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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18. 회향

기자명 법보신문

나는 그곳에서 달라이라마를 보았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해와 달과 별,
순례자의 영원한 도반이라네

순례자여 순례자여
그대가 길을 나선 까닭은 무엇인가
대지의 기운, 강물의 생명
태양의 온기, 바람의 숨결

四大가 하나되니 우주가 되었네
그것이 순례자의 본체라네
순례자가 본디 如來였으니
밖에서 찾을 것이 없었네

뒤에 올 순례자를 위해
四大와 소박한 돌탑 남겼으니
그곳이 바로 불국토라네
순례자는 이내 여래가 되었네

 
세계 제일의 성지 강 린포체(카일라스)가 순백의 화관을 쓴 듯 그 모습이 장엄하고 신이하다. 강 린포체의 좌우에 있는 봉우리들은 강 린포체를 주불로 받드는 보살님들로, 세 분의 불보살님들은 히말라야와 티베트 고원이 빚은 ‘자연의 삼존불’이다. 강 린포체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마치 개미들의 행렬처럼 작게 보인다. 사진제공=일광여행사

순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아난 존자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입멸한 후 너희는 여래가 태어난 룸비니와 여래가 성도한 부다가야, 여래가 법륜을 굴려 최초로 법을 설한 사르나트, 여래가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를 생각하면서 여래를 기억할 것이며, 가르침을 되새길 것이다. 또 네 곳에 모여 탑과 절을 짓고 예경할 것이다”라고.

티베트에 변해달라 조급해하는 中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직전 설하신 이 가르침에 순례의 참 의미를 담았다. 여래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성지에서 여래를 생각하고 여래를 기억하고 여래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한 과정, 그것이 바로 순례이다. 이제는 곧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에 설한 가르침이었으니 부처님의 말씀에 담긴 간절함과 지극함이야 더없이 높고 깊었으리라. 부처님의 그러한 간절함이 그대로 전달되어서일까, 입멸 후 지난 2500년 동안 수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이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했다.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성지와 선대 큰스님들의 발자취를 찾아 순례에 나선 수행자와 불자들의 수,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순례 중 목숨을 잃어 흙과 물과 온기와 바람과 돌탑이 된 순례자 역시 수 없이 많았다.

부처님께서 설하셨듯이 순례자들의 순례 길은 부처님을 닮아가는 무소유의 여정이었다. 때로는 견딜 수 없이 강한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때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만큼 비탈진 계곡을 만나도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끊임없이 가야만하는 순례 길, 그 길은 생사(生死)를 초탈한 고행의 길이었다. 어느 높은 골을 지날 때는 사람을 해치고도 남을 만큼 무서운 맹수를 만났을 것이며 어느 들녘에선가는 산적을 만나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순례자들, 그들이 수천 km가 넘는 고행의 길을 나선 까닭은 세속의 욕심과 그 동안 지었던 일체의 인연마저도 내려놓고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선지식들의 바른 가르침들을 지혜의 바랑에 담아 고국의 동포와 중생들에게 보시하고자 했던 자비의 발로였다. 순례자 중에는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고자 하는 지극한 서원을 남기기 위해 소박한 돌탑을 쌓은 이도 있었겠지만 많은 순례자들은 순례 길 한 가운데서 해골과 뼈만 남긴 채 세연을 다했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들은 다음 순례자들을 안내하는 자비로운 이정표가 되었고 험준한 계곡과 거친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용기와 원력이 되었다.

순례를 기도하고 참회하면서 본디 맑았던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는 수행이라고도 했던가. 순례 중에 만나는 수많은 선지식과 도반들 앞에서 우리네 불자들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감로수 같은 참회의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성지마다 얽혀 있는 부처님과 선지식들의 인연 이야기들과 반야바라밀은 순례자의 마음이 청정하고 맑게 정화되었기에 더없이 간절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순례의 본래 성품이다.

이제 라싸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순례의 본성이 그러하듯 나는 라싸에서 정화되어 가는 마음으로 수 없이 많은 달라이라마의 분신들을 친견할 수 있었다. 중국의 집요한 괴롭힘과 끊임없는 수탈, 회유에도 달라이라마와 세계 곳곳에서 떠돌고 있는 동포들의 귀환을 염원하면서 달라이라마의 흔적을 찾아,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찾아 기꺼이 순례에 나선 티베트 불자들의 행렬, 그것은 분명 달라이라마의 분신들이 만들어 낸 희망의 에너지였다.

가난했지만 보시하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상(相)을 내지 않았다.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고 작은 생명의 고통마저도 보듬어 안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를 실천하는데 기꺼워했다. 10만배 정진을 하면서도 일배 일배에서 묻어 나오는 인욕바라밀의 가르침은 보는 이들을 감화시켰으며 정진하는 티베트인들에게선 터럭만큼의 게으름도 찾을 수 없었다.

