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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16. 혜국 스님의 티베트 불교 이야기 [上]

기자명 법보신문

포탈라는 인류 함께 지은 삼독의 업 씻어낼 정토세상

티베트의 정신적 귀의처인 달라이라마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맑고 아름다운 영성을 간직해 온 티베트 라싸, 중국의 식민적 수탈이 반세기 동안 이어지면서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2008년 11월 3일부터 7일까지 라싸를 순례한 석종사 성지순례단에는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이자 석종사 금봉선원장인 혜국 스님께서 증명법사 겸 지도법사로 동행했다.

혜국 스님은 몇 해 전 북인도 다람살라에 주석하고 계신 달라이라마를 만나 티베트의 영성과 간화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영혼의 땅 라싸를 꼭 한번 순례하기를 서원해 왔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의 수좌를 대표하는 혜국 스님의 눈에 라싸의 현재는 어떻게 비쳤을까. 혜국 스님이 라싸를 순례하고 들려주신 ‘티베트 불교 이야기’를 정리해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우리는 언제까지 라싸에서 티베트 순례자들의 맑은 영성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까.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한국의 불자와 활동가들이 제작해 배포한 티베트의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한 없이 맑고 순수한 티베트의 영성이 느껴진다. 포스터=전진경 작가

라싸를 순례하면서 무엇을 보고 느끼셨나요. 티베트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얼굴 생김새도 우리와 너무 많이 닮아 형제같이 편안했습니다. 기실 저는 이번 순례를 조급한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이곳에 왔습니다. 중국에 복속된 라싸에서 오로지 포탈라궁을 순례하는 불자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아름답고 순수한 티베트의 신앙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티베트가 영혼의 나라이자 부처님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티베트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송첸 깜포 대왕과 그의 아내인 당나라 황실의 웬쳉(문성) 공주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웬쳉 공주가 시집오기 전까지 뵌교(Bon)라는 토속 신앙이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당’과 비슷한 뵌교의 힘은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대륙을 통일한 대왕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티베트 대륙을 통일시키기는 했는데 국민들의 정신적인 통일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보다도 더 큰 티베트 고원을 하나로 묶어 내긴 했지만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서는 통일을 완성했다고 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민 고민하던 차에 대왕은 웬쳉 공주와 결혼을 하면서 티베트의 정신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10대의 어린 공주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조국을 등진 채 이역만리 티베트로 시집을 와야 했으니 그 심경이야 오죽했을까요. 어린 공주가 의지하고 기댈 곳은 가마에 함께 탔던 부처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공주가 가마를 타고 오면서 지극하게 받들어 온 부처님이 있었으니 그 부처님이 바로 조오(jowo) 부처님입니다.

공주에게 조오는 부처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이자 때로는 친구였을 겁니다. 조오의 얼굴을 보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을 것이며 산란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을 땐 조오에 공양을 올리면서 웃음을 되찾았겠지요. 어제 순례하신 조캉 사원에 봉안되어 있는 조오 부처님의 조오는 ‘어리다’란 뜻으로, 12살적 부처님의 앳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조오 부처님은 인도에서도 불상을 모시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조성한 불상입니다. 이 불상의 생김생김을 자세히 친견하고 오라고 한 까닭은 불상에 담긴 의미가 대단히 함축적이기 때문입니다.

티베트 통일 완성 위해 부처님 가르침 수용

조오 부처님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웬쳉 공주에 의해 다시 중국에서 티베트로 오셨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공주의 한(恨)을 달래주었던 이 불상의 여정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장가를 가셨다가 다시 중국에서 티베트로 시집을 왔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일체의 기쁨과 분노,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그 안에 녹아있다 보니 조오 부처님은 온갖 에너지와 온갖 한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공주가 티베트로 시집을 오면서 흘렸던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고통이 서려있었기에, 그러한 아픔을 조오의 자비로 달랬기에 티베트인들은 조오 부처님께 지극정성을 다해 삼배를 올리면 일체의 업장과 일체의 한이 소멸되고 일체의 서원(誓願)은 성취된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너무나도 지극했던지라 그 어린 부처님께 지난 1300년 동안 금을 입히고 보석으로 치장하다 보니 자그마했던 얼굴이 점점 커져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겠지요. 이후 티베트식으로 부처님의 눈을 개안(開眼)하면서 티베트 불상으로 완전히 탈바꿈 한 것입니다. 친견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오 부처님은 중국식도 인도식도 전혀 아닙니다.

조캉에서 수많은 티베트 순례자들을 만나면서 기분이 어땠습니까. 중국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심지어 힘으로 고통스럽게 한 시간이 반세기가 흘렀는데도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처럼 하루 종일 포탈라를 순례합니다. 오직 자신들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순례하고 오체투지를 할 뿐입니다.

