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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을 걸다] ⑤ 최진호 감독의 ‘집행자’

기자명 법보신문

살인 면허증 소지자의 불편한 질문

 
‘집행자’는 사형집행관의 인간적 딜레마를 파고든다.

오늘 출근해서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세상은 그 사람이 죽어 마땅하다고 울부짖습니다. 죽여도 괜찮다고 말해봅니다. 그러나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 죽입니다.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여야 하는 이들의 고통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최진호 감독의 ‘집행자’는 상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또 다른 살인’을 해야 하는 사람, 사형집행관의 인간적 딜레마를 파고듭니다. 신입교도관 재경과 베테랑 종호,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위는 영화 안에서 12년 만에 부활한 사형제도에 집행관으로 임명됩니다. 재경은 사형을 정의구현이자 쓰레기 청소라고 말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종호, 20년을 참회하며 살아온 사형수와 장기를 두며 인간적인 감정을 품고 괴로워하는 김 교위 사이에서 심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동기를 폭력적인 수감자에게 잃고 분노로 살아온 종호, 사형집행 전날 사형수에게 감자탕을 사주는 김 교위. 사형이 집행되는 날 재경의 여자 친구는 낙태를 합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사형 집행 후 사형집행관은 국가로부터 수당 7만 원을 받습니다. 그들은 술로 밤을 지새우고 종호는 후유증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김 교위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둡니다.

사회초년생 재경의 일상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지요. 누가 옳고 그르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 런지요. 그러나 살인 면허증을 가진 그들의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살인자의 생명조차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까요. 아니면 용서해야 할까요. 어찌 보면 말하기 꺼려하고 일상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잊혀 지거나 잊고 있었던, 아니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은 1949년 7월 14일 살인범에 대한 첫 사형집행을 시작으로 1997년 12월 30일까지 920명을 사형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무죄로 선고된 이도 있었습니다. 현재 57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헌법재판소는 13년여 만에 사형제도의 합헌을 결정했습니다. 재판관 5:4의 비율이었습니다. 1명의 의견 차이로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사실 죽음은 발에 차이는 돌처럼 흔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죽는다고 해서 세상이 한꺼번에 황폐해졌나요? 자신에게 닥친 죽음이 아닌 이상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잊고 외면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생생한 사형집행 장면으로 얼얼한 충격을 준 ‘집행자’. 여자 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게된 후 낙태와 출산을 두고 고민하는 재경에게 종호가 망설임 없이 던진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살아있는 걸 어떻게 죽여 인마.”

문득 99명을 살인한 희대의 살인자 앙굴리마라를 교화한 부처님이 떠오릅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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