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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 순례] 5.파드마삼바바의 성지를 찾아서 (上)

기자명 법보신문

순례 길의 도반은 바람과 돌과 구름

 
시킴의 수도 강톡시내의 교차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힘으로 이루지 못할 때, 너무나 거대한 그 무언가에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두려워한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의 대상에 귀의하고 숭배하는 바탕에는 바로 두려움과 지극한 귀의의 마음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시킴의 오지 마을인 ‘징침’(Jingchim)에서 신성한 호수로 추앙받는 ‘띰쳄’(Thimchem)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귀의처이다. 신성한 장소로 받들며 자신들의 욕심을 정화하고 호수에 담긴 물의 맑음과 가피를 찬탄한다. 힌두교 신자들은 물론이요, 불자들에 이르기까지 종교에 관계없이 모여드는 성지가 바로 그곳이다.

띰쳄 호수에는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용은 다른 용과 달라서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는 용이란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곳이니 호수를 순례하는 불자들은 마음에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가피를 담고자 했을 것이다. 순례자를 맞이하는 오색의 ‘룽다’(Rungda)가 펄럭인다. 가끔은 강한 바람에 큰 독경 소리를 낸다. 그 룽다는 다시 호수에 드리우며 물속의 생명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저기가 바로 절인가 보네요.”

호수를 한 바퀴 돌고나서 내려오는 길에 이 마을 사람인 ‘카르쟝’이 가르키는 곳을 보니 비록 시멘트 건물이지만 단청이 예쁘게 된 법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으니 마치 대웅전의 석가모니부처님을 보는 듯하다. 법당 하나에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는데다 노(老) 라마를 위한 다비 때문인지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건물만이 주인을 기다리듯 우두커니 서 있다.

“차 한 잔 하실래요?”
‘카르쟝’이 차를 권하며 자신의 집에 함께 가자고 한다.
“좋습니다.”
나는 집이 가까우니 집에 가서 차 한 잔을 하자는 그의 말에 화답했다. 노 라마의 법구가 있었던 집에서는 여전히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염불소리에 맞추어 부처님을 염송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카르쟝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계속 마신 ‘짜이’로 더부룩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 뜨거운 물 한잔을 청했다. 그는 집안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 집 역시 예외 없이 부처님을 모신 방이 있었다. 자신의 방과 부처님의 방을 둘러본 뒤 거실로 안내했다. 제법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두꺼운 사진첩 한권을 꺼내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남동생은 출가하여 불학(佛學)을 공부하고 있으며 1년에 한번 정도 집에 들른다고 했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단지 출가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언젠가 이곳에서 살지 않았을까’하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온몸에 온기가 스민다.
그의 집은 가파른 경사면에 걸터앉아 있었으며 2층으로 된 건물이 위채와 아래채로 나뉘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방은 위층에 있었고 창고나 주방은 아래층에 있어 층별 용도가 확실하게 구분돼 있다. 그 집의 한 켠에는 작은 구멍가게도 있어 정겨움을 더했다. 친절한 카르쟝의 어머니는 나를 위해 끌인 물을 내 왔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의 어머니 품 같은 처마가 있는 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자체가 평화롭고 안온했다. 의자에 앉아서 맑은 물을 끓여 만든 ‘백차’를 마시며 겹겹이 펼쳐진 앞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허공의 신선이 된듯하다. 발아래에서 흐르는 청록의 강(江)을 내려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시킴의 수도인 ‘강톡’(Gangtok)에서의 숙소와 영 다른 풍광이다.

낯선 이방인도 출가자라면 환대

 
티베트 전통양식으로 조성된 동시킴에서 남시킴으로 향하는 관문.

자연으로 돌아가신 노 라마는 평생 수행을 하면서 이곳의 산과 들을 도반 삼아 정진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세월을 보냈으리라. 이제는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렇게 가셨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모두 쓸어 담아낼 허공과 같은 넉넉함으로 중생들의 번뇌까지 짊어지고 가셨으니, 그 이름이 바로 ‘부처’요, ‘보살’이다.

