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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淸心] 천당과 장로

기자명 법보신문

태풍이 온다고 했다. TV를 보노라니 불안해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주지라서 그럴까? 일어나 바람이 일기 시작한 도량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들어 왔다. 저녁예불 때는 아예 남쪽 바다로 향한 법당 정문은 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비바람을 염려하는 표정이 없다.

마침 멀리 프랑스에서 단체로 온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제주의 별칭이 삼다도인데 돌 많고 여자 많고 바람이 많아서인데 복이 많아서 한번 제주도에 오셔서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을 참으로 행운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는다.

아침이 되자 ‘덴무’는 벌써 제주를 떠났고 안개만 가득했다.
제주에는 정말 바람이 많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바람을 힘들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고호의 그림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숲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일까, 다음날 태풍이라는 말에 놀란 육지의 지인들이 안부전화를 해 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그저 일상처럼 느껴지는 바람이며 오히려 더위를 잊혀주는 듯한 시원한 비가 내렸다고 말해야 할까? 그저 안부 인사에 감사하단 말로만 대답했다.

살다보면 연속되는 자극이 나중에는 일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처음에 ‘섬기겠다’는 말이 참으로 어색했다. 이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라기보다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지칭해서 사용하던 술어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말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아주 상투적인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언어보다 자극적이고 빨리 다가오는 것도 드물다.

한번은 어린아이들이 다투는데서 ‘넌 죽어서 천당 가고 난 극락 가니까 만날 날이 없을 끼다!’ 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던 적이 있다. 직감적으로 불교와 기독교를 믿는 아이들이 싸우는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가 전에 나 자신도 천당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세계이고 극락은 불교도들이 가는 것으로 알았다.

출가하여 육조장경에 ‘사량악법 화위지옥(思量惡法 化爲地獄) 사량선법 화위천당(思量善法 化爲天堂).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해 지옥이 되고 선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된다’는 구절을 보면서 그 내용보다는 혜능대사 당시부터 천당(天堂)이라는 용어를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 어쩌면 개인적인 무지에서 기인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뿐만 아니다. 장로라는 말은 부처님 당시 승가 최고의 자리에서 덕과 권위를 겸비한 비구를 이르는 용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찰에서 일상용어로 사용하기에는 거북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기독교에서 평신도의 직책 명으로 사용하면서 마치 기독교 고유의 용어인 것처럼 느끼게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많은 곳에서 ‘사랑’이라는 말도 마치 가톨릭을 상징하는 듯 한 이미지로 변해버린 느낌마저 든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다. 특히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자주 사용하면 그 뜻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좋은 용어를 자주 사용하여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자주 접하다보니 태풍마저도 일상처럼 느껴지는 것에 비추어보면 우리 불교 용어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은 우리 불교문화마저 육지 사람들이 느끼는 태풍처럼 두렵고 어색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태풍이 오기 전에 우리 불교 고유어를 더욱 다듬고 사용해야겠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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