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희 보살의 수행일기] 26. 진정한 보살행-(중)
[강선희 보살의 수행일기] 26. 진정한 보살행-(중)
  • 법보신문
  • 승인 2010.04.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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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만큼의 의심도 없이 가행정진하며
일체 중생 고통 치유하는 것이 자비명상

자비명상의 유래는 남방불교의 수행논서인 『청정도론』에 부처님께서 『자비경』을 설하시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당시 500명의 비구가 부처님께 각각 근기에 맞는 특수한 명상기법을 전수 받고 히말라야 기슭에서 넉 달 간 명상에 전념하기 위해 안거에 들어갔다. 수행자들이 온다는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들과 주변의 정령들은 기쁘게 맞이하며 명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비구들이 잠깐 머물다가 떠날 줄 알고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목신들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비켜주질 않자 화가 났다.

거대한 나무의 목신들은 집을 빼앗긴 것으로 여겨 수행자들에게 무시무시한 형용을 나타내 보이고 끔찍한 소리를 내거나 메스꺼운 냄새를 피워 그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했다. 그들이 갖가지 무서운 형상을 하고서 괴롭히자 수행자들은 새파랗게 질려 더 이상 참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신령들이 계속 못 견디게 굴자 마침내 비구들은 수행의 기본자세마저도 흐트러져 버리고 머릿속은 무섭게 짓누르는 형상과 소리, 냄새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결국 비구들은 부처님께 찾아가 자신들의 끔찍한 체험을 보고한 뒤 다른 곳을 명상의 장소로 정해 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이 다시 신통력으로 인도 전역을 훑어 보셨지만 그들이 해탈을 이룰만한 장소는 오로지 그곳밖에 없음을 아시고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비구들이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라. 그곳에서 정진해야만 마음속의 때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신령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이 경을 외우고 닦아라. 이는 명상의 주제일 뿐 아니라 호신주(護身呪,paritta)도 되느니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필수자비경(보편적 사랑의 찬가)’을 읊으시자, 비구들도 세존 앞에서 따라 외운 다음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비구들은 『자비경』을 암송하며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고 명상하면서 자신들의 숲속 거처에 다가가자, 목신들의 마음도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차게 되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비구들을 깊은 공경심으로 맞아들였다. 목신들은 안거기간 동안 비구들을 여러모로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체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었다. 완벽한 고요를 누린 덕분에 비구들은 정신적 완성의 극치에 이르러 오백명의 비구가 모두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진실로 자비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즉 자비의 길을 따르는 이에게는 어떤 해도 닥쳐올 수 없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하고 있는 훨씬 깊은 차원의 자비명상 ‘똥렌’ 수행은 호흡에 맞추어 관상(觀想)하면서 주고받는다. 무엇을 주고받을까? 모든 중생들의 악업과 병, 탁한 기운 등 부정적인 것들을 내가 받아들여서 녹인 후 부정적 요인들이 황금 빛 속에 녹았다고 관상하고, 숨을 내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근공덕과 정화된 황금빛 에너지가 중생들에게 보내는 관상을 하는 것이다.

자비로써 나와 주변의 아픈 사람,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일체 중생들의 고통을 치유해 간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행복의 요소를 남에게 주고 다른 사람의 고통, 불행, 어려움 등을 떠안아 다시 내 몸 안에서 빛으로 용해되어지는 명상을 이어가는 이 수행법은 일반 자비명상보다 훨씬 높은 희생과 선정력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 수행을 함에 있어서 티끌만큼의 의심과 부정적인 마음 등 흔들림이 있어서는 스스로 해침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랜 명상’의 고귀한 가치는 증명을 요구하는 서양의 과학에 의해 검증된 지 오래다.

강선희 보살 phad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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