 ‘이 안에 희망의 씨앗들이 가득 차 있으며 그의 발끝을 따라 언제라도 거친 땅에 떨어져 싹 틔울 준비가 돼 있다’는 씨앗들의 소곤거림이 들려오는 듯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다”는 독서광답게 분야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책들로 가득 찬 그의 사무실에서 영화 ‘300’을 패러디해 만든 작은 포스터가 눈에 띤다. ‘힘내세요, 원순 씨’라는 카피 아래 울퉁불퉁 복근을 드러낸 약간 ‘민망한 복장’의 박 상임이사는 ‘희망이 공짜로 생기남유~’를 외치며 밝게 웃고 있었다. “후원회원 모집을 독려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만들어 준 포스터”라며 쑥스러워했지만 희망에 대한 신념 못지않게 희망은 결코 ‘공짜’ 가 아니라는 그의 철학은 손에 든 창과 방패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

희망과 나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목마른 시대, 불교계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불교는 어느 곳을 찾아 희망의 씨앗심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듣고자 자리를 마주했다.


▷먼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계와 불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부처님오신날을 대표하는 ‘연등’은 온 세상을 밝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시대에는 여전히 절망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러한 때 연등이 단순한 등의 의미를 넘어서 세상의 어둠이 걷힐 수 있도록 불을 밝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부처님오신날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에, 머리에, 지혜의 등불이 켜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결과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 만큼 불교계가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가능하도록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

▷‘Social Designer’라는 직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으며,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다. 늘 주머니 속에 작은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세상을 보고 기록하는데 ‘저것은 이렇게 바꿔야 하는데’ ‘이것은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사회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였다. 지금 나는 변호사도 아니고 스스로를 시민운동가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하면 사회를 더 아름답고, 더 품격 있고, 더 인간적이고, 더 민주적이고, 더 삶의 질이 보장된 곳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소셜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세계 최초더라(웃음). 디자인철학은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비전이나 역할이 시대나 사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6·70년대는 먹고 사는 것이 과제였고, 7·80년대는 민주화가 문제였다. 그 다음 90년대를 거치며 삶의 목표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민주주의, 환경 보호, 문화예술의 확산, 소수자의 권리 보호 등 다변화돼 갔다. 이런 욕구들은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삶의 질이 보장되고, 생태적이고, 문화예술이 꽃피는 사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가치의 덩어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사회를 디자인하고, 그 과정에 보다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통로를 만들어 가는 기술자가 되는 것이 내 일이다.”

▷불교계에도 그런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불교계의 최대 사건인 범불교도 대회만 해도 다양한 평가가 엇갈리는데, 항상 거론되는 문제점은 사회운동에 대한 불교계의 빈약한 노하우와 접근방식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수많은 구도의 방식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고행을 통한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만을 강조하지 않고 깨달은 바를 세상에 퍼트린데 있다. 자신의 깨달음을 자기 혼자만 갖지 않고 온 세상에 널리 퍼트려 중생을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이 그런 불성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스스로 깨달음을 갖는 동시에 그것을 사회에 널리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석가모니의 지향점이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불교 속에 전통으로 남아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다. ‘대승’은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려와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불교가 자신 수행을 위해 여전히 숲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수행이 우선돼야겠지만 불교가 갖고 있는 자산, 전통이 크기에 아쉬움도 큰 것이다. 외형으로만 보아도 불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교 조직이다. 그런데 그 덩치에 비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적다. 스님들이 절 안에만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원효 스님처럼 스님들이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터전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종교는 또 하나의 사회 운동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스스로 하고 혼자 이루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깨달음조차도 세상 속에서 이뤄진다고 본다.

삶의 부딪침과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본다. 좀 더 현실 속에 깊이 들어와야 된다. 복지 문제든, 경제 문제든 새로운 세상을 여는 활동을 다양하게 펼쳐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활동을 많이 안하고 있다고 본다.”

