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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안의 세상 책밖의 세상] 두 얼굴의 과학

기자명 법보신문

『야누스의 과학』/김명진 지음/사계절/2008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1945년 전쟁이 끝나고 귀국하는 김범우 등에게 미군들이 DDT를 마구 퍼붓던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 DDT는 한 때 인류를 질병과 해충에서 구해준 ‘구세주’와도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공식적으로 사용이 금지되고 그보다 더 효과가 뛰어난 다른 살충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이 DDT가 널리 쓰였다.

맨 처음 DDT를 개발한 스위스의 뮐러는 ‘DDT 개발을 통해 전쟁 기간과 이후에 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의 노벨상 수상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반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DDT의 공은 엄청났다. 말라리아 발생이 거의 1만분의 1로 줄어들었고, 세계보건기구는 “DDT 덕분에 말라리아에서 5천만~1억 명의 인명을 구했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처럼 ‘진보’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합성 살충제도 곧 ‘생태계와 인간에 해를 끼치는 주범’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데, 이렇게 흐름이 바뀌게 된 것은 1960년대 초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그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카슨의 문제 제기는 ‘살충제가 전적으로 안전하며 인류 복지를 위한 물질’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던 집단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곳곳에서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

미국 농무부 장관을 지낸 어떤 인사는 심지어 카슨이 “필시 공산주의자일 것”이라고 공격할 정도였고,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에서까지 “그녀는 자신이 비난했던 살충제보다 더 유독한 존재”라는 독설을 퍼부었으며, 과학자들은 카슨이 자신들을 매도했다고 해서 분개했다.

이런 우여곡절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1972년에 DDT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DDT 사용금지와 함께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말라리아가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용 금지가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말라리아와 살충제의 위협,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여야 할까? 누구도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숙제이다.

김명진의 대학 교양 강의를 엮은 『야누스의 과학』은 위에서 말한 살충제 문제 등 현대 과학사의 어려운 숙제 16 가지를 묶은 책이다. ‘왜 20세기에 세상 사람들이 과학 기술의 유용성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고 또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과학기술 진보의 주역인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인간적 고뇌를 겪게 되는지’ 차분히 정리하며 독자들에게 끝없이 문제를 던진다.

어쨌든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과학의 진보가 옳든 그르든, 이처럼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가장 큰 배경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에 뒤이은 동서(東西) 냉전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과학기술의 진보를 거부해야 할까? 아무도 그 답은 모른다.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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