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가다] 5. 다시 일어서는 불교
[몽골을 가다] 5. 다시 일어서는 불교
  • 법보신문
  • 승인 2009.10.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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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된 불상, 그 역설 속에 핀 연꽃을 보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간단사에는 무게 900톤, 높이는 26.5미터에 달하는 몽골 불교의 심장 관음보살입상이 있다. 절로 신심이 나는 불상을 보고 나오니 부처인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새삼 부끄러웠다.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기 마음자세를 바꿈으로써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 마음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희망 때문에 날마다 설렘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순례 중 3일을 머문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의 생활은 약간의 지루함과 나른함이 묘하게 뒤섞였다. 마음을 끄는 무언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리쬐는 태양과 푸른 하늘, 몽골인들의 웃음소리, 어지러운 교통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개들과 따끔거리는 미세먼지. 어느덧 일상이 된 것 같은 울란바타르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푹푹 쬐는 태양을 피해 뭔가 두근거리는 일에 골몰할 수 있기를…. 위대한 발견을 꿈꾸는 순례자의 마음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간단사에 발을 들여 놓고서야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몽골 불교의 중심 간단사는 ‘완전한 기쁨을 가진 위대한 곳’이란 뜻이다. 간단사는 이름 그대로 몽골인들에게 완전한 기쁨을 준다고 한다. 1809년에 짓기 시작해 1913년에 완공된 간단사가 몽골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이유는 이곳에서 기도하면 내세에도 다시 인간의 몸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티베트와 몽골 울란바타르를 부처님의 나라라고 여기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간단사에서 기도하는 것이 최대 소원이라고.

특히 간단사가 신성시되는 이유는 불교 지도자인 벅뜨들의 무덤이 사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원도 스탈린에 의해 여느 사원처럼 그리 순탄치 않은 굴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1841년 제5대 벅뜨와 1869년 제7대 벅뜨, 1925년 제8대 벅뜨의 무덤이 사원 안에 있었으나 스탈린에 의해 벅뜨의 무덤들은 모두 파괴됐다. 불교 탄압은 계속돼 간단사 스님들도 모두 쫓겨나거나 처형당했으며 많은 전각들이 먼지가 됐고 현재는 여섯동의 전각이 남았다.

입을 쉬지 않는 어기 씨의 설명이 귀에 와 닿지 않았다. 마음은 벌써 간단사 중앙에 있는 전각 안 거대한 높이의 관음보살입상을 향해 있었다. 법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천정으로 꺾인 목을 굽힐 수가 없었다. 떡하니 벌어진 입모양이 부끄러울 사이가 어디 있으랴. 연신 셔터를 눌렀다. 몽골 불교의 심장이라는 불상은 금방이라도 앞으로 발을 내디딜 것 같았다.

원래 이곳에는 제8대 벅뜨가 1911년에 조성해 1913년에 완성한 20톤 규모의 대불이 있었다. 금 44kg, 은 55kg과 400여 개의 보석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상은 나라와 가정의 복을 빌기 위한 몽골인들의 염원을 담았지만 스탈린에 의해 1937년 조각조각 분해돼 러시아로 보내졌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에서 이 불상을 녹여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뭇생명의 존중을 상징하는 불상이 살상용 무기로 변하다니…. 그 아이러니와 마주한 놀라움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몽골 불교를 상장하는 간단사.

1990년 종교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불상을 다시 조성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재정과 거의 모든 몽골인들이 후원금을 냈고 돈이 없으면 물건을 내놓았다. 그렇게 지금의 관음보살입상이 1996년 10월 26일에서야 그 모습을 갖춘 것이다. 무게가 무려 900톤에 이르고 높이는 26.5미터에 달한다. 불상의 팔은 네 개이며 두 손은 거울과 감로수를 담은 정병을 들었고, 나머지 두 손을 모아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설날과 부처님오신날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관료들과 국민들이 와서 기도를 한단다. 할머니와 손자, 젊은 남녀, 부부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왔다. 절로 신심이 나는 불상을 보고 나오니 부처인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새삼 부끄러웠다.

