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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1000호 특별대담] 불교 언론의 역할과 과제

기자명 법보신문

“교계 언론은 방향 제시하는 나침반
비판 기능 잃으면 언론 자격 상실”

지난 50년 동안 불교 언론은 양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뤘다. 신문을 비롯해 방송, 텔레비전, 인터넷까지 다양한 언론매체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교 언론은 여러 가지 한계에 직면해 있다. 그 중에서도 언론이 특정 종단, 스님에게 점유돼 홍보 매체로 전락한 결과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감안, 법보신문은 지령 1000호를 맞아 ‘불교 언론의 역할과 과제’라는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5월 26일 법보신문 사장실에서 진행된 이번 대담에는 채한기 상임논설위원의 사회로 조계종 기획실장 장적 스님과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참여했다.  편집자 


사회자
불교 언론은 일반 언론과 달리 종교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도 일반 언론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불교 언론이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장적 스님
불교 언론은 불교라는 특수성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포교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일반 대중들이 불교 언론을 통해 바른 믿음과 신행활동을 익히게 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 건전한 비판과 올바른 대안 제시를 통해 이 시대 종단이나 불교계가 사회적 역할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손석춘
언론은 공론의 장이라고 한다. 언론은 사회에서 풀어야 할 문제점들을 드러내놓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하는 열린 마당이다. 이런 점은 불교 언론도 동일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불교 언론은 사부대중의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사회자 법보신문이 2005년 독립 이후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종교편향, 종단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 수행 문화 확산 그리고 불우이웃 돕기 등 4가지였다. 특히 종교편향 문제는 교계 다른 어떤 언론보다도 더 중점을 뒀던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나.

장적 스님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종교차별, 훼불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성적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보신문이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는 종교편향 사례를 레이더처럼 감시하고 대응해 왔다.

특히 지난해 봉행한 범불교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는 법보신문이 이명박 정부 들어 발생한 여러 가지 종교차별 사례를 예리하게 추적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열악한 불교 언론 환경 속에서도 법보신문이 정론직필이라는 창간정신을 잃지 않고 고수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사회자
불교계 내부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법보신문이 지나치게 불교 이익에만 앞장서 온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손석춘
범불교도대회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 문제는 불심(佛心)을 자극할 만한 요인이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법보신문의 보도가 불교의 이익을 대변한다든지, 지나쳤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범불교도대회가 끝나고 난 이후 마무리 과정은 조금 아쉽다.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종교편향 정국을 유야무야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끝을 낼 수 있느냐고 비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구나 올해 초 불교계가 연 국태민안 법회에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해 함께 법회를 보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불교계가 자신들 문제에만 치우쳐 이명박 정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것들에 대해 법보신문이 적절히 지적하기는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런 상황은 1994년 종단 개혁 당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법보신문은 종단 개혁에 있어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후 종단 개혁 때 내세웠던 목표가 현재 어떻게 얼마나 구현됐는지, 만약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세밀히 접근했어야 했다.

사회자
일단 문제를 제기했으면 회향까지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다 했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는 진단이다. 또 이는 1994년 종단개혁 때와의 모습과도 비슷한 양상이라는 점도 지적인데, 그러면 1994년 종단 개혁부터 짚고 넘어가자. 공교롭게도 올해가 종단개혁 15주년이다. 1994년 종단 개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장적 스님
내적으로 종무행정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종단의 자주성을 회복했고, 몇몇 스님들이 독점하던 종단 권력구조도 대폭 개선해 제도적으로 권력의 분점을 이뤄냈다. 다만 종단개혁을 일구어냈던 세력들이 좀 더 치열하게 개혁을 밀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사회자
그럼 구체적으로 종단 개혁의 한계가 무엇이었다고 보나.

