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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전통 강원은 수행자의 그릇을 만드는 곳
효율성만 집착한 개편에 본질 왜곡 우려

천자각 문을 나서자면 서있는 꽃사과 나무에서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가 마치 아기볼처럼 발그스레한 것이 앙증맞게 이쁘다. 그리고 자기의 화사한 멋을 짧게만 뽐내다가 꽃비가 되어 날리는 벚꽃은 천녀의 장엄인 듯 멋들어진다. 봄날의 자연이 제각각의 멋으로 하나가 되어가듯 우리 절 집안도 개개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하나를 이루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오히려 이런 훌륭한 전통이 후퇴하고 있다. 종단 기본교육이 비구계를 전제로 제도화되면서 안정은 가져왔지만 초참 수행자의 기상은 많이 사라지고 폭 넓은 배움이 줄어들었다. 내가 강원에 있을 때만해도 한자리에서 강원을 마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러는 『서장』을 보다 발심해서 바로 걸망을 메고 선방으로 직행하는 학인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큰방 구성원도 현재처럼 사미 일색이거나 거의 같은 대중으로 꾸려지지 않고 비구스님도 있었고 많은 강원을 섭렵한 학인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강원 이력을 끝마친다는 것이 외부에 의해 짐 지워진 조건에 의해 반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의지와 신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폭 넓은 도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강원 규율이 다소 흐트러지고 체계적인 점은 뒤떨어졌었지만 지금보다는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강원 교육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이 교과 과정이 시대에 뒤떨어질뿐더러 학습 방법이 한문교재 중심으로 해석에만 매달려 의미 파악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지적들이 일정 타당성이 없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효율성과 사회적 필요성에 매달려 승가 교육의 본질을 간과하고 소탐대실을 범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 있다 보니 강원에서 사주학도 강의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그런 스님 대부분이 제자들을 비구계를 받게 한 후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후원해 주기보다는 당신 곁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분들이었다.

스님은 성직자이기에 앞서 수행자다. 그리고 강원 교육의 역할은 수행자의 그릇을 만드는 선이면 된다. 자기 나름 길을 찾아 전문적 소양을 갖추는 것은 그 이후가 되어야 한다. 수박 겉핥기식의 강의만으로는 깊은 이해가 수반되기 힘들뿐더러 자기의 노력으로 녹아서 체득되지 않은 앎은 수행으로 녹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체득하기 위해선 반복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어느 한 경전의 일부분에서라도 나름의 체득이 있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안목이 되고 전 수행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인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은 교수가 다수 학생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신망이 있는 대학일수록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낮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통 강원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더욱 장려되어야 할뿐더러 오히려 약간 어설퍼진 현재보다도 전통식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400년이나 된 오래 된 시스템이라고 몰아 부칠 것이 아니라 400년이란 전통을 지닌 우리 한국 불교 나름의 교육 시스템이란 긍지를 가지고 부각시킨다면 대사회적으로도 오히려 더 어필 할 수 있고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원 교육은 자유를 찾아보고자 길을 떠나 자기 의지를 갖고 살아보고자 하는 초심 수행자의 교육터전이지 말 잘하고 폼새 잡는 앵무새를 길러내는 곳이 아니다. 더욱이 현재 조계종 기본 교육 체계 속엔 현대 학문적 방식의 공부를 통해 자신을 열어 가려는 분들을 위한 교육 터전도 있으니 만큼, 강원 교육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산 빛이 모두 녹색 일 때는 여름 한 철 뿐임을 아셨으면 한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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