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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안의 세상 책밖의 세상] 절묘한 짝

기자명 법보신문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야부키스스무 지음/신준수 옮김/역사넷/2006

현대 중국을 탄생시킨 두 주역인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출신 배경과 성격이 크게 다른 사람들이다. 크게 다른 이 둘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미국의 지원을 받는 막강한 국민당 군대를 물리치고 전 중국을 통일하여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였는데, 이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을 비롯해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교묘하게 조절되어 큰 충돌을 피하였다.

아마 마오(毛)쪽보다는 저우(周)쪽의 인내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의 번역본에 ‘황제가 된 마오쩌둥, 재상의 자리가 족했던 저우언라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두 사람의 일생은 ‘최고 권력자와 제2인자 관계’의 가장 완벽한 모범사례일지도 모른다.

“잠옷을 입은 채로 손님을 맞이하는 마오쩌둥의 이미지는 발을 씻으면서 유학자들을 맞이했던 유방을 상기시킨다.” 마오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였다고 하지만, 그가 정책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모범으로 삼은 것은 마르크스의 저작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 사서인 『자치통감』이었고 (이 책을 열일곱 번 읽었다) 수상인 저우가 수술을 받는 데에도 마오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정황 등으로 볼 때 마오는 근대 정치가라기보다는 전근대 중국의 황제와 같았다. “처음에는 웅대했고, 점차 망상이 되어 갔으며, 마침내 악몽이 되어 비참한 결말에 이르는” 마오의 국정 운영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실패한 영웅인 삼국시대의 관우(關羽)에 대해서 연민의 마음을 가지듯이 많은 사람들이 저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이 점에서 저자도 다르지 않다. “저우에게도 과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았고, 물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도 않았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안았다.” 그러면서 저우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신격화되어온 마오를 비판함으로써 생기는 심리적 동요를 저우언라이의 존재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 상태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두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지 40년이 가까워진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중국의 국내 정치를 보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개혁파가 우세할 때는 마오의 주가가 떨어지고, 보수파가 득세하면 마오의 주가가 오르는 형세이다.” 그래서 마오의 주가가 떨어지면 저우의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마오와 저우의 주가가 연동하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중국의 ‘민주화·근대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살아있던 시절 이른바 ‘죽의 장막’에 가려있던 중국의 정치 상황을 읽는 풍향계가 공자(孔子)나 유비(劉備) 등 옛 인물들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이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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