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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89. 수행자의 길

기자명 법보신문

걸식 수행자, 권력과 타협할 일 없어

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수행자라 하고
행동이 고요하기 때문에 수행자라 하며
자신의 때를 씻어 버렸기 때문에
그를 일러 집을 떠난 수행자라 한다 .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법구경』은 26장 423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주제로 가르침을 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25장과 26장은 부처님께서 각 계급의 출신들이 집을 나와서 수행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참다운 수행자의 자세를 가르치신 내용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나 브라흐만이나 출신 신분의 귀천에 관계하지 않고 각자 행위의 고귀함에 최고의 가치를 두셨던 분이다.

『숫타니파타』136번 게송에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인도에서 사람의 신분 고하를 태생적으로 결정하여 브라흐만은 고귀하고 수드라는 하천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고귀한 행위에 의해서 사람은 고귀해 지기도 하고, 반대로 하천한 행위를 하면 신분이 아무리 높더라도 천한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뒤에 393번 게송에서도 오직 진리를 깨달아 진리로운 삶을 살아갈 때 그를 진정한 수행자라고 한다는 의미와 같다. 부처님은 이 정신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시면서 당부하셨던 것이다.

행위의 고귀함이 최고 가치

위의 게송은 한 브라흐만이 숲속에서 홀로 고행을 하면서 자신도 부처님 제자들과 같이 엄격한 수행을 하고 있으므로 비구(bhikkhu, 乞士)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부처님은 그에게 위의 게송을 설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귀한 가문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대로 귀한 사람이 될 수 없듯이 모양만 수행자라고 해서 그대로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래의 제자들을 비구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의 모든 악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비구라고 부르며, 세상의 어떠한 욕망에도 흔들림 없이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비구라고 이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마음의 혼탁함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비로소 집을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비구라고 부른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적어도 수행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악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여 어느 것에도 동요됨이 없는 고요한 마음의 주인공이 될 것과 소유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더러움을 깨끗이 벗어난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집을 벗어난 출가수행자 비구에 합당하다고 가르치신 게송이다.

요즈음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답지 않은 일’ 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모는 부모답지 않고, 자식은 자식답지 않다. 선생님이 선생님답지 않으니 제자가 제자다울 이도 없는 것이다. 노인은 노인답지 않고 젊은이는 젊은 이 답지 않게 불손(不遜)하다. 종교인이 탐욕과 권력에 이끌려가고, 집을 버린 수행자가 자신의 소유를 채우려는 혼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상을 선도할 종교의 영역에 서있는 수행자까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세상의 어느 종교와도 달리 모든 소유의 가치를 떠난 것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비구수행자는 더 냉엄하게 자신을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가치가 무의미해서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욕망은 너무나 감미롭기 때문에 그 맛을 탐착하기 시작하면 누구나 벗어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세속의 가치는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미로움 다음에는 항상 깊은 괴로움을 동반하게 된다. 권좌에 오래 앉아서 권력을 행사하고 싶지만 뜻과 같이 이어져 가지 않는다.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했는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인색함과 착취가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착취와 투쟁으로 거머쥔 권력과 재력도 그 속성이 허무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2, 30년간의 권력과 재산을 향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불교 근본은 ‘존재의 공성’

이와 같이 권력과 재물의 허망성을 일찌감치 깨달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스승 석가모니이다. 그를 사모하여 집을 버리고 진리의 길에 들어선 많은 사람들이 3천년을 이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을 여래는 ‘비구’라고 불렀고 끌어 모아서 소유하는 가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비어 버림으로서 최상의 가치를 삼는 수행자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소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서는 이미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대접받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종교의 세계조차도 가진 것이 많고 권력이 있어야 대접을 받고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는 이러한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왔다. 불교의 첫걸음이 걸식(乞食)이며 어떠한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초지일관 존재의 공성(空性)을 깨우치면서 가진 것을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모두가 소유하려고 아우성일 때, 부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는 가치가 다시 인식되어야 하고 이를 실천해 보이는 참다운 수행자의 향기가 끊어지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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