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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1000호 특집]좋은 책 만들기 30년 김영사 박은주 대표

기자명 법보신문

‘나’ 비운 자리에 세상 담으면 행복해집니다

누구나 별일 없이 살고 싶다. 모진 일들을 겪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 게다가 누구나 더 많은 돈과 큰집, 멋진 차 등을 소유하는 것이 소망이다.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물질의 소유는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움켜쥐려하고 손아귀에 들어 온 것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더 가질수록 다른 사람의 몫은 줄어들고 그로인해 갈등이 생긴다는 사실은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망각하고 만다.

매일 금강경 독송-108배 마음공부

허나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한 사람이다. ‘나’라는 욕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주변 사람들을 담고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30년 동안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을 만들려고 노력한 김영사 박은주(51) 대표에게 행복을 물으러 5월 20일 서울 가회동 안자락에 자리 잡은 김영사 사옥을 찾았다. 나긋나긋하고 편안함이 풍기는 그의 목소리에선  ‘별일 없이 살았어요. 그리고 행복해요’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강원도 백담사 근처 용대리, 교편을 잡고 있는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소녀는 자연스럽게 책을 접했다. 아버지 서재에 꽂힌 책들을 꺼내 읽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헤르만 헤세나 키에르케고르를 읽으며 막연히 살아 숨 쉬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고, 이화여대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그 물음을 풀고자 철학을 부전공했다. 그러나 물음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고 왜 살아야 하는 지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의문은 깊어만 갔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아니면 취업. 1979년 당시 동국대 출신만 진학이 가능했던 불교대학원을 포기하고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평화출판사에 입사했다. 3년 간 일을 하면서 성취라는 짧은 행복감을 맛봤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저자 섭외, 원고 교정, 디자인 작업을 거쳐 한 권의 책이 빛을 볼 때, 그 책이 서점에 놓인 순간을 접할 때면 기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별일이 없었던 그에게 1982년 김영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기막힌 ‘별일’이 생겼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멘토와의 인연과 조우한 것이다.
“제 인생의 스승은 당시 김영사 김정섭 사장님이에요. 그 분은 아침저녁으로 금강경 공부를 하셨어요.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 공부까지 도와주셨죠. 저는 업무를 보고하다가 늘 궁금했던 윤회의 유무와 삶에 대해, 우주에 대해, 존재에 대해, 영원과 무한에 대해, 죽음 뒤의 삶에 대해 물었어요. 아, 정말 시원하고 명쾌한 답을 들었어요. 업무 보고보단 사장님과 묻고 답하고 하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어느 날 퇴근하던 사장님이 툭! 금강경을 책상에 놓고 가셨단다. 공부해보란 뜻으로 알고 그날 저녁부터 읽었다. 1984년부터 독송했으니 26년 째 매일 새벽 4시 반 금강경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금강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오래 읽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금강경 말씀대로, 즉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제 삶의 한 가운데에는 항상 부처님이 중심에 계세요. 개인적인 삶이나 공적인 삶이나 부처님 말씀대로 살며 행하려고 노력하는 중 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나’를 내려놓는 치열한 과정이다. 행복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덤(?)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나’를 버리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독자와 직원들의 편의와 건강, 나아가 출판계와 사회, 국가, 세계를 먼저 떠올린다. 주변의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곳곳에 정신을 맑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배치된 사옥도 그렇게 탄생했다. 자꾸 일어나는 ‘나’라는 욕심과 자만을 내려놓으려 108배도 아침저녁으로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수시 때때로 고개를 처 드는 ‘나’라는 녀석을 오체투지로 낮추고 더 낮추고자 함이다.