맑은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과 행동 하나하나는 또 어떠했는가.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하면서도 그 누구의 간섭과 행동에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풍경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달라이라마를 닮으려 순례하고 정진하는 이들은 분명 지혜바라밀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그러한 과정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진정한 수행자였으리라. 마음에 남아 있는 일체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두려워하며 윤회와 환생에 대해서는 극미한 의심까지도 허락하지 않는 금강 같은 신심(信心)이 그들의 검붉은 얼굴과 진지한 신앙에서 배어 나왔다.

그러한 영성은 라싸를 불국토로 여기고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받드는 믿음에서 비롯된 긍정의 에너지가 응집된 결정체일 터. 티베트 사람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불국토 라싸에 삼독(三毒)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는 중국의 좀스러운 괴롭힘은 조급증에 걸린 어린아이의 응석처럼 보였다.

라싸는 늘 그대로였다. 중국의 그러한 행동을 지켜보는 내 마음만 이리저리 변해 걱정과 위태로움이 교차하고 있을 뿐, 라싸의 영혼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체투지 순례를 하고 마니차를 돌리고 작은 나뭇가지에도 ‘룽다’를 걸어 장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싸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데 지난 반세기 동안 집중해 온 ‘영혼의 파괴자’ 중국이 자신들 멋대로 포탈라 근처에 홍등가를 세웠는데도, 1000년의 세월을 이어온 그들만의 도량에서 수행 중이던 스님들을 모두 몰아냈는데도 라싸는 여여(如如)했다. 늘 항상한 모습이 바로 여래이리라.

강 린포체 순례를 간절히 발원하며

 
강 린포체로 향하는 순례 길에 앞서 간 순례자들이 쌓아 놓은 소박한 돌탑. 이 돌탑은 다음 순례자들을 위한 자비의 이정표이다.

나는 그곳에서 달라이라마를 보았다. 비록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쵸의 얼굴을 노블링카의 벽화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그를 닮으려는 분신들은 라싸 성지에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중국에 의해 그 모습이 언제 사라질지 모를 만큼 그들을 위태롭게 보는 것은 지켜보는 이방인들 뿐, 라싸의 마음은 여전히 평화롭고 자비로웠다.

나를 실은 버스가 이제 막 라싸의 입구를 벗어나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이젠 라싸가 등 뒤에 앉아 있다. 잠시 고개를 돌려 포탈라와 조캉, 티베트 순례자들을 향해 반배의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멀어져가는 라싸를 자꾸만 잡고 싶어서일까, 달라이라마의 분신들로 가득한 라싸에 대한 감사함이 온몸에 작은 전율을 일으킨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차창 밖에선 라싸의 맑은 강물이 흐르고 있고 강가엔 샛노란 나무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선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보이는 이 풍경은 라싸의 파란색 하늘 도화지가 넉넉하게 담아내니 그 아름다움이 더하다. 일순간, 라싸를 순례하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면서 다른 한편에선 마음을 산란하게 할 만한 질문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다.

언제 이곳 라싸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저들의 저 아름답고 맑은 모습을 다음에도 볼 수 있을까? 이곳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얼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금세 찾아왔다. 라싸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자 이내 판첸라마의 성지인 ‘시가체’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것이다. 그 표지판을 보고 있자니 머지않아 티베트의 또 다른 성지와 인연이 닿을 것이라는 믿음이 샘솟는다. 라싸는 물론 그 어디에선가 달라이라마의 분신들이 수행하고 정진하고 순례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가체에서 다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그곳은 또 어디인가,바로 ‘강 린포체’(수미산)라 불리는 카일라스이지 않은가.

티베트 고원에 자리 잡은 팔만사천 린포체들이 받드는 성지 중의 성지 강 린포체, 높이라고 해봐야 6714m에 불과해 8000m 고봉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곳은 일체 생명의 원천이자 부모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제일의 성지이다. 인간의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인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병풍처럼 바람막이를 하고 있는 곳에 나투신 강 린포체는 서쪽으로는 인더스강을, 동쪽으로는 ‘얄룽창포’(멀고 넓은 지역을 흐르는 江이라는 뜻)라 부르는 강을 통해 아시아의 생명들에게 삶의 감로수를 보시하고 있다.

시가체란 표지판은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와 자이나교, 티베트의 토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의 성지인 강 린포체와의 인연이 곧 이어질 것이라고 염원하듯 라싸의 햇볕에 비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강 린포체의 법체가 떠오른다. 마음은 벌써 강 린포체를 찾아 떠나는 순례 길에 올라 작은 환희심 마저 감돌게 한다. 그곳에 가면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를 위해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기도를 올리리.

“달라이라마와 600만 티베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순례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강 린포체님과 좌우보살님의 위신력에 귀의해 기도 올립니다.” 〈끝〉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연재를 마치며

‘티베트 망명정부 50년, 라싸를 가다’ 연재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싸를 가다’ 연재를 하는 기간 내내 마음 속 깊은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행복과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순례 순간순간마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불자들의 맑은 영성과 가르침들이 마음으로 전이되어 행복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혼의 파괴자인 중국이 라싸의 영혼을 갉아 먹는 현실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순례를 지도해 주신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과 후원해 주신 일광여행사, 티베트 순례 길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신 수많은 선지식들과 스승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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