“나무허공장보살마하살, 나무허공장보살마하살, 나무허공장보살마하살….”
오후 3시가 되자 노 라마를 위한 염불이 모두 마무리 됐다. 참으로 길었던 하루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거의 10시간이 더 되는 시간을 돌아가신 분을 위해 염불하고 많은 의식을 봉행했다. 특히 이곳의 아낙들은 한번 염불에 들어가면 쉬지 않고 정성스레 2~3시간씩 계속해서 염불에 열중했다. 그들의 지극한 염불은 어쩌면 중생들에게 무한의 믿음과 신뢰를 준 ‘노 라마의 법신’이리라.

염불을 회향하고 우리는 ‘강톡’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만난 오지마을의 풍경들은 ‘어젯밤 달려온 그 길인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다비식에서 담아 온 노 라마의 지혜와 자비,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밖에 그려진 풍경들은 그다지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길이 산비탈에 들어서 차창밖에 보이는 모습은 바로 계곡 건너의 건너편 산들이다. 워낙 지대가 높고 험한 터라 가끔은 움찔움찔 오줌을 지리게 할 만한 절벽과 난간에 질리기도 했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바닥에 철판을 깔았을 뿐 대단히 불안해 보이는 다리, 게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만큼 그 다리는 허름해 보이는 게 아닌가. 바로 아래는 깊은 계곡인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차가 올 때마다 요리조리 안전하게(?) 피해 다녔다. 차에 탄 다른 이들의 얼굴은 평안해 보이는데 유독 나의 얼굴에만 초행길이라는 표시가 확연할 정도로 걱정스러움이 가득하다.

“거기서 지내도 되나요?”
숙소로 돌아와 저녁 공양을 마치고 나서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덕킁 린포체에게 슬며시 여쭈었다.
“어디서?”
“오늘 다녀왔던 그곳이요.”
“그래도 되지.”

린포체의 대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꿰뚫어 보는 듯이 답하셨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바람이었을 뿐이고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음을 기약 할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의 일정을 관리하고 있는 ‘소남’이 거실로 들어서면서 린포체께 시킴 말로 무어라 한다. 우리는 그냥 묵묵히 지켜보았다.

 
도로 공사 중인 네팔인들.

“내일은 아침 10시에 출발합니다.”
린포체와 대화를 마친 ‘소남’이 출발 시간만 알린 채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린포체는 아무 말이 없이 계속 차만 우려냈다. 서너 잔의 차를 마신 뒤에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일부터 4일이나 5일간 서쪽으로 여행을 가세. 두 대의 차로 나와 시드니에서 온 다섯 명하고 소남네 식구들까지 함께 갈 것이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거긴 날씨는 어떤지요?”
“여기보다 조금 추워. 구루 린포체 성지도 갈 예정이야.”
설명을 하고 있지만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 모를 일이다. 그냥 가자는 대로 믿고 따라갈 뿐이다.
“미리 시킴에 대해서 공부라도 하고 올 것을….”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시킴에 대한 지식도, 하다못해 지도 한 장 없이 낯선 부처님의 성지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계획에 따라 가야하는 순례에 나서게 된 것이다.

린포체의 말 가운데 구루 린포체는 귀에 익은 단어라서 살짝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다비식에서의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구루 린포체의 성지 순례에 나서다니, 생각만 해도 오감이 찌릿하다. 인도에 오기로 결심을 했을 때보다, 캘커타에서의 첫 날밤보다 더 잠을 설칠 것 같다.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 그 분은 누구인가. 티베트 불교에 대해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알기 마련이다. 파드마삼바바는 ‘연화생대사’(蓮花生大師)라 번역한다. 그대로 풀어 쓰면 연꽃 봉오리서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구루’(Guru)는 ‘소중하다’는 뜻이니 ‘구루 린포체’는 ‘소중한 스승’을 일컫는다. 티베트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아 파드마삼바바가 밀교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위대하고 컸던가를 짐작케 한다.

