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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안의 세상 책밖의 세상]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편지

기자명 법보신문

『가난한 휴머니즘』/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2006.12.

우리에게 아이티는 낯설지 않다. 최근 일어난 지진으로 1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곳이고, 지독한 가난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어서 ‘사람 살 곳이 못되는 땅’이라는 느낌이 널리 퍼져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의 후예들이 식민제국 프랑스에 맞서 싸워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가를 건설한 영광의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아이티는 독립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식민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국민 가운데 단 15%가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는데도, 200년 동안 모든 정부 업무가 프랑스 말로 집행되고 있어 나머지 85%의 국민들을 소외시킨다.

가톨릭 사제 출신인 아리스티드는 네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번번이 쿠데타를 만나 임기를 마치지 못해 총 집권기간은 5년 8개월에 불과하다. (네 번째로 당선된 2000년 선거에서는 92%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88년에는 자신이 머물던 성당을 살인 청부업자들이 포위한 채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성당에 불을 지른 뒤 그를 살해하려고 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증오가 끓어오르고 복수의 열기가 넘쳐 나올 만도 한데, 오히려 그때 “비폭력과 사랑의 힘이 무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처벌의 면제’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화해란 정당한 심판 뒤에 오는 것이고 피해자들이 사법 체계를 통해 제대로 된 정의를 보게 될 때까지 아이티에 진정한 화해란 없다”고 믿으며 진정한 화해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이 나라에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지역은 20%에 불과하고 국토의 3%에만 숲이 남아있는데, 이 생태 위기는 프랑스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을 마무리하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채무로 지고 그것을 갚느라 열대우림을 마구잡이로 벌채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아리스티드는 말한다. “사람들은 땅을 따라 간다. 산에서 나무가 베어지고 흙이 평야로 씻겨 내려간 뒤에는 사람이 뒤따른다. 흙이 평야에서도 씻겨 내려가면 사람은 다시 한 번, 흙이 바다로 씻겨 가듯 도시의 슬럼으로 쓸려간다.”

그는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고 믿으며 경제적 참여 없는 정치적 참여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지금까지 배고프던 사람이 배부르게 되고 글을 모르던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아리스티드의 말이 가난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지 않을까 두렵고, 그래서 국민들이 그를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켜도 번번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그를 쫓아낸다.

그러나 아리스티드는 굳은 의지를 밝힌다. “권력자들이 우리에게 ‘너희들은 죽었다’고 말하며 계속 누워있으라고 협박을 해도,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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