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싸를 가다] 13.사라져가는 라싸의 영혼들

기자명 법보신문

600년 전통 학인 스님들의 대론〈對論〉 사라지다

학인들의 열정적인 대론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라싸의 3대 사원 중 하나인 세라에는 현재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지 않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진은 라다크의 한 곰빠에서 대론에 열중하고 있는 어린 학인 스님들의 모습.

확인하고 싶었다. 달라이라마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고향 라싸에서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받들면서 살아가는 맑은 영혼들을 눈으로 보고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싶었다. 돈과 힘을 앞세워 중국이 끊임없이 탄압하고 극한의 고통을 주더라도 그것에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것에 불자라는 믿음을 놓지 않으며, 그것에 굴복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영혼을 맑히는 수행에만 진력하는 라싸의 영혼들, 그들은 분명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민족이리라.

독립 봉기로 스님들 도량서 쫓겨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안위와 편안함, 이익을 위해 외부에서 들이치는 힘에 조아리고 안으로는 탐욕과 타협하는 것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수 많은 민족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 역시 외부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고 민족이 하나로 뭉치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했지만 대개는 몇 십 년을 버티지 못했다.

티베트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다수의 민족들이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라싸의 영혼이 얼마나 더 중국의 침탈에 맞서 버틸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다만 반세기 동안 중국의 침탈이 이어졌음에도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긍정의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으며 그들의 달라이라마에 대한 믿음 역시 흔들림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라싸가 아니더라도 그 어디에서 건 티베트의 전통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서 보았다. 일상생활이 부처님의 자비와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한 배려인 그들의 순수한 영혼을. 꾸밈이 없는 자비와 배려가 다른 이에게 자비와 배려를 가르치고 다른 이에게 전이된다는 것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라싸로 향하는 칭장열차 안에서도, 라싸를 순례하는 동안에도 그러한 모습을 느끼고 확인하고 싶은 욕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언어로 된 경전을 읽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젊은 학인들이 손뼉을 치며 역동적으로 체니(對論, 대론)를 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정성을 다해 만다라와 탕카를 그리는 화공이나 스님들을 보고 싶었다. 중국의 공안과 군인이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티베트 독립 봉기’를 감시한다며 준계엄 상황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한 기대감과 희망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욕심이었다. 중국 공안과 군인들의 감시로 티베트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거니와 라싸를 대표하는 도량들엔 스님들 자체가 없었다. 중국어와 중국의 문화역사에 능통한 티베트인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니, “라싸에 있었던 스님들은 2008년 3월 일어난 독립 봉기 사태로 라싸와 이웃한 중국의 ‘청해성’(靑海省)에 있는 불교 교육관에서 정신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스님들이 라싸에 머물지 못하고 중국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상황을 티베트인 청년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하다니, 씁쓸했다. 말이 교육이지 그곳에 갇혀 지내고 있는 티베트 스님들이 어디 정신 교육만 받고 있겠는가,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반성문도 쓰고 ‘중화인이 되겠다’는 충성 서약서도 작성했을 터이다.

그러한 동포들의 아픔을 스스럼없이 설명하는 티베트인 가이드의 모습이 더없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어찌하랴, 중국의 라싸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니 저 청년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나라를 잃은 600만 티베트 민족이 함께 짊어져야 할 아픔의 한 단면이리라.

조캉을 나와 라싸의 하늘을 보았다. 라싸의 현실은 고통스러울 뿐인데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그 하늘을 보고 있자니 다람살라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곳의 여름 하늘은 우기인지라 회색빛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곳에선 라싸와 같은 무게의 답답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라이라마에 귀의하고 함께 호흡하고 자유롭게 정진하는 15만의 티베트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머무르면서 느꼈던 티베트인들의 몸에 밴, 꾸밈이 없는 배려와 자비를 떠올리니 온몸에 온기가 돈다. 반세기에 가까운 지난하고도 고단한 망명 생활에도 그들에겐 짜증스러움이나 증오, 갈등, 불편함, 악함 따위는 없었다. 부정적인 에너지보다는 오히려 ‘그래도 우리는 괜찮아’라는 긍정의 마음들이 읽혔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첫 째 이유는 달라이라마의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경청할 수 있고 그들 고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이 있기에 그들은 그것만으로 행복해 했다. 다람살라의 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티베트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수행의 상징인 법복을 입은 참다운 비구를 만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달라이라마가 개탄스러워할 정도로 게으른 수행자들이 늘어가는 추세였지만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에 대한 배려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때는 8월의 여름, 다람살라의 몬순 기후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굵은 장대비로 이곳의 자연환경에 낯선 이방인들을 괴롭혔다. 나는 보름가량 다람살라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그곳의 중심인 ‘맥로드 간지’가 제법 눈에 익을 정도였고 그곳에 사는 몇몇 티베트인들과는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나눌만큼 가까워졌다. 여러 티베트인 중 특히 기억에 남은 사람은 60세가 훌쩍 넘은 티베트인 할머니로, 그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다. 미소주름이 깊게 패여 웃음이 더 크게 보였던 할머니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더니, 할머니는 매번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곤 했다.

