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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1000호 특집]정치인과 사찰 편액

기자명 법보신문

편액은 시대정치 담은 타임캡슐
외적 퇴치·국태민안 위해 새겨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액(扁額)의 본 뜻은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다. 하지만 사찰 편액이 가진 의미는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편액은 해당 사찰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식이자 멋을 내는 수단인 동시에 사찰의 내력, 역사와 인물에 얽힌 일화 등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액은 사찰의 얼굴이자 심장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지난해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될 때 불을 끄기에 앞서 편액을 황급히 떼어내고, “그래도 숭례문의 심장만은 건져냈다”고 평가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편액은 사찰 얼굴이자 심장

때문에 예로부터 글씨 꽤나 쓴다는 문인들과 역대 왕·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치인들은 사찰 편액에 자신의 글씨를 새기는 것을 즐겼고, 사찰 역시 유명 인사의 편액에 자부심을 느꼈다. 따라서 편액의 탄생과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해당 사찰과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들과의 일화부터 당시의 시대적 상황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귀양 간 선비가 그 지역의 사찰에 글씨를 남기거나, 남다른 인연을 맺은 사찰 등에 편액을 전하거나 했다는 일화는 역사책이 다루지 않는 역사의 뒷이야기들이기에 더욱 관심을 끈다. 정치인과 사찰편액에 얽힌 일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편액에 얽힌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가 재미있다. 대쪽 같은 꼿꼿함으로 비유되는 추사 김정희가 57세에 제주도 귀양길에 올랐다. 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렀다가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보곤, 한껏 기교를 부린 가느다란 서체에 눈살을 찌푸리며 편액을 내리고 자신의 글씨를 걸었다. 이후 귀양지에서 7년을 보내고 풀려나 상경하는 길, 추사는 다시 대흥사에 들러 스님과 마주앉았다.

 
원교 이광사의 해남 대흥사 편액 ‘대웅보전’.

“내가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편액은 어디 있나? 그땐 내가 잘못 봤던 듯하네. 다시 원교의 편액으로 거는 것이 좋겠네.” 이 일화를 두고 “추사가 고된 귀양살이를 하며 법도를 벗어난 개성의 가치를 깨친 것”이라 한다. 실제로 현재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추사체 역시 귀양살이 중 만들어진 것이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의 영주 부석사 편액 ‘무량수전’.

편액과 정치인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 왕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전해내려 오는 사찰 편액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이 쓴 부석사 무량수전의 편액이다. 낡고 낡은 세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지만 질박하고 중후한 서체는 여전하다. 이 편액은 공민왕이 당시 기승을 부리던 홍건적의 침략을 막고자 하는 발원으로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왕들이 전국의 사찰에 편액을 쓰거나 하사해 흥미롭다. 불교를 탄압했지만 왕실이 사찰과의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던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공주 마곡사에는 조선 7대 왕 세조가 쓴 ‘영산전’ 편액이 있다. 당시 출가해 마곡사에 은거하고 있던 매월당 김시습을 다시 관직에 나오도록 설득하기 위해 행차했을 때 하사한 것이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통분해 출가했던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세조는 결국 마곡사에서 김시습을 만나지 못했고, 그 안타까움을 편액에 담았다. 부정함을 통탄하며 관직을 버리고 사찰에 은거한 신하와 그를 설득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왕, 그 모습들이 아직도 마곡사 편액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순천 선암사의 ‘대복전’ 편액이다. 이 필체는 조선 제23대 왕 순종의 친필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순종은 어머니가 선암사에서 득남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린 후 태어났다. 이에 즉위 전, 본인이 태어난 선암사가 큰 복밭이라 하며 ‘대복전(大福田)’이라는 글씨를 내렸다고 한다.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선암사 편액 ‘대복전’.

칠곡 송림사의 대웅전(大雄殿) 편액은 숙종 어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필에는 낙관이 없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근거자료는 뚜렷하지 않으며 말로만 전해오고 있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 편액도 송림사의 것과 꼭 같다. 흥미로운 점은 보은 법주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역시 ‘보(寶)’자를 빼면 송림사와 불국사의 편액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동방불교대학원대학교 김일두 박사는 「한국사찰의 편액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법주사 대웅보전 편액이 먼저 쓴 것이고 불국사와 송림사의 대웅전 현판은 이를 모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추정했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송림사 편액 ‘대웅보전’.

모든 왕들이 글씨를 잘 썼지만 헌종은 특히 뛰어나 많은 사찰 편액에 어필을 남겼다. 이 중 합천 해인사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 편액이 대표적인 헌종 어필이다. 여기에는 안동김씨와 외척간의 권력 겨루기가 극에 달해 정국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상황에서 나라 안 사방이 아무런 불상사 없이 태평토록 부처님께 서원한 간절한 왕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 밖에도 영조의 고양 흥국사 ‘약사전’, 정조의 해남 대둔사 ‘표충사(表忠祠)’, 숙종의 법주사 ‘대웅보전’, 고종의 예산 보덕사 ‘소석시경’ 등 어필편액이 전국 각지의 사찰에 전해오고 있다.

 
이완용의 김천 직지사 편액 ‘천왕문’.

근현대의 정치인들도 사찰에 많은 편액을 남겼다.
지난 해에는 김천 직지사 대웅전과 천왕문의 편액이 친일파 이완용의 글씨임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발견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완용 일대기 ‘일당기사’의 “다이쇼 12년 11월 직지사 대웅전과 천왕문의 편액을 서송(書送)하다”는 구절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일두 박사는 “무릇 글씨는 묵적의 외형만이 아니라 쓴 사람의 정신이 더 중요한 평가의 대상이 된다”며 “국가와 민족을 저버린 자의 필적을 우리나라의 사찰에 걸어두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찰에 남겨진 역대 대통령들의 필적도 흥미를 끈다. 가장 많은 필적을 남긴 이는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글씨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불교와의 인연에 각별해 여러 사찰에 하사필과 휘호를 남겼다. 김천 직지사의 ‘사명각’과 불국사 불이문 ‘대둔산불국사’ 편액이 대표적이다.

역대 왕·대통령 글씨 다수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불교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사찰에 편액을 하사하기도 했다. 해인사 일주문의 ‘해인대도량’, 부석사 안양루 ‘부석사’, 북한산성 문수사의 ‘문수사’ 편액 등이 이 전 대통령의 필적이다. 문수사는 이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불공을 드려 이 전 대통령을 잉태했다는 곳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알고 직접 문수사를 찾아가 글씨를 써 전하고, 하산하면서도 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가마를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다른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승만의 합천 해인사 편액 ‘해인대도량’.
 
박정희의 경주 불국사 편액 ‘토함산 불국사’.
 
전두환의 인제 백담사 편액 ‘극락보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1년 인제 백담사에서 은둔 하고 있던 중 기존에 걸려있던 ‘대웅전’ 편액을 떼어내고 본인이 직접 쓴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을 걸도록 했다. 이 때문에 불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한편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윤보선, 최규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들은 사찰 편액에 필적을 남기지 않았다. 

송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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