‘정직-나눔-존중’이 경영 철학

“내가 빠져야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나를 살리는 길이지요. 내가 움켜쥐려고 하면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야 하잖아요. 예를 들면 나를 위해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책에 공을 덜 들인다면 출판사는 어떻게 될까요. 결국 나를 죽이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었을까. 병아리 편집장 시절 잘 팔리는 책이 그의 목표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 꿈은 일찍 접었다. 당시 사장으로부터 책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자세를 배웠기 때문이다. “팔리는 책을 좇지 말고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드는데 힘쓰라.”

1989년,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덜컥 대표를 맡게 된 그. 김영사가 세상에 필요한 책, 독자가 김영사를 믿고 사서 읽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책, 세계라는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책을 꾸준히 내기 위해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할 수 없어 1995년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종교가 불교라는 자신감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풍토가 불교는 미신이며, 구닥다리 세대의 산물이라고 여기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접했다. 서구 물질문명 속에 풍요롭게 살고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들의 마음 속 빈곤함, 즉 풍요 속 빈곤을 체험한 것이다. 그네들의 마음공부에 대한 열의를 통해 그가 이미 갖추고 있었으나 업수이 생각했던 불교의 세계를 자각했다. 마음속에 감춰둔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팔리는 책 아닌 필요한 책 제작

3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출간이 주춤했던 마음 닦는 불교 서적들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았다. 총 35종의 불교 서적 중 2000년 들어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성철스님 시봉일기』, 『나를 깨우는 108배』, 청안 스님의 『꽃과 벌』과 『마음거울』, 『티베트 사자의 서』, 『부처를 쏴라』 등 25종의 불교 서적이 김영사의 이름을 달고 출간됐다. 최근에는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의 가르침을 모아 『행복한 출근길』을 내고 직장인들에게 따뜻하고 자비로운 시선과 위로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생겼다. 불교 책을 많이 내다보니 한 스님이 ‘김영사(金寧寺) 주지 귀하’라고 그를 호칭하며 편지를 보냈다고. 그가 “김영사의 社자는 절 寺자”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고요한 산사에서 용맹정진하는 것도 중요하고,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며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는 것도 함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나누는 마음, 사회와 계속 호흡하기 위해 공동체에 베풀어야 한다는 진리를 유학 시절 새삼 깨달았다. 김영사는 네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다는 진리를 유니세프, 경실련,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열심히 활동하는 NGO 단체에 매달 후원을 하며 실천에 옮기고 있다.

또 아름다운 가게에 2억원 어치의 책을 기부하고 시민방송 RTV에 1억원을 희사하기도 했다. 김영사의 경영철학이 정직, 존중, 나눔으로 집약되는 것을 단박에 보여 주는 이런 사례들은 박은주 대표 한 개인에서부터 직원들까지 그 공동체의 마음이 ‘나’보단 독자와 사회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김영사가 지금까지 낸 책 중 그가 대표 재임 시절 낸 책만 1300여 종.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들려는 그와 김영사의 노력은 독자들에게 100만부 이상 선택받았던 책으로 증명된다. 『세상을 넓고 할 일은 많다』, 『닥터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 밀리언셀러와 ‘앗!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 등 천만부가 넘는 김영사의 빌리언셀러들은 그와 김영사가 책을 내는 마음이 독자들에게 통했다는 증거다.

인터뷰 말미, 금강경 중 가슴에 새긴 구절을 알려 달라고 했다.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니라.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뜻이에요. ‘나’란 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없는 ‘나’에 매달려 욕심을 내고 집착하면 마음 속 평화를 잃고 불행해 집니다. 주위 사람들도 힘들어지는 거죠. 모든 일에 ‘나’만 빠지면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나’보단 주위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공부로 생활에서 행복의 밭을 갈고 있었다.

소박한 마음을 지닌 그가 묘비에 남기고 싶은 말은 딱 아홉 글자다.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 어지간히 심심하다. 그가 갑자기 대답이 뻔한 그러나 낯선 질문을 툭 던졌다. “누구나 다  절대 행복의 바다를 향해 가고 있지 않나요?”
문득 봄볕이 유난히 따갑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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