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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11.긍정의 에너지 샘솟는 조캉[上]

기자명 법보신문

희망 영성 맑히는 순례자의 충전소

 
라싸의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는 조캉은 마치 파란 도화지에 그린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곳은 라싸에서도 가장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 ‘귀천’(歸天)

비록 이 시(詩)를 처음 대하는 사람일지라도,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하늘로의 귀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三毒)을 내려놓고 하늘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할 도반은 오직 자연, 이슬과 노을빛뿐이라는 시인의 시심에서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고 귀의하려는 맑은 영성(靈性)를 깨닫는다. 대자연의 자유를 갈앙(渴仰)하는 이 영성은 욕심이 없는 무소유의 세상을 그리워한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세상을 회향하는 죽음마저도 아름다운 세상에 소풍 왔다가 즐거운 소풍이 끝난 것쯤으로 소탈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추구하는 삶은 어떠한가. 곰곰이 반추해 보라. 우리는 끝이 없는 욕심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 이웃을 이용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 지식으로는 ‘자연의 고통을 멈추게 하고 함께 상생하자’며 말하고 있지만 몸으로는 자연을 더 빨리 더 많이 개발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그 누구도 함께 동행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하늘로 돌아가는 길에 더 많은 것을 가져가겠다는 식으로 탐욕의 그릇을 채우느라 수없이 많은 고통의 인연과 업연들을 새롭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욕심은 오직 삼독의 대로만을 넓히고 순간에 사라질 욕망의 달콤함을 탐하고 있지 않은가.

잠시 라싸의 하늘을 보았다. 해님이 있는 쪽은 눈이 부셔 볼 수 없어서 잠깐 해님을 뒤로한 채 하늘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푸르디푸른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파란빛 하늘, 그 아래 서 있는 조캉사원(Jokhang monastery)은 푸른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듯 맑고 청아했다. 신들의 땅인 라싸에서도 가장 신성한 곳이 조캉이라 했던가, 조캉에서는 라싸를 지켜 온 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시어 오색의 꽃비를 내리며 눈앞에 나투실 것만 같다.

조캉 앞 너른 광장과 주위에는 그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이제 갓 유아기를 넘었을 법한 어린 아들을 옆에 두고 오체투지에 여념이 없는 티베트인 아낙들과 그 낯빛이 조캉의 구리지붕 만큼이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청년들, 조캉을 오른 쪽 어깨에 두고 끝없이 돌고 도는 삼삼오오 스님들 등 순례 행렬들로 북적였다. 라싸에서 만난 여느 티베트인들처럼 그들의 얼굴엔 순박한 기운이 감돌았으며 손에 들린 낡은 마니차는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돌아갔다. 마치 주인의 순례 걸음을 채근하기라도 하듯.

티베트의 가장 성스러운 성지로 추앙

그리고 순례자들의 입에선 어김없이 ‘옴마니 반메 훔’이란 진언이 흘러나왔다. 티베트인들은 물론 우리네 불자들이 가장 흔하게 염송하는 관세음보살님의 육자 진언, 익히 알고 있다시피 여섯 자로 된 이 완벽한 진언에는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증득하리라”는 지극한 발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육자 진언에 귀의해 완성하고자 하는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극한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의 에너지가 아닐까.

그 에너지의 원천들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과 손자로 이어져 티베트인들을 이루고 있는 오대(五大)를 온전하게 이루고 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무모하고도 바보 같은 티베트의 저항이 지금껏 이어진 것은 아닐까. 무려 반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의 식민적 침탈과 억압에도 ‘희망의 진언’을 염송하는 순례자의 행렬이 끝없이 계속되는 광경은 오늘도, 내일도 조캉에서 뿜어내는 ‘긍정의 에너지’(佛性)가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긍정의 기운을 충전하고자 티베트의 순례자들은 조캉을 최종 목적지로 삼고 있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리를 오로지 오체투지를 하면서 라싸에 도착한 뒤 이곳 조캉에서 10만배 정진으로서 순례를 회향하는 이유이다. 조캉은 일상적으로 희망의 영성과 긍정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충전소였다. 그런 연유로 포탈라에 달라이라마가 주석하고 있지 않거나 민중이 더욱 고통 받았던 어두운 시기에 조캉에는 더 많은 민초들이 몰려들곤 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다.

1년 내내 스님- 불자들로 ‘북적’

조캉은 포탈라보다 1000여년 앞선 시기인 639년부터 647년까지 8년간의 불사를 거쳐 완공됐다. 포탈라가 17세기께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으니 조캉은 포탈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오랜 시간 동안 티베트에 희망을 주었고 티베트인들의 영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 존경받아 왔다. 조캉이라는 사원으로서 라싸의 중심이 되기 이전부터 티베트인들은 조캉을 신들의 위신력이 응축된 곳으로 여겼다. 조캉이 완성되기 전인 서기 640년, 중국 당나라 황실의 딸인 웬쳉(문성, 623~680년) 공주가 티베트 최초로 통일 왕국을 건설한 송첸 깜포(581~649년)와 결혼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칠 때였다.