장적 스님

종단 개혁을 통해 일단 법과 제도는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개혁을 진행했던 세력들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일시에 뒤로 물러나 버리는 바람에 개혁의 대상이 됐던 스님들이 다시 종단의 권력을 점유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록 중앙종회에 일부 개혁세력이 진출하면서 약간의 변화는 가져왔지만 그 세력은 소수에 불과했고 개혁을 더 밀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과 제도를 바꾸더라도 이를 완벽하게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더불어 제도적인 장치 마련뿐만 아니라 인적 청산도 중요하게 고려했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사회자
1994년 종단 개혁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개혁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보신문의 향후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손석춘
1994년 종단개혁 때 법보신문은 개혁의 한 축이었다. 이런 정신을 잘 살려 법보신문이 현재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 개혁을 이끌어 가야 할 주체가 돼야 한다. 특히 법보신문은 독립 언론이라는 점에서 미완의 종단개혁을 완성시킬 수 있는 추동 세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종단개혁 때 뜻을 모았던 스님들을 결집하고 현재 발생된 종단 내부의 갈등구조를 봉합, 건전한 대안세력을 키우는 작업들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자 법보신문은 1988년 창간했지만 지난 2005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교계 최초의  독립 언론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장적 스님
법보신문이 독립 언론으로 출범한다고 했을 때 매우 걱정했다. 그러나 법보신문이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으면서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굳건하게 견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특히 재정적인 안정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 언론을 유지하는 것이 가시밭길임을 잘 알면서도 앞서 설명한 기사선택의 4대 원칙을 견지하면서 정체성을 지켜가는 모습에 많은 독자들이 신뢰하고있다.

사회자
법보신문이 독립 이후에 비판기능을 유지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 가운데는 비판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많다. 비판을 받는 스님들이나 종단은 법보신문에 광고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파사현정이라는 정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독료와 광고 수익만으로 운영되는 신문사 입장에서 경제적 손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장적 스님
건전한 비판은 언론의 순기능이다. 때문에 재정적 한계 때문에 언론이 비판의 기능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물론 법보신문의 비판 보도에 대해 반감을 갖는 스님이나 종단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법보신문의 비판 보도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 독자층도 충분히 있고 또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법보신문이 건전한 비판기능을 계속 유지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후원이나 보시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석춘
독립신문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언론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일간지에 있어서도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독립 언론이다. 어디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기사를 쓴다. 가령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도 보도를 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그대로 썼다는 이유로 삼성은 경향과 한겨레에 1년이 넘도록 광고를 주지 않고 있다.

때문에 최근 세계경제 위기와 맞물려 경영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경향과 한겨레는 삼성과 타협 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런 문제는 독립 언론 자신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멍에라고 생각한다.

다만 교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스님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줘야할 광고를 주지 않을 수 있는지. 왜냐하면 일반사회와 달리 불교는 사부대중의 공동체인데, 그 속에서 적대적인 관계는 없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비판을 했다고 해서 광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성찰해 봐야 할 문제이다. 불교 고유의 포살과 자자의 전통에도 반하는 것 아닌가.

사회자
법보신문의 비판기사에 대해 대부분의 독자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만 일부 독자들은 법보신문의 비판이 지나칠 정도로 날이 서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판의 수위는 어느 정도여야 된다고 보는가.

손석춘
법보신문이 불교 언론이라는 점에서 일반 사회언론과의 구분이 필요하다. 불교계 내부에서 법보신문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특정 종단, 특정 스님 등은 적대적 모순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의 공통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법보신문은 그런 비판기사를 구성하는데 있어 현명함과 슬기로움, 섬세함이 필요할 것 같고, 본사나 종단이나 일반 스님들은 그런 자신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법보신문을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것은 출가수행자로서 옳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양자가 공통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장적 스님
특정 스님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그 스님의 수행과 삶을 함께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비판 받을 일을 했다고 해서 특정인의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 사안 사안별로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런 점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낼 것인가에 대해 내부적으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손석춘
섬세한 기사구성 방식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어떤 종단이나 스님이 문제가 있을 때 날카롭게 사실관계를 지적하되, 충분한 반론권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독자들로부터‘특정 스님과 각을 세우고 있다’라는 느낌보다는 법보신문이 사실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날카롭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충분한 반론권을 행사한 스님도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담겨졌기 때문에 반발도 적을 것이다. 사회자 법보신문은 수행 이야기와 나누는 삶 등 아름답고 살가운 기사들을 지면에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전보다더 향기로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왜 비판적인 모습만이 유독 부각되는지 고민이다.