그러한 티베트 사람들은 이생에 성취해야 할 첫 번째 서원으로 수미산 순례를 지심(至心)으로 기원합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수미산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그 다음 서원으로 조캉 순례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비록 우리는 독수리도 쉽게 오를 수 없는 5000m 고지에서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하늘 열차(칭장 열차) 덕택에 조캉을 편안하게 순례했지만 그 옛날 티베트의 선조들은 물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티베트인 모두가 조캉 사원에 계신 조오 부처님의 얼굴을 꼭 한번 우러러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

조캉에서 만난 티베트의 어린 거지는 그들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어린 거지가 자꾸 1원을 달라며 쫓아오기에 초콜릿을 하나 주었더니 자꾸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여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저 어린 거지가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나 안 줍나 지켜보았지요. 그랬더니 어렵게 구걸해서 얻은 1원은 불전(法堂)에 보시하면서도 땅에 떨어진 돈은 살살 피해 다니기만 하고 절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맑은 행동은 분명 부모님의 맑은 영혼을 그대로 이어 받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순수한 영혼의 성품이 그대로 저의 마음에 전해오는 듯 온몸이 따뜻해지더군요.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오체투지와 성지순례로 소유욕 버린 민족

 
라싸 순례의 지도법사인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이 조캉 사원 앞에서 티베트 순례자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 라싸로 오기 위해서는 꼬박 이틀 동안 하늘 열차를 타야 하는데 어떤 이는 환상적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고산병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늘 열차를 타고 오면서 4000m 티베트 고원에서 친견한 유유자적한 야크 떼들의 자연스러움이나 아직도 때 묻지 않은 티베트 고원의 고봉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극한의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고귀한 모습은 예가 바로 일체의 생명과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상생하는 불국토이며 영혼의 땅이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티베트를 무력으로 침탈한 중국인들이 포탈라궁에 들러 제일 먼저 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중국인들은 포탈라에 봉안되어 있는 달라이라마의 영탑을 보고 “민초들은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데 어떻게 영탑 하나에 순금 590kg을 쳐 바를 수 있느냐”며 개탄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포탈라는 달라이라마 개인의 것이 아니며 티베트 국민이 몸과 마음(心身)으로 지켜 온 공공의 재산입니다. 티베트 국민들 모두가 공공의 귀의처라는 갸륵한 신심으로 포탈라를 지은 것이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탈라는 당초 송첸 깜포 대왕이 라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붉은 언덕에 명상을 하기 위해 지은 소박한 법당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1000여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17세기경, 제5대 달라이라마께서 5년간의 불사 끝에 백색 궁전을 완공한데 이어 다시 포탈라의 중심인 붉은 궁전(홍궁)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홍궁의 기초 공사가 완성되었을 즈음 불사의 회향을 보지 못한 채 세연을 접었습니다. 자신들의 귀의의 대상인 달라이라마가 원적에 들었음에도 티베트의 민초들은 궁전 불사에 몰입해 결국 포탈라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포탈라는 티베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백궁은 우리나라의 정부 청사와 같은 곳이고 홍궁은 바로 사원입니다. 포탈라에 백궁과 홍궁이 함께 있는 것은 정부와 사원이 둘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달라이라마와 일반 백성이, 민초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하나인 정토세상, 그곳이 바로 포탈라입니다.

티베트의 민초들은 조그마한 여유가 생기면 금이나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진귀하다고 믿는 최고의 공양물들을 달라이라마에게, 법당의 불단에 보시합니다. 조상의 제삿날이나 자신의 생일날 마련한 음식을 달라이라마와 스님들께 올렸던 것이지요.

그들에겐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집안에 쌓아 놓겠다는 욕심이 없습니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가장 적은 민족이 바로 티베트 민족입니다. 직사광선이 너무 강해 얼굴이 따갑다고 느끼면 부처님의 머리에 관을 씌워 햇볕을 가렸고 자신이 춥다고 느끼면 부처님 역시 춥다고 생각해 옷을 지어 올렸습니다.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내게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달라이라마와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올렸습니다.

포탈라는 티베트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는 삼독(三毒)과 업장을 씻어낼 수 있는 마지막 정토세상이며 영혼을 맑힐 수 있는 성지 중의 성지인 셈입니다.
세라 사원에선 티베트의 현실이 그대로 밀려와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은 스님이 단 한명도 없지만 세라가 가장 왕성했을 시기에는 7000여명 가량의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인류의 문자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담아 낸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문자 자체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티베트 문자와 한글 역시 아름다운 언어 중 하나입니다. 티베트어도 그렇고 한글도 그렇고 여럿이 경전을 읽어 보면 왜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인지 알 수 있습니다. 티베트어로 경을 읽는 모습을 보면 수 백 명이 경전을 읽는데도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죽이지 않습니다.

한글로 염불을 해봐도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습니다. 세라에서는 1년 내내 7000명이 경전을 암송하는 소리가 정말 아름답게 들려왔다고 전해 옵니다. 세라의 대중들은 1년에 한번 산처럼 커다란 탱화를 걸어놓고 대규모 법회를 여는 데 전 티베트 사람들의 소원 중 하나가 바로 세라의 탱화와 스님들께 꽃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세라에 꽃 공양을 올리는 것을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리는 것과 똑 같이 간주했으니까요.우리는 언제 다시 세라에서 티베트인들의 맑은 신앙과 영혼을 볼 수 있을까요.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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