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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라바 미얀마] ⑧ 물 위의 파라다이스 인레호수

기자명 법보신문

하늘조차 내려와 호수에 몸 담그다

 
잔잔한 인레호수의 물비늘 위로 햇살이 눕는다. 한 쪽 다리로 능숙하게 노를 젓는 인따족 어부는 인레의 넉넉한 품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꽁바웅 왕조의 마지막 수도 만들레이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불과 30분 만에 혜호 공항에 몸을 내린다. 미얀마 순례 기간 내내 비행기를 이용해 도시 간 이동을 하다 보니 30분 정도의 비행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체조마냥 가뿐하다. 이번 목적지는 인레 호수다.

만들레이, 바간에 뒤지지 않는 미얀마의 성지이자 최고의 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다. 인레호수가 위치하고 있는 냥쉐는 해발 875미터에 위치한 고원도시로 미얀마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선선한 기우를 자랑한다. 덕분에 유럽의 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가 바로 냥쉐, 그 중에서도 인레호수다. 이러한 명성을 익히 들은 탓에 인레로 가는 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인레호수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좋은 것을 쉽게 보여줄 리 없지 않은가. 혜호공항에서 인레호수까지는 약 1시간 반 가량을 차로 이동해야 한다. 그것도 해발 900여 미터를 오르내리는 산을 넘어가며. 그나마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비포장 길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자칫 방심하고 있다가는 의자 위에서 널뛰기를 할 수도 있다. 벌겋게 맨살을 드러낸 민둥산의 허리를 스멀스멀 감아 돌고 있는 산길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차는 아랑곳 않고 가파른 산길을 씩씩하게 올라가지만 이렇게 높은 산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산악지대 어디 즈음에 도대체 호수가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1시간 30분 여 정도 달려 산을 넘어온 버스가 평지로 접어들자 얼마 가지 않아 ‘인레호수 입장료 징수처’가 나온다.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징수처는 조금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곳을 지나자 곧바로 호수와 대면한다. 하늘조차 땅위로 내려와 쉬어가는 곳, 바로 인레다.

인레는 최대 길이 22킬로미터, 폭 11킬로미터, 수심 6미터에 달하는 미얀마 최대의 호수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호수의 크기와 모양이 크게 변하지만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자 호수 안팎에 200여개의 부락이 형성돼 있는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다.

인레호수를 돌아보기 위해 작은 모터보트로 옮겨 탄다. 날씬한 모터모트가 물결 잔잔한 호수 위를 가르며 긴 꼬리를 남긴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이고, 뱃전에 부딪힌 파도가 부서지며 퍼지는 물비린내는 풀내음을 머금고 있어 오히려 상쾌하다. 덩달아 햇살도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오른다. 험난한 산길을 1시간 넘게 달려온 피곤함이 물기를 머금은 바람에 휩쓸려 떨어져나가는 듯하다.

호수 곳곳에서는 작은 나무배에 의지해 고기를 잡는 인레호수의 어부들이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고 있다. 유명한 한 다리 노 젓기의 주인공들인 인따족이다. 이들은 배 위에 외다리로 서서 한 손으로 노를 잡고 나머지 한쪽 다리로 긴 노를 감아 능숙하게 휘젓는 재주를 갖고 있다. 덕분에 한가하게 된 나머지 한 손은 커다란 통발같이 생긴 어구를 호수 이곳저곳으로 밀어 넣으며 고기를 잡는다.

 
인레호수의 명물인 물 위의 밭 쭌묘.

인따족은 이렇게 한 다리로 노를 저으며 고기를 잡는 재주 외에도 호수 위에 밭을 만들어 각종 야채를 재배하는 탁월한 농부이기도 하다. 쭌묘라고 불리는 이 밭은 워터히아신스라는 풀을 흙과 섞어 물위에 띄운 후 호수에서 건진 수초와 진흙을 그 위에 계속 쌓아 만든 밭이다. 물론 물위에 떠있다. 그래서 밭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대나무 기둥을 호수 바닥에 밖아 밭을 묶어 놓았다. 쭌묘 위에서는 토마토, 가지 등 각종 야채와 과일 등을 재배하는데 호수에서 건져 올린 수초와 진흙이 천연비료역할을 하는 덕분에 인레호수에서 생산된 야채와 과일은 맛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도 침수될 염려 없이 언제나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도 쭌묘의 장점이다.

물 위에 밭을 만든 인따족의 고향

 
11세기 샨족이 조성한 불탑의 숲 인떼인 유적.

집도, 학교도, 상점도 모두 호수 위에 있지만 간혹 수심이 얕은 곳에 드러나 있는 언덕에는 여지없이 파고다가 세워져 있다. 한 뺨 땅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탑을 세우는 미얀마 사람들의 신심이 이곳 인레호수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레호수는 사실 미얀마의 내륙지역인 샨주의 가장 대표적인 성지로 손꼽힌다. 이곳 인레호수에 자리 잡고 있는 파웅더우사원 때문이다.

