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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 읽는 신심명] 19.수행과 도덕윤리의 차이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심-불심 나누는 것도 분별심서 비롯
수행은 본래마음인 불심으로 돌아가는 것

승찬 대사는 우리에게 『신심명』에서 다시 마음의 생리를 가르쳐 준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없느니라.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나지 않으면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우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유론적인 중생심’이다, ‘존재론적인 불심’이라고 나누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이 시비분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더 한심한 것은 불심은 좋고 중생심은 나쁘다는 판단 의식이다. 마음의 본디 모습은 불심인데, 그 불심이 세속의 생활 즉 사회생활로 말미암아 중생심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다시 그 본심인 불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생심은 늘 이중적 생리를 띤다. 그 이중적 생리를 사람들은 잘못 해석해 이원론적 사고방식으로 오독한다. 이중적이든 이원적이든 좌우간 마음이 둘로 갈라져서 택일의 문턱에 서 있든지, 아니면 합일의 노력을 도모하든지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우리가 불교적 수행을 흔히 말할 때에, 사람들은 쉽게 불심을 선택하려 하든지, 아니면 중생심을 불심과 합일하는 길을 선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 으레 사람들은 수행을 도덕윤리적 행위로서 상상한다. 그런 행위는 노력의 공덕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승찬 대사는 불심을 향한 노력을 수행으로 보지 말라고 말한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나,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는 구절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비의 마음, 선악호오의 마음은 자연스런 중생의 마음이기에 오로지 시비와 선악과 호오를 초탈하여 하나를 지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갖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으로 사람들이 오인한다.

그런 결의나 결심을 짓지 말하고 승찬 대사가 우리에게 이른다. 마명(馬鳴) 보살은 『대승기신론』에서 “일심(一心)이 생(生)하여서 이 세상에 중생심이 도래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기독교의 원죄처럼 이 세상에 도덕적 윤리행위와 무관하게 원죄가 도입하게 된 근원을 말한 것이다. 원죄는 선악을 알기 이전의 마음의 상태에서 생긴 것이다. 불교의 중생심도 마음이 생하여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 것이겠다.

기독교의 원죄의식이나 불교의 중생심의 발생 원인이나 모두 인간의 의식적 노력에 의하여 무효화되는 대상이 아님을 뜻한다. 신법을 어겨 선악과를 따 먹었고, 소유의 순간적 욕망으로 인간에게 호오의 분별심이 찰나적으로 생겼다. 기독교든 불교든 둘 다 어떤 선악시비의 판단, 호오의 판단이 생기기 이전의 무심한 상태를 이상적 무결의 상태로 보았다.

“세상은 깨어졌다.” 이 말은 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의 표현이다. 깨어진 세상의 복원, 즉 깨어지기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사상은 인간의 도덕윤리적 행동의 결단 이전의 문제다. 도덕윤리적 행동의 차원이 아니므로 기독교는 신에 매달리는 신앙을 절대적인 의미로 부각시키고, 불교는 소유론적 사고방식을 존재론적 사고방식으로 교체할 것을 말한다. 불교는 도덕윤리적 의식으로 수행을 해서는 안 된다. 부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부처를 의식의 대상으로 삼아서 부처를 마음의 목표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별심으로 깨어진 세상은 그것을 합일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노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노력에 미흡한 사태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래서 허물과 법이 동시에 또 출생한다. 허물과 법이 발생하면 허물과 법의 괴리를 지우기 위한 노력이 또 생긴다. 이것이 중생이 관하는 수행이다. 이글은 앞에서 언급된 존재와 소유의 마음론과 모순되는 듯하나 아니다.
 
김형효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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