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희 보살의 수행일기] 얇은 인간과 자연의 위대함
[강선희 보살의 수행일기] 얇은 인간과 자연의 위대함
  • 법보신문
  • 승인 2010.06.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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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 더불어 살아가는 노력
번뇌 잠재우고 윤택한 삶 이끌어

“확실히 몸이 편하고 할 일이 없으니 맨 날 곱창씹어요.” 국방부에서 군복무 중인 아들이 휴가 중 나와 한 말이다. 이곳은 민간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곳이라 다른 전방의 군인들보다 일이 많지 않다. 때문에 동료들이 빈 시간에 서로 흉보고 본 흉을 또 보고 별거 아닌 것 가지고도 욕한다는 용어가 ‘곱창’이라는 것이다. 순간 번뜩 떠올랐다.

왜 요즘 사람들은 복잡하게 많은 생각을 하고 옛날 사람들에 비해 번뇌가 많은지에 대한 답이. 우리 어머니 시절만 봐도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영혼은 지금 사람들보다 밝고 순수하여 예지력이 뛰어났다. 반면 요즘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는 먹는 등 여섯 감각을 쉴 새 없이 작동한다. 영혼이 혼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시각장애인이었던 아나율 존자는 천안통으로 제일이었다. 보지 않음이 일체를 볼 수 있다는 진리를 망각한 채 우린 육근을 정신없이 사용해야만 많은 정보를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정보를 통합한다고 해도 지진에 민감한 동물들보다 감지력이 떨어지고 식물보다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게 인간이다.

지나해에는 들에 모든 곡식과 과일들, 산의 열매들까지 유래 없이 풍작을 이루고 맛있었다. 지난 가을 집에 놀러 온 도반이 과일을 먹다가 “올해는 너무 과일이 흔해서 귀한 줄 모르겠어요”했다. 바로 말을 받아 “왜 과일들이 이토록 많이 열리고 당도가 높은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아마 도반에게는 의외의 질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머잖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을 때 우린 그 어느 때 보다 혹독한 추위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하지만 봄이 와 보니 많은 나무들이 잎을 틔우지 못한 채 얼어 죽었고 잎이 나고 꽃이 핀 나무는 다시 냉해로 인해 꽃이 많이들 지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꽃이 핀들 열매를 맺게 할 벌들이 80퍼센트 정도 동사했다고 한다. 식물들도 기후의 변화를 미리 알고 마지막 자신의 온 몸을 사루어 열매를 맺고 그 열매들이 달게 한 것이다.

동물은 배부르면 먹이를 더 이상 먹지 않고, 어떤 동물은 동면까지 한다. 식물도 햇빛과 물, 흙의 자양분에 기후만 맞으면 된다. 단순하기에 사람보다 자연의 흐름을 더 잘 감지하고 대처해 간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들은 다가올 가을과 내년에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조차 못한다. 당장 내일 벌어질 일들조차도.

단순해져야 한다. 지금의 삶보다 검소하고 절약하며 자연을 목숨처럼 보존하고 서로 돕고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안으로 쉬고 또 쉬어야한다. 번뇌의 헐떡거림에서 쉬어야한다. 인도의 갠지스강에는 업장을 씻어내기 위해 강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이 죽음을 대기하고, 죽은 자들은 그 강가에서 화장하여 강에다 재를 뿌리는, 강물에서 새로 거듭나고 죽는 것을 연속적으로 이어간다.

또 다른 많은 인도사람들은 성산 카일라스로 떠난다. 갠지스강에서처럼 업장을 씻고 가다가 죽더라고 카일라스를 가는 순례길이라면 더없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렇게 태어나 살다가 가는 것으로 여기며 인도인들은 삶을 거스르지 않는다.

3년 전 갠즈스 강가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날을 맞아보았다. 이번에는 모든 중생들의 성산 카일라스로 떠난다.  〈끝〉  

강선희 보살 phad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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