장적 스님
신문 편집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1면은 종단의 정치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반 불자들은 종단 중심의 정치기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불자들은 불교대학 또는 교계 신문을 통해 교리를 익히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교리보다는 직접 수행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따라서 교양대학에 가기보다는 부처님말씀을 어떻게 수행하고 실천했는가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런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따라서 1면은 종단의 정치기사보다는 수행과 신행활동 등 조금 부드럽고 불교 신심을 키울 수 있는 기사를 반영하고 종단의 정치기사는 가급적 안쪽 지면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편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석춘
신문의 1면에 비판기사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문의 특성은 1면 기사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적 스님의 지적대로 편집의 묘미를 살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독자들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은 참고해 볼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1면에 고정적으로 신심 나는 기사를 고정적으로 연재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사회자
최근 불교계에는 인터넷 매체가 늘고 있다. 인터넷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는 매체도 있지만 특히 일부 매체는 특정한 계파의 스님들이 장악하면서 특정 스님을 대변하는 보도를 한다든지 사실을 왜곡하는 등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장적 스님
교계 인터넷 매체는 2~3년 전부터 급속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떤 정치적 계파의 스님이 인터넷 매체를 만들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계파에서 만들고, 이렇게 특정 목적에 의해 인터넷 매체가 생기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종단에서 어디까지를 교계 언론으로 봐야할 지 고민이 많다.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석춘
‘인터넷 매체를 어디까지 언론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일반 사회에서도 초창기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정도 걸러진 상태다. 특히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생성된 매체는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럼에도 불교계에 특정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한 인터넷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지금 불교계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불교적 가치를 담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종단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삼보정재의 낭비다.

사회자
사회현상에 대해 불교적 가치를 담아내는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

손석춘
지금 당장 일간지를 창간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종단차원에서 종합 일간 인터넷 신문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은 불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일보나 국민일보처럼 특정 종교색을 띠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가치를 담는 것이다. 그래야 불교가 중심이 된 사회적 의제 설정 혹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불교적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종단 집행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다.

장적 스님
현재 종단을 대변하고 뜻을 담아내는 기관지 성격을 담을 수 있는 언론이 없다. 불교신문도 기관지 성격을 갖고 있지만 사실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불교텔레비전도 주식회사 형태의 개인 언론이고 불교방송도 마찬가지다. 이렇다보니 좁은 시장을 서로 나눠먹기 하거나 제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총무원이 언론에 관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현재로선 새로운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손석춘
그러나 그 문제는 반드시 풀어가야 할 숙제다. 불교적 관점에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없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총무원이나 종회 차원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불교가 자신들이 불교의 가치를 담아 정치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 가는데 고민을 해야 하고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는 계속해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사회자
오는 10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벌써 교계 안팎에서 관심도가 높다. 일부 인터넷 매체가 특정인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혹은 다른 후보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는 작업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불교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장적 스님
어느 사회든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종단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스님 한 명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최소 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배출된 스님은 종단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이나 일부 스님들의 정서를 보면 그런 소중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한 스님이 수십 년간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해 왔음에도 어쩌다 한 가지를 잘못하면 더 이상 우리 종단에서 설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그 스님 주변에 있는 스님들도 덩달아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도 그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최소한 총무원장 후보로 나오는 스님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 종단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봐야한다. 불교 언론도 이런 점들을 고려한 상태에서 후보 검증을 한다든지, 관련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손석춘
불교 저널리즘 측면에서 보면 총무원장 선거는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사회로 보면 대통령 선거와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 언론은 일반 사회 언론들이 대통령 선거를 보도하는 방식과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되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총무원장 선거를 계기로 불교계의 현실적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제를 설정하고 총무원장 후보로 나선 스님들이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진행된다면 법보신문은 이번 선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적 스님
1994년 이후 여러 번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역대 선거에서 어떤 후보도 바람직한 종책을 제시하고 이런 평가를 통해 총무원장으로 당선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대사회적, 혹은 종단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원장이 결정되는 구조였다.

이런 까닭에 후보의 종책 공약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단의 정서가 크게 변했고, 특히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종단 구성원들의 정치적 역량이 강화되고 단련됐다. 조정, 합의기능은 물론 포용성도 강화됐다. 이런 정서를 감안해서 언론도 후보문제를 검증해야 할 것이다.

사회자

법보신문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장적 스님
우리 불교환경이 열악한 이유이긴 하지만 불교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 스스로 신심을 키우는 데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법보신문은 최소한 자체적으로 법회도 열고 작은 보시도 하고 템플스테이에도 동참했으면 한다. 그래야 신심 있는 기자들이 신문을 만들어 간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손석춘
1994년 종단개혁은 불교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종단개혁은 불교만의 개혁은 아니었다. 불교적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정토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정토와 거리가 멀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심하고, 중생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적 대안은 무엇이고,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줄 수 있는 기획 기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 기획기사는 법문을 하는 스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법보신문의 노력들, 그것이 한국불교를 새롭게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또 그것이 미완에 그친 1994년 종단개혁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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