티베트를 하나로 통일한 송첸감포 대왕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에 ‘탄트라 불교’, 즉 ‘밀교’를 홍포했다. 파드마삼바바는 당시 ‘미지의 숨겨진 남쪽 땅’이라고 소개하면서 티베트에 처음으로 시킴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신비로운 자취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가 머물렀던 성지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수행자들이 밀교를 전수받는 과정에서 신비로운 일들을 종종 체험한다.

그는 네팔과 부탄 그리고, 티베트에 밀교를 전했을 뿐만 아니라 시킴에도 지혜와 수행법을 전했으며 그 흔적들은 여전히 시킴 사람들에게 불심의 뿌리가 되고 있다. 그와의 인연이 있기에 시킴 땅에 티베트인들이 정착해 왕조를 세웠을 것이고 지금까지 이곳을 터전삼아 살아가고 있는 선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시킴 사람들은 시킴을 ‘구루 린포체의 땅’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구루 린포체와 인연이 깊다는 반증이다.
“옴 마 아훔 벤쟈 구루 벰마 시떼 훔 벤쟈 삼마야 쟈 시띠 팔라 후….”

구루 린포체 진언과 함께 시킴 향해 출발

 
노 라마가 머무르셨던 징침의 사원.

순례를 위해 차에 탔을 때 가장 많이 들려 온 진언이다. 바로 구루 린포체의 진언이다.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구루 린포체, 그는 이역만리 호주에 살고 있는 시킴 출신인 소남의 마음에도 가장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스승이다. 모든 시킴 사람의 마음에 부처님처럼 각인되어 있는 이가 바로 구루 린포체인 파드마삼바바이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 공양을 든 뒤 순례를 위해 간단하게 짐을 챙겼다. 일행은 두 대의 차로 여행을 시작했다. 시킴은 거의 모든 땅이 산지인 까닭에 길이 그리 넓지 않다. 그래서 지프차 같은 차들이 버스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5인승 소형 봉고 같은 차들이 택시이다. 앞차에는 린포체와 호주에서 간 네 사람이 타고 뒤차에는 나와 소남, 그녀의 세 딸 그리고, 두 명의 도우미가 같이 타고 길을 나섰다. 아이들이 셋이라 소남은 항상 도우미 두 명을 데리고 다녔다. 그들은 그녀의 친정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시킴은 동서남북의 네 지역으로 나뉜다. 강톡은 동시킴에 자리를 하고 있는데 서시킴과 동시킴 사이에는 남시킴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탄 두 대의 차량은 강톡 시내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서쪽으로 달렸다. 내가 탄 차가 힘차게 내달리니 이내 소남은 아이들과 함께 구루 린포체의 진언인 ‘옴 마 아훔 벤쟈 구루 벰마 시떼 훔 벤쟈 삼마야 쟈 시띠 팔라 후’를 30분이 넘도록 합창한다. 자꾸 듣다보니 그 음률이 마음에 조금씩 스민다. 진언의 힘이다.

오르락내리락 서쪽으로 달리는 길에는 여러 가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얼굴이 검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네팔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다. 인도가 영국에 점령을 당했을 때 시킴도 마찬가지로 점령을 당했었다. 그때 영국인들은 시킴지역을 수탈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네팔에서 데리고 왔다. 현재 시킴의 인구 절반 이상이 네팔계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주로 노동일이나 집안일 ‘도우미’에 종사하고 있다.

시킴의 화물차는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다. 정면 윗부분에 자신이 믿는 종교를 표시한다. 힌두교도는 그들이 섬기는 신의 사진을 중앙에 모시고 무사 운행을 기원한다. 불자들의 차량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을 모시고 ‘옴 마니 반메 훔’ 등 진언을 써 놓았다.

도로를 정비하는 곳에서 일을 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과 삽에 줄을 달아서 오직 인간의 노동력에만 의지해 공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1960년대 우리네 농촌과 비슷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거나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기예요.”
“뭐가요?”
“드디어 도착했어요. 구루 린포체 동상이 있어요. 저기 저기에.”

남시킴 ‘삼두룹제’(Samdruptse)에 도착한 것이다. 3시간을 달리다가 잠시 길 옆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려 다다른 곳, 그곳엔 구루 린포체의 동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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