▷한 때 불교계도 환경운동에 적극 앞장선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계의 사회 운동이 많이 침체된 모습이다. 불교계의 사회운동이 이처럼 낙후된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불교계에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성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운동이라고 해서 반대만 하는 것은 운동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운동도 많다. 나눔 운동만 봐도 그렇다.

불교계가 보시는 그렇게 많이 받지만 과연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 절 새로 짓는 것도 중요하고 복지사업도 하고는 있지만 분명 한계를 보이고 있다. 나눔 운동에 있어 과연 불교가 우리 시대 나눔의 중심이 되고 있는가. 금전의 나눔 뿐 아니라 정신의 나눔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가. 사회적 약자, 소외층, 소수자 등과 함께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불교는 미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안적 사회 체제, 대안적 공동 체제에 대해 다양한 고민과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너무 보수적이고 너무 닫혀 있지 않나 싶다.”

 

불교 가르침은 생태적 … 채식식당만 열어도 반향 클 것

‘사회운동’은 항상 피곤하고 고난에 차 있는 일‘
‘94년 종단 개혁 참여…정계 진출은 관심 없다‘

 

▷불교계의 사회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인가.
“불교는 지금도 많은 역할을 하고 했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수배자들을 불교계가 품어준 것 만해도 큰 역할이었다. 예전엔 가톨릭계와 명동성당이 그런 역할을 했었다. 당시 신부님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러한 운동과 주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쫓기는 자들’에 대해 종교가 민주주의의 전당과 같은 역할을 해준 것이다. 조계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단체나 기관이든 다 잘 할 수 만은 없다. 특히 불교계에 대한 바람이 크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실천행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어둡고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훨씬 더 빛나는 동방의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에 불교계의 리더들이 관심을 가져야한다. 무지도 죄다. 구한말 때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알았더라면 식민 지배를 겪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내 안의 도를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길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를 구제할 것인가. 이것은 불교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렇게 존경받았던 이유도 시대의 인권과 정의에 대해 늘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그런 친구가 어디에 있는가.”

▷불교계는 지난해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 동행을 출범시켰다. 갓 탄생한 아름다운 동행이 어떻게 활동해야 좋을지 조언을 한다면.
“나눔의 방식이 창조적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재단의 경우 소년소녀 가장 돕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길 위의 희망 찾기’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한 번도 여행을 가보지 못한 소녀 가장들이 많았다.  그래서 만든 ‘여행 보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문화 나눔 행사도 마찬가지다.

낮 시간 동안 빈자리가 많은 극장 좌석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늘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직접 사업을 하나도 하지 말고 지원만 해줘도 된다. 세상을 위해 뛰는 사람을 지원해주는 것도 나눔 운동이다. 우리나라엔 그런 지원이 많지 않다.”

▷빈그릇운동을 비롯해 봉은사 미래위원회 위원장 등 불교계에서 주도하고 있는 활동에도 꾸준히 동참하고 있다. 불교와의 인연은.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종단의 법률 고문 역할을 맡아 종헌종법 만드는 일에 깊이 참여했었다. 그 이후에도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많다. 도법 스님, 수경 스님, 명진 스님 등과도 가깝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룸비니’라는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신심 깊은 불자는 못된다.”

▷지금 불교계에서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위한 국토순례, 생명과 소통을 위한 오체투지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불교계가 사회운동을 넓혀 나간다면 어떤 접근방식이 좋겠는가.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이 중요하다. 나 역시 정토회의 빈 그릇 운동에 동참했는데 참 큰일이고 좋은 운동이다. 음식을 적게 먹고 남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더위와 친해지는 에너지 절약 운동 등도 있다.

