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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에 남은 경구]한국사경연국회 김경호 회장

기자명 법보신문

분열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

“법성은 원융하여 양 극단을 가지지 않는다” -의상조사 ‘법성게’

의상조사의 「법성게(法性偈)」첫 구절입니다. 법성게는 필자가 본격적으로 불교 공부를 하던 학창시절부터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가장 많이 음미했던 게송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찍부터 사경을 통해 부처님의 숱한 경전과 게송, 역대 조사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일을 일상화했었습니다. 천수경, 예불문, 금강경 등을 독송할 때에도 한 글자 한 글자를 머릿속에 굴리며 음미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렇게 경구(經句)들을 머릿속에 굴리다 보면 어느 순간 인연 따라 총체적인 울림이 오는데, 그 울림은 천지개벽만큼 강렬합니다.

중고등학교시절부터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미린다왕문경, 법구경 등을 특히 좋아하였고, 벽암록과 십현시를 비롯한 조사 어록을 끼고 지냈습니다. 지금은 경전과 조사어록조차도 대부분 관조하지만 법성게만큼은 자주 읊조립니다. 법성게는 부처님 총체적인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너무도 적확하게 표현한 그야말로 ‘게송 중의 금강송(金剛頌)’이기 때문입니다.

약 30년 전의 일입니다. 수많은 경구와 게송들을 읊조리고 다닌 지 수 년이 되던 대학 1학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창호지 문에 환히 비침에 홀연히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번갯불과 같이 그야말로 찰나였습니다. 시간과 공간, 개체와 전체에 대한 모든 의심이 명쾌하게 풀리면서 환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충만은 아마도 그러한 경우를 말할 것입니다. 그 희열은 어느 체험보다도 황홀했습니다. 하여 그 충만한 희열 속에서 그대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법성게의 구절들이 하나하나 명징하게 드러나더니 가장 적절한 비유로 정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얻은 결론은 분별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적인 가치 기준인 분별로 생기는 아상과 아집이 부질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주관을 갖되 그 주관에 집착하지 않아야 함에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사 어록이나 부처님 경전을 볼 때에도 방편과 방편 아님을 구분함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법성게 속에는 법신부처님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즉 시간, 공간, 우주, 불교관 등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법성원융무이상은 ‘법성은 원융하여 양 극단을 가지지 않는다.’로 풀이됩니다. 이는 모든 관점에 우선하여 시간과 공간을 입체적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내용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자아를 객관적으로 살피면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성게를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한 글이 증도가입니다.

법성게가 진리의 몸체를 원론적으로 보여주는 게송이라면 증도가는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흔히 인구에 회자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水是水/山不是山水不是水/山是水水是山/山是山水是水)’라는 내용도 법성게의 핵심을 구체적인 현실 인식의 방편으로 제시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사경수행은 부처님 진리를 경전의 서사를 통해 바로 보는 방법입니다. 사경수행을 함에 경전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늘 곱씹다 보면 부처님 진리를 직접 체득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경수행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부처님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일은 그야말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일입니다. 흔히 부처님 법이 멀리 있는 것처럼 여기는데 부처님 법은 바로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이를 분명히 보면서도 여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필자에게 극명하게 깨우쳐 준 경구가 법성게입니다. 하여 오늘도 필자는 의상조사님을 은사님으로 모시며 법성게를 읊조립니다.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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