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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1000호 특집]금융위기, 휴머니즘 사라진 신자본주의가 원인

기자명 법보신문

세계석학에게 길을 묻다
도쿄대 기무라 기요타카 명예교수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가 경제적 대공항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와중에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져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고통의 끝이 언제일지 장담할 수 없는 긴 암흑기의 터널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법보신문은 지령1000호를 맞아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일본 도쿄대 기무라 기요타가 명예교수에게 현 인류가 겪고 있는 유례없는 고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불교적인 해법을 듣고 글로 정리했다. 이번 인터뷰는 동양대 강사 사토 아츠시 박사가 4월 15일 일본 현지에서 기무라 기요타카 명예교수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편집자


국가중심자본주의가
빈부 격차·갈등 불러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잘못된 편견 일깨워야

마음 추구 불교가 대안
큰 틀서 봐야 해법 보여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서양 자본주의의 한계가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현 경제위기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경제학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해결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지금 일어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즉 현 상황을 단순히 금융위기로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원인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들이 과학적으로 면밀히 연구되지 않는다면 해결책을 찾았다하더라도 ‘백약이 무효’일 가망성이 많다. 현 위기를 겉면이 아닌 내면으로 파고들어 면밀히 살피는 것이 해결책을 찾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변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초기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의 대치 속에서, 수정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로 변화했고 현대에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즉 ‘신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형태로 진화했다. 이는 개인 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중심에서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로 변질됐다는 것을 말한다.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종주국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길을 걷고 있는 러시아의 변화에서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뒤 곧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를 채택했다. 개인 중심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국가가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신자본주의’로 바로 넘어간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은 미국,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자본주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활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 중심의 경제활동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가주도형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오직 경제적 가치만을 중심에 둔다.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경제, 문화적 가치관을 철저히 외면하고 오직 국가의 이익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다. 따라서 모든 경제활동은 시장의 자율성에 따르지 않고 국가의 인위적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면서 경제활동이 변질되는 것이다.

특히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중시한 나머지 보호무역주의가 강력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제활동은 크게 왜곡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 약자는 더욱 늘어나고 개인 간 빈부 격차도 증가하는 것이다. 국가 간에도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적한 대로 경제위기가 빈부격차의 심화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서도 경제위기로 인해 비정규노동자의 해고 문제가 촉발되고 있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교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가치관은 오로지 경제적인 풍요에만 국한돼 있다. 경제적인 풍부함이 좋은 일이고 곧 행복이라는 가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를 최고의 미덕으로 추앙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고의 선(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회구성원들은 점점 더 극심한 마음의 빈곤을 겪고 있다. 갈수록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들고 자살의 유혹에 이끌리고 있다. 따라서 신기루처럼 경제적 부만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일인지 깨우치게 하는 것이 이 시대 불교의 몫이다.

재화만 있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편견을 버리도록 사회구성원들을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 마음의 풍부함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 목적임을 적극적으로 설해 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사상과 문화를 지배해 온 것은 서양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화의 주류가 동양으로 바뀌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양에서 동양으로 문명이나 문화가 이행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동안 지나치게 서양 중심적이었던 견해들이 최근 중국, 인도 등의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사고의 폭이 유연해 지면서 동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즉 중국, 한국, 인도 등의 경제적 성장과 교통, 통신 수단의 발달로 서양 사람들도 동양 각국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됐으며, 이에 따라 동양의 위대한 사상과 지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주류가 동양으로 바뀌고 있다는 시각에 대한 부정이라고 봐도 되나.

“세계는 단순히 서양과 동양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세계를 구분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거 비교문명학자였던 우메사오 다다오(梅棹忠夫) 선생님은 인도를 ‘중양(中洋)’이라고 파악하면서 동서양으로 단순화 시키는 시각과는 다른 틀을 제시한 적이 있다. 문화적 개념은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파악해야 한다.

즉 문화적 개념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틀 속에 한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인류 문화를 생각할 때 동서의 틀도 상정할 수 있겠지만 좀 더 다면적으로 파악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구도로서는, 동서뿐만 아니라, 남북 등 여러 가지 비교의 형태가 있을 수 있다.”

▷21세기 한일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많다. 아직까지 양국은 역사인식문제로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서로가 솔직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교류가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렇게 상호 교류를 통해 직접 얼굴을 보고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이런 교류 속에서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불교는 아시아의 공통적인 종교로서, 동질의 사상과 문화를 만들어 온 힘이며, 소통의 근거다. 불교를 통한다면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양쪽 국민 모두 민족이나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불교가 갖는 보편적인 진실 속에서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실천해 간다면 양국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불교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에 접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경전을 읽었지만 커가면서 점점 경전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현실의 세속적인 사고방식, 즉 삶의 태도를 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 기회가 조금은 늦었다.

보통 일본에서는 절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대로 출가해 절을 계승하지만, 나는 출가 하지 않고 오히려 학문으로서 불교를 배우기를 발원했다. 불교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본 불교의 현실을 명확히 하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또 일본불교를 통해 이에 대한 통로를 찾고 싶었다.”

▷불교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모든 일을 아주 큰 시각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불교는 크게 ‘세간’과 ‘출세간’을 구분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대개 세간이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지만 불교를 배움으로써 출세간의 입장, 세간을 뛰어 넘는 세계를 알게 됐다.

물론 이는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특정한 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세계를 넘는 것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 끝없이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 불교는 무한한 넓은 생각 속에서 우주를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정리=사토 아츠시 sato_inbuds@yahoo.co.jp


기무라 기요타카 교수는
1940년 쿠마모토 현에서 출생해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도쿄대 대학원에 진학, 1975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대학 객원 조교수, 1983년 도쿄대 문학부 조교수, 1988년 동 대학교수로 취임했으며 2001년 명예교수가 됐다. 전공은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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