한번은 할머니의 집 앞을 지나다가 먹구름이 쏟아내는 장대비를 만났다. 할머니는 장대비를 바라보다가 나를 발견하시곤 다시 손짓을 했다. 비도 피할 겸 할머니 집에 들어갔더니 빙그레 웃으시던 할머니는 이내 우유와 홍차, 설탕을 섞어 끓인 ‘짜이’를 내놓았다. 빗물 때문에 발에 흙이 묻어 바닥이 더러워졌는데도 할머니께선 불편한 기색도 없이 처음 보는 한국인 청년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할머니께선 영어를 모르셨고 나는 티베트어를 모르니 달리 할 말도 없었다. 그냥 할머니가 타 주신 ‘짜이’만 마셔댔다. 홀짝홀짝 차를 마시다 보니 제법 오랫동안 비를 쏟아낼 것만 같았던 먹구름도 금세 힘을 잃었다. 할머니께서 왜 차를 내 주셨는지 영문도 모른 채 날이 갰다는 손짓을 하며 할머니의 집을 나섰다. 이후 여러 차례 티베트인들의 집에 초대받아 이곳저곳을 다녀봤는데 그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티베트인들도 자신의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집에 온 손님에게 늘 ‘짜이’와 함께 과일이나 육포 공양을 올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차나 음식을 나그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은 티베트인들의 오랜 전통이었다.

세라 사원에도 학인들 한명도 없어

 
스님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세라 사원의 텅빈 광장. 중국 공안들은 2008년 3월, 티베트 독립 봉기 사태 이후 세라에서 관리인들을 제외한 모든 스님들을 청해성에 있는 불교 교육관으로 보내 정신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한 티베트인 청년으로부터는 생명에 대한 지극한 자비의 마음을 배웠다. 그 청년은 달라이라마와의 인터뷰를 주관하는 망명정부의 종교문화성에 근무하는 ‘뗀진 렉셰이’란 20대 젊은이로, 그와 함께 남걀 사원을 나올 때였다. 사원의 입구엔 커다란 소똥 무더기가 있었다. 그 똥을 피하느라 내가 펄쩍 뛰는 순간, ‘뗀진 렉셰이’는 그 짧은 순간에 똥 무더기에 빠져 버둥거리고 있는 곤충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건져 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더럽지 않느냐며 미간을 찌푸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뭇잎에 손을 스윽 문지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의 생명에 대한 배려와 자비의 마음이 어느새 나에게도 옮겨진 것이다. 티베트인들의 배려와 자비가 이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건 아마도 몸과 마음에 밴 배려와 자비이기 때문이다. 꾸밈(相)이 깃든 자비와 배려는 이미 자비와 배려가 아니다. 상이 없는 자비와 배려만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에너지를 지닌다. 그들의 ‘참다운 배려’가 주는 따뜻한 에너지를 되새겨 본다.

행복의 조건-스스로를 위한 배려,
솔직하라!
즐거움의 조건-너와 나를 위한 배려,
상대방의 관점으로 보라!
성공의 조건-모두를 위한 배려,
통찰력을 가져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 『배려』 중에서

잠깐 듣기만 하여도 긍정의 에너지를 갖게 하는 맑고 고운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지며 그 질문에 집중해 보라, 그리하면 배려의 따스한 마음이 증장됨을 서서히 느낄 것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남들이 어떤 불편을 겪을까? 또 남들이 너한테 이런 행동을 보인다면 너는 어떨까? 남들이 어떨지를 잘 생각하고 행동하면 매일 매일이 즐거워진다.”

티베트어, 탕카 등 전통문화 고사 위기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인 배려가 의식하지 않는데도, 일상적으로 몸과 말과 생각으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쉼 없는 정진의 힘과 맑은 영성의 힘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불가하다. 우리 불자들이 수행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님들께서 습의를 중요시 하는 까닭이다. 1300여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티베트인들에게는 이미 부모님에게서 ‘배려’와 ‘자비’란 마음의 유전자를 전승해 왔기에 그것이 일상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라싸를 둘러싼 아픈 단상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동하다보디 어느덧 ‘조캉’이 있는 라싸의 중심 시가지를 벗어나 세라(色拉寺, Sera)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 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 길이 반가운 건 중국의 때가 덜 묻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비포장 길을 따라 10여분 가량 티베트인 마을의 비좁은 길을 가로 지르니 세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오후 3시가 되면 600년 전통의 대론을 하는 젊은 학인들로 북적였던 곳, 그러나 세라의 대웅전 앞 광장은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티베트인 두서너 명이 너른 광장을 지나가고 있어서인지 광장은 더 넓어 보인다. 라싸의 하늘을 찌를 듯이 크고 장엄한 세라의 당간만이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큰 도량이었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몇 명의 학인 스님들이라도 보고 싶은 욕심으로 왔건만 텅빈 광장을 보고 있자니 착잡함이 일어 희망의 마음이 절망의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이방인이 느끼는 그 절망의 두께라고 해봐야 라싸에서 직접 고통을 겪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그것에는 견줄 수 없을 것이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강원의 학장 스님이 설하신 한 마디 가르침을 떠올리니 절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세라 사원 앞에 있는 조그마한 티베트인 마을에서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순례하고 있다.

“이생의 수행자는 전생에도 수행자였으며 다음 생에도 수행자일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고통들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고 금세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 동안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100년이란 세월은 1분 1초에 견줄 만큼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인과는 선함과 긍정의 힘을 따르기 마련입니다.”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