공주 일행이 라싸에 막 도착했을 때 웬쳉 공주가 모셔온 조오(jowo) 부처님을 실은 마차가 진흙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평생 살아가야 할 곳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일이었기에 공주는 이 일을 몹시 불길한 징표로 받아들인다. 공주의 마음을 더욱 산란하고 불안하게 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직 황실의 명을 받들어 4000m 이상의 티베트 고원 길을 수개월 동안 달려와야 했던 웬쳉 공주, 그녀는 이제 갓 소녀티를 벗은 17세의 어린 나이였으며 그녀가 남편으로 맞이해야 할 티베트의 대왕은 60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대왕과 손녀 뻘쯤 되어 보이는 공주와의 결혼은 중앙아시아를 호령할 만큼 급성장한 티베트와 아직은 힘이 약했던 당의 평화를 약속하는 조약을 의미한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티베트의 라싸로, 그것도 조국의 평화를 조건으로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와야 했으니 어린 공주의 심경이야 어떠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공주는 황실의 예언자에게 마차가 빠진 연유를 물었고 그로부터 티베트의 지형이 악마가 뒤로 누워있는 형상을 닮아 이 땅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공주는 예언자의 말에 따라 티베트 전역에 퍼져있는 악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부처님의 힘에 의지한다. 전국에 걸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사찰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주는 송첸 깜포의 전폭적인 지지로 라싸에도 사찰을 건립했으며 사찰들은 만다라의 방사형으로 차곡차곡 들어서게 된다. 라싸에 조성된 사찰들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았을 때 조캉은 만다라의 중심이 된다. 이것은 티베트를 불국토로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조캉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에너지가 조캉으로부터 나와 티베트 전역으로 확산돼 궁극에는 불국토를 완성하리라는 티베트의 지극한 발원을 뜻하기도 한다.

티베트를 하나로 통일하고 수도를 라싸로 옮긴 뒤 네팔과 중국 황실의 딸들을 아내로 맞은 송첸 깜포, 그는 고대 왕국의 체계를 완성한 뒤 종교적인 통일을 통해 티베트의 정신을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물론 종교적인 통일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였다. 대왕은 두 나라에서 모셔 온 불상을 봉안할 신전을 각각 건립했으며 당시 건립한 신전이 조캉과 라모체이다. 조캉이 조캉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웬쳉 공주의 조오 부처님과 관련이 있다. 송첸 깜포 대왕이 세연을 다하자 공주는 당의 침공을 걱정한 나머지 라모체에 모셔왔던 조오 부처님을 조캉으로 이운해 봉안한다.

이때부터 티베트 사람들은 이 사원을 조캉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조오, 그러니까 공주가 모셔온 부처님의 이름과 법당(캉, khang)의 의미를 더해 조캉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특이하게도 웬쳉 공주가 평생 의지했을 조오 부처님은 12세가량의 어린 석가모니를 형상화 해 앳되어 보인다. 아마도 조오 부처님은 어린 웬쳉 공주에게는 늘 아프고 고통스런 마음을 받아 줄 수 있는 귀의처이면서도 때로는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을 터이다.

순례자 있는 한 티베트의 희망은 영원

티베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송첸 깜포와 비록 조국의 평화를 위해 티베트로 시집을 왔으나 부처님의 자비로 티베트가 평화롭기만을 바랐던 웬쳉 공주, 그리고 그들이 조캉을 통해 완성하려 했던 것이 바로 불국토라는 역사를 알고 있기에 티베트인들은 이곳에 조오 부처님 외에도 송첸 깜포 대왕이 웬첸 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가 이운해 온 부처님들을 모시는 장면을 법당 내에 재현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인도 나란다의 불교학과 탄트라를 티베트에 전승한 파드마삼바바와 티베트의 최대 종파인 겔룩파를 창시한 총카파 대사 등 티베트 불교를 있게 한 역사적인 스승들을 부처님의 좌우 보처로 조성해 법당에 모시기도 했다.

 
조캉에는 1년 내내 순례자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순례자들이 조캉에 밀려드는 것은 부처님 세상을 발원했던 옛 조상님들과의 불연(佛緣)을 다시 잇기 위해서 일 것이다. 순례 행렬은 조캉을 빙빙 둘러 거대한 인간 띠를 이루고 있다. 행렬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나 역시 티베트인들과 조캉을 천천히 친견하려 하지만 순례자들에 떠밀려 자꾸만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다른 이들의 강압에 의해 밀려나는 느낌, 그래도 짜증스럽지는 않다. 앞뒤에 서 있는 순례자들에게서 들려오는 ‘옴마니 반메 훔’으로부터 긍정과 맑음의 기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그래, 이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 제일의 국가 중 하나로 평가를 받으면서도 중국이 티베트를 굴복시키기 위해 택한 것은 강압과 침탈이다. 중국의 그러한 선택은 티베트인들이 대대손손 이어온 희망의 영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중국으로부터 쉼 없이 빼앗기기만 했던 티베트인들이 지닌 힘의 원천은 ‘희망을 간직한 영성’이다. 그러한 에너지가 이어져 왔기에, 앞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지금이야 고통스럽고 힘겨워 보이지만 그들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광장을 한 바퀴 순례하고 나니 조캉의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조캉의 정문에서 이어진 어둡고 컴컴한 미로, 그것과 대조를 이뤄서인지 조캉의 맑은 하늘이 더욱 파랗게 대비된다. 조캉의 하늘은 불보살님이 조캉에 상주하기를 염원하면서 불국토를 발원했던 송첸 깜포와 웬쳉 공주 그 당시에도 변함없이 파랬을 것이다.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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