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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 스님의 茶담法담] 81. 방심은 금물

기자명 법보신문

깨어있는 삶이 운명조차 바꿔

쌓여 있던 사진더미를 정리하다 눈 덮인 서울 남산 순환도로의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잊고 있었던 안 좋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갑자기 많은 눈이 내린 어느 날인 것 같다. 저녁 한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눈다운 눈이 내려 반가운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가는 길을 걱정해야만 했다.

결국 예정 된 시간보다 한 참을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했지만 눈 소식에 다들 기분이 들떠있었고 또 오는 길에 일어났던 각자의 해프닝이 대화의 주제가 되다보니 분위기는 더 유쾌해 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지방에 행사가 있어 불가피하게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간밤의 눈이 밤늦게 뿌려진 염화칼슘과 뒤섞여 지저분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주하는 곳이 남산 중턱이다 보니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는데 바퀴가 굴러갈 때 보다 더 빠르게 밑으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괜히 차를 가지고 나왔다는 후회와 함께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안전하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생각에 몸과 마음은 극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었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차를 다루었다. 뒤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앞 차와의 안전거리도 충분히 넓혀 주었다. 그 때 약간 멀리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려는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헛바퀴 도는 바람에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듯 했는데 잠시 뒤로 후진했다가 탄력을 이용해 언덕길을 힘 있게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바퀴는 계속해서 빠르게 구르고 있는데 차는 오히려 뒤로 죽 밀려 내려왔다. 내 차도 더 이상 앞으로 가는 것이 위험해 잠시 정차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 밀려 내려온 차가 반대편 차선까지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당혹스러워 하는 운전자의 표정이 느껴졌다.

그 때 어느 젊은 아가씨가 밀려 내려오는 차는 보지 못하고 미끄러운 바닥에만 신경 쓰면서 아슬아슬하게 골목길을 막 건너려하고 있었다. 동시에 나를 비롯해 주변의 사람과 차량에서 경적과 고함소리를 내었지만 순식간에 그 불쌍한 아가씨는 밀려 내려오는 차에 부딪혀 옆으로 튕겨지며 넘어졌다. 승용차는 곧바로 멈추어 섰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길, 더러운 흙탕물에 굴러 버린 그 아가씨는 놀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여 어떻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 아가씨에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를 지나쳤는데 하루 종일 그 불행한 아가씨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도 함께 잘 살피며 걸었다면 그런 고통스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가씨에게 뿐만 아니라 살다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예기치 않은 불행은 찾아 올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정신을 잘 차리고 좀 더 지혜롭게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면 불현듯 찾아와 미래의 불행을 초래하는 정신적 충동이나 주위의 유익하지 않은 상황에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막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어나는 반응과 피해의 규모는 분명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장 스님 초의명상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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