그런데 이런 대부분의 운동들의 답이 불교 안에 있다. 불교는 가르침과 지향하는 삶의 형태 자체가 생태적이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이라는 것 자체가 지구를 살리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채식 운동을 불교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계종에서는 사회적 기업으로 채식식당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체투지와 국토순례가 효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 사회 전체가 둔감하다고 생각한다.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체로부터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 감수성 같은 것이 매우 둔해져 있다. 운동이라는 것은 늘 피곤하고 고난에 차 있고 효과는 잘 안 나고 절망스러운 것이다. 본래 그런 것이다. 당장 효과가 나서 세상이 바뀔 것 같으면 그런 운동을 무엇 때문에 하겠는가. 힘들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언뜻언뜻 남고, 그러면서 조금씩 바뀌어 간다. 그런 믿음을 갖고 가야 한다. 특히 운동가들이 자족적인 운동만 해선 안 된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임팩트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조직하면 더 키울 수 있는지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고민해야 한다.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도 서울 입성과 회향에 맞춰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사회적 임팩트가 커지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타져 나오는 오늘날 불교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지치고 병들고 대립과 갈등이 심한 시대에는 이런 것들을 종합해 내고 정신적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불교의 역할이 크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이고 결혼하는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시대,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인식교육, 소통교육, 리더십 교육 등을 불교가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교가 갖고 있는 자산도 적지 않다. 「선가귀감」, 「법구경」 등 수많은 경전 속에 담긴 내용들을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들도 나와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자기 각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이 늘 중요하다. 그런 훈련이 돼야 하는데 참선 또한 자기를 찾아가는 동시에 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잘 이뤄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본다.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이 이러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힘이 든다. 희망제작소만 해도 조계종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단 한 번도 대화의 자리가 없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개인의 몸이 아닌 만큼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대 등도 필요한데 솔직히 지금 불교계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했고 나름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도 조계종은 모르겠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복지, 교육, 대북관계, 국제관계가 모두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급변이 일반인들에게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적인 가치, 미래적인 가치가 우리 사회의 비전과 방향이 돼야 하는데 지금 정부의 생각은 굉장히 퇴행적이다. 과거적인 통치 스타일, 소통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소통이 화두인 시대에 그렇게 말을 막아서는 소통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가 그렇다. ‘미네르바’ 사건만 해도 사법부까지 동원한 것은 과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이 아닌 한 대중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 누군가가 잘못된 발언을 하면 그것을 반박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 상생하는 과정이다. 위키피디아(wikipedia.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의 시대로 불리는 우리 시대에 걸 맞는 방식이다. 대중의 지성이 한 사람의 전문가 보다 낫다는 가치, 진리로 가는 길은 많은 사람의 토론에 의해 검증되고 세련되어져 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언로와 소통을 차단하고 나간다면 지금 정부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정부와 지도자는 늘 비판받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개인도, 시민운동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하는데 스스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만물은 유전한다고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나 자신만 변화지 않는다면 썩어 버린다. 나는 오늘도 바뀌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지금 대화를 하면서도 나의 생각을 새로 정리하게 되었고 불교계의 사회운동과 역할이라는 새로운 고민을 하나 더 안게 되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것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늘 새로운 과정에 서 있는 것이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희망제작소가 자리를 잘 잡고 활동하도록 셋업 시키는 일이다. 경제형편도 좋지 않고 특히 지금 정부와는 그리 협조가 잘 되는 편이 아니다. 참여연대가 비판의 힘으로 정부를 변화시키고, 아름다운 재단이 나눔의 정신을 확산시키는 것이라면 희망제작소는 정부나 기업, 민간기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세상을 바꾸어가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 정부가 우리와는 잘 맞지 않으니 일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이런 시련이 우리를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즐겁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계로부터의 구애가 적지 않았을 텐데,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없는가.
“별로 생각이 없다. 있었으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길이 있는 것 같다.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도 이미 큰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박원순 상임이사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으로 구속,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그러나 기소하는 검사가 아닌 변호하는 검사였던 그는 6개월 만에 사표를 제출하고 진짜 변호사가 됐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 사회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가로 활동, 2000년 시민운동가가 뽑은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시민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미국 경제전문지 ‘비지니스 위크’가 선정한 ‘아시아의 스타 50인’에도 올랐다. 2006년에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봉은사 미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06년 민간 싱크 탱크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이후 지역사회에서 대안을 찾기 위해 현장을 가까이 하는 일, 그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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