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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 읽는 신심명] 21.마음과 의식활동의 차이

기자명 법보신문

사고방식의 혁명은 의식 혁명과는 달라
의식에 의한 객관화는 道와 멀어질 뿐

다시 『신심명』으로 돌아가자. 불교가 도덕윤리적 차원의 행동방식의 교정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의 혁명이라고 전회에서 강조했다. 그렇다고 마음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마음의 구함을 애쓰는 일이라고 여겨선 안 된다.

승찬대사가 “진리마저도 구하기를 노력해서도 안 된다”고 언명했으니, 더구나 혁명을 얻으려고 노력해선 안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불교의 본질이 사고방식의 혁명이라고 해서 의식의 혁명처럼 그렇게 생각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예컨대 의식은 주관이 되고 대상은 객관화 되어 주객으로 이분화 되는 의식의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승찬대사는 『신심명』에서 말했다.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고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양단을 알고자 한다면 본디 하나의 공(空)이니라. 하나의 공은 양단과 동거하여 삼라만상을 함께 포함하여 세밀함과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의식활동의 생리는 주관과 객관으로 양분된다. 주관과 객관은 의식활동의 두 가지 계기로서 서로 상관적인 연관성을 띠고 있다. 두 계기가 독자적으로 일어나는 법이 없고 어느 하나가 발생하면 또 다른 하나의 대극(對極)이 계합하여 일어날 뿐이다. 우리는 주관과 객관이 두 개의 실재로서 현실적으로 주관은 의식의 이쪽에, 대상은 의식의 저쪽(바깥 쪽)에 각각 이분법적으로 실존한다고 느끼지만, 기실 그 두 가지는 마음의 환영에 불과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필자가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을 때 세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매우 명작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처음에 필자는 왜 병원에서 이런 심각한 명화를 상영하는지 알 수 없었고, 다만 중환자들에게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기 위함이라고 단정했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이야기는 허구였다. 필자가 병중의 몽환중에서 스스로 지어낸 허구였다. 일종의 환영인 셈이다. 그 영화내용은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주관이다, 객관이다 하는 것은 다 어떤 상황의 계기 가운데서 일어난 환영에 불과하다.

그 영화 중에서 필자의 의식이 그 내용을 만들었고, 또 필자는 그 영화의 내용에 따라 희비를 전개하였겠다. 지금 나는 그 영화가 나에 의해 순간적으로 짜여진 허구라는 것을 안다. 마음과 의식활동은 다르다. 마음은 허공처럼 모든 의식활동의 그림들을 다 그리는데, 마음은 그 의식활동의 그림에 의해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마음은 의식의 모든 활동에 동거해 있지만, 그 활동 자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본체는 의식활동의 하나인 세밀함과 거칠음이나, 주관과 객관의 분별이나, 편파적인 것과 올바른 태도의 분별심을 초탈해 있다. 그래서 승찬대사는 “마음의 본체는 허공처럼 무한히 너그러워서 어려움과 쉬움도 없다”고 언명했다. 마음의 본체는 의식활동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여우처럼 자꾸 의심을 더하여 급히 의식의 생각으로 마음을 객관화하면 더욱 더 마음의 도는 멀어진다’고 대사는 설파했다.

그러므로 불교의 본질은 대상화된 객관적 사고방식을 확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사의 말씀처럼 ‘집착하면 삿된 길로 들어서는’ 일로 끝난다 하겠다. 의식상 잘하겠다든가 혁명하겠다는 집착을 다 놓아버리면 모든 것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가므로 ‘마음의 본체는 가거나 머물음이 없다’고 대사가 설파했다. 대사의 가르침은 우리가 강조하는 존재론적 사유의 본질을 말한 것이겠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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