승단에 예경 지극한 몽골 불자들

 
걸음마도 채 떼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사원을 찾아 후르뜨를 돌리는 가족.

불상이 있는 법당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담한 마당이 나왔다. 수많은 비둘기 떼가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었다. 어기 씨는 동물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큰 공덕이라며 할머니에게 쌀 모이 한 봉지를 냉큼 사 비둘기에게 줬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지만 순례자의 주머니는 텅 비어 있어 마음만 함께 했다.

어디서 경전 읽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들이 공부 중이라고 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법당 안으로 들어섰지만 이내 스님들에게 제지 당했다. 그러나 스님 한 분 한 분에게 마유주를 따라주며 스님들이 앉은 책상에 이마를 대는 몽골인들에게서 한국불자들에겐 쉽게 보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 짧은 탄식이 나왔다. 그 지극함이란…. 삼삼오오 가족이나 연인끼리 스님들의 경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몽골인들은 티베트어를 모른다. 그래도 스님들이 티베트어 경전을 읽는 동안 듣고 앉아있다. 듣고만 있어도 공덕이 쌓인다고 믿기 때문에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법당 밖을 도는 몽골인들을 따라 스님과 그들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법당 밖에는 한국 사람들이 마니차나 윤장대로 부르는 후르뜨(경전 문구가 새겨진 둥근 통)가 법당을  에워싸고 있었다. 몽골인들 틈에 섞여 후르뜨를 돌렸다. 법당 뒤에 이르자 흰 벽의 딱 세 곳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어기 씨에게 이유를 물으려다 말았다. 한 노인이 그곳에 무릎을 대거나 이마를 대며 조용히 합장했다. 아픈 곳을 비비면 낫는다고 믿는단다. 검게 그을린 곳은 법당 안에 불상이 자리한 곳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실 몽골 불교의 중흥은 뜻밖의 인연에 의해 시작된다. 1944년 미국 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가 불교 국가인 몽골의 사원을 꼭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소련은 군 막사나 마구간으로 쓰던 간단사의 관음전을 비롯한 벽돌 건물 몇 곳을 사원으로 개조하고 미국 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황급히 스님들을 찾았다.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님 7명은 자신의 신앙을 드러냈고 절과 의식들을 복원해가며 몽골 불교의 기초를 다졌다.

그것은 전초전이었다. 몽골인들의 불심은 약간의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불씨는 달라이라마의 몽골 방문으로 활활 타올랐다. 1995년 달라이라마가 칼라챠크라 법회를 열기 위해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몽골인의 열정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격렬했다. 달라이라마가 간단사에서 며칠 간 법회를 하는 동안 그의 법을 듣기 위해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연일 차가운 비가 내렸다. 그러나 우산 하나 없어 정성을 다해 차려 입은 옷을 다 적시고도 며칠씩 비를 맞았다.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도 끝까지 그 고행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에 대한, 법에 대한 갈증이 빚어낸 몸부림 그 자체였던 것이다.

달라이라마 법회로 신심 재발견

 
스님들이 독송하는 경전을 듣고자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몽골인들.

문득 간단사에서 만난 몽골불교미술대학 학장 푸레밧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푸레밧 스님은 스님을 친견하러 온 아이들에게 축원을 해주며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도 불교의 스승을 따른다.” 그 웃음이 몽골불교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하루가 반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찾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을 습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리네 마음 탓이 아닐까. 일체유심조라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어도 세상은 제 속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울란바타르의 밤. 그네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볼 뿐이다. 그 마음을 믿는다. 그들도 마음을 깊이 알아차릴 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테지. 어둠 속에 속살을 감춘 그곳에서 나는 다시 일어나는 몽골 불교를 보았다.〈끝〉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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