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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의 책 세상] 미국, 상국인가 오랑캐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계승범 지음/푸른역사/2009

찬반 여부를 떠나 1960년대 월남 파병에서부터 최근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파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미국의 요청을 받아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월남 파병에 비해 최근의 반대 목소리가 아주 넓어지고 커진 것은 파병의 배후인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도 조선시대 중국[明·淸]의 파병 요구, 그에 대한 조선 지배 엘리트들의 대응과 그 이념적 배경을 분석·해석하면서 현재의 한미관계를 자주 언급하였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도 ‘조선시대의 명·청=현재의 미국’, ‘조선 지배엘리트의 모화(慕華)주의 = 오늘날의 숭미(崇美)주의’라는 등식이 계속 맴돌았다. 이점에 있어서는 다른 독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明] 쪽에서 파병을 요청해올 때마다 철저하게 우리나라의 실익을 중심으로 결정하여 적극 파병하거나 마지못해서 파병을 하는 시늉만 하거나, 아니면 파병요구를 거절하였다. 책봉을 받는 등 형식상 대명(對明) 사대의 모습을 띄우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명나라가 이웃의 큰 나라[大國]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쿠데타[反正]로 즉위한 중종 이후 중국을 문화적으로 철저하게 사모하는 모화주의가 확고한 기반을 잡게 되고 대명 사대가 이념적인 성격까지 띠게 되면서부터, 공식 요청이 오기도 전에 미리 앞서 ‘파병 준비’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래서 저자는 중종 대의 대명 관계 변화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하는데, 여기서 독자들은 1960년과 1980년 쿠데타 뒤 박정희와 전두환이 미국의 승인에 매달리고 미국 방문을 급하게 추진했던 현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대명관계는 1592년 임진전쟁을 겪은 뒤 ‘명과 조선’의 관계를 과거의 군신(君臣)이라는 정치 역학관계에서 부자(父子) 관계라는 천륜 관계로 설정하게 되면서 더욱 굳어지고 수정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신흥 만주족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는 것이 그 결과였다.

청에게 항복한 이후에는 명을 공격하는 군대를 보내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여기에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파병을 피하지만, 그것은 현실 정치적인 계산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의 나라를 공격하는 패륜을 저지를 수 없다”는 이념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은 청의 러시아 공격에 동참하는 군대를 요청받았을 때에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재야 유림에서도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던 사실에서 거듭 확인된다.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을 두고도 논의가 뜨거웠지만, 찬반의 논리 근거는 미국을 조선시대의 명과 똑같은 상국(上國)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청과 같은 오랑캐로 여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국제 관계의 변화와 그 안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얕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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