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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남은 경구] 불교팝아티스트 김영수

기자명 법보신문

머리 맡에 두고 정진하게 하는 구절

“수행승들이여,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말한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한 것이다.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쌍윳따니까야 (전재성역)

잠자리 침대 맡에 책이 여러 권 놓여 있다.
논어(論語), 파우스트, 맛지마니까야1권, 쌍윳따니까야 4권.
어떤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먹기도 하는데, 나는 위에 열거한 책들이 수면제를 대신한다. 그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쌍윳따니까야다. 왜냐하면 서양에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세다가 잠이 드는 것처럼 쌍윳따니까야에서는 똑같은 말을 전하기 위해서 토시하나 틀리지 않는 말을 화자(話者)만 바꾸어 서술하거나, 거의 같은 형식의 문장 속에서 교리적 단어만 바꾸어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권 12연기를 설명할 때에는 12연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설명하기 위해 거의 비슷한 문장의 구조 속에서 12연기 각자의 명칭만 바뀔 뿐 24번의 반복을 서슴없이 거행한다.
이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연기의 반복을 들으며 삶을 비추어 보았다.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 그리고 한 달, 일 년, 한 생…. 나는 그러한 생을 과연 얼마나 많이 반복하고 있을까?

갠지스강 모래알의 비유처럼 그렇게 긴 시간동안 많은 삶을 윤회(輪回)하면서도 삶에 대한 통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순간의 반복을 반복이라 여김으로써 생의 반복을 거듭하고 있으리라. 순간에 깨어있다면 연속되는 문장의 지루함보다는 부분의 다름을 인식하고 날마다 새로운 일상을 보내게 되고 더 이상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화자만 바뀐 채 같은 문장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교훈이 있다. 말에 대한 말씀은 팔정도(八正道)나 오계(五戒)에 언급되었듯이 매우 중요한 수행의 덕목이다. 특히 자의식의 결부로 인하여 전해들은 말들이 언어로 튀어 나올 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일어난 사실을 최대한 언어로 적합하게 표현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토시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말함으로써 사실의 전달에 왜곡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평소 이야기를 할 때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나쁜 말이나 성내는 목소리를 자제시켜주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업의 성향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난다.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에서 조금씩 단순해지고 담백해져가는 작업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경전을 읽으며 위빠사나명상 수행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며 명상수행이 가져다 준 변화들에 새삼 감사한다. 때로는 조금 힘에 겨워 지칠 때도 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속에는 마음깊이 새겨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말한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한 것이다.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쌍윳따니까야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부처님의 유훈은 제6쌍윳따 하나님의 모음에 나오는 구절인데 독송회에서 읽으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 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힘들거나, 좌절하고 있을 때 가만히 꺼내보는 나만의 경구로 마음속에 새겨 넣게 되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는 정진이라는 단어로 채찍질을 하고, 욕심을 부릴 때는 무상으로 내려놓음을 배운다. 아직까지는 경전속의 구절들이 자장가 역할을 하는 무명(無明)의 삶을 살고 있지만, 방일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무상(無常)의 원리를 깨닫고 해탈(解脫)의 길에 발을 들여 놓게 될 것이다. 오늘밤에도 쌍윳따니까야를 읽으며 잠을 청해야겠다.

불교팝아티스트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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