파웅더우사원은 1120년 바간왕조의 알라웅시투왕이 약 5cm의 불상 세 개와 아라한 상 두 개를 가져와 이곳에 모시면서 세워진 사원이다. 그 후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이 이 다섯 개의 불상에 계속 금박을 입히면서 그 모양이 두루뭉술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마치 다섯 개의 눈사람 내지는 아령처럼 보일 지경이 되었다. 이 다섯 개의 불상을 미얀마 불자들이 이처럼 성스럽게 여기는 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파웅더우사원에서는 매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파웅더우 축제가 열린다. 이때가 되면 다섯 개의 불상을 모두 배에 싣고 20여 일간 인근 마을을 모두 돌아다니며 마을마다 잔치를 벌이는데 1970년대 중반 축제 때 그만 배가 전복되며 불상이 모두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배가 전복된 자리에서 4개의 불상은 건져냈지만 나머지 한 개는 끝내 찾지 못했다.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채 4개의 불상만을 모시고 파웅더우사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웅더우사원에 돌아와 보니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마지막 불상 한 개가 좌대위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불상은 마치 금방 호수에서 걸어 나온 듯 수초를 뒤집어 쓴 채였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의 불자들이 파웅더우사원을 찾아 이 다섯 부처님께 금박공양을 올렸고 결국 다섯 부처님은 지금과 같은 동그란 모습이 되어버렸다. 사원에서는 이때부터 해마다 축제 때가 되면 4개의 불상만을 배에 모시고 나머지 하나는 반드시 사원에 남겨둔다고 한다.

 
목에 황동고리를 감아 목을 길게 만든 파동족 여인.

인레호수에서는 어디를 가든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상점도, 식당도 모두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그 가운데 관광객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상점이 있다. 바로 여인들의 긴목으로 유명한 파동족(또는 카렌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파동족은 원래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역에 살던 소수민족이다. 파동족 여인들은 어려서부터 목에 황동으로 된 묵직한 고리를 착용해 목을 점점 길게 만드는 풍습이 있다. 여자아이가 5살이 되어 성인식을 하면 아이의 엄마는 딸의 목에 황동고리를 감아준다.

긴 고리를 턱밑까지 감아올려 목을 길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고리를 감아 결국엔 황동고리가 칭칭 감긴 긴 목을 갖게 만든다. 고리가 목뼈 사이를 늘려 목을 길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거운 황동고리로 인해 어깨가 내려앉아 목이 더 길어 보이는 것이란다. 파동족 여인들에게 이런 풍습이 생긴 이유로는 몇 가지가 제기되는데 긴 목이 아름다움과 부의 상징이라는 주장, 목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듯이 한 눈 팔지 말고 평생 정절을 지키라는 뜻, 이민족이 침입했을 때 사실상 노동력이 없는 여인들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등등.

어느 것이 정확한 이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여인들은 그 긴 목을 보려고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관광상품을 파는 ‘홍보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파동족 사이에서도 요즘에는 이런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곳 인레호수에서 만난 파동족 여인들의 어깨가 가벼워질 날은 아직도 멀게만 보인다.

금박 공세에 동그랗게 변한  다섯 부처님

 
파웅더우사원에 모셔져 있는 다섯 분의 부처님.

인레는 거대한 호수지만 곳곳에서 포클레인을 동원해 호수바닥을 파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 없는 가뭄으로 수심이 얕아져 배가 다니기 힘들어지자 포클레인을 동원해 호수바닥을 파내는 것이다. 어떤 곳은 수심이 어른 무릎정도밖에 오지 않아 걸어 다녀도 될 정도다. 인레 호수 남쪽에서 작은 지류를 타고 30분쯤 들어가면 인레호수의 5일장인 인떼인 시장이 나오는데 그곳으로 가는 지류도 물이 말라 배가 가지 못한단다. 그곳에는 11세기경 샨족이 조성한 약 1500여 기의 파고다가 정글처럼 흩어져 있는 인떼인 유적이 있다.

인위적인 관리가 되지 않아 훼손이 심하기도 하지만 제 맘대로 자라난 풀과 나무 사이에 파묻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파고다들이 색다른 감회를 주는 곳이다. 하지만 비가 넉넉히 내려 다시 물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육로를 이용해 한 참을 돌아 가야하니 이번 여정에서는 인연이 닿지 않는가 보다. 아쉬움을 달래며 뱃머리를 돌린다.

인레호수는 미얀마 성지 순례의 지대방이다. 탑의 나라 바간, 미얀마 불교의 심장 만들레이를 거치며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감동 못지않게 차곡차곡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풋풋한 녹차 같은 맛이다.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는 길은 마치 시원한 대숲사이를 거니는 오후의 포행 같은 휴식이다. 무엇보다도 넉넉한 호수에 기대어 소박한 삶을 꾸려가며 한 뼘 땅에도 탑을 세우는 이곳 사람들의 신심이 인레호수의 푸른 빛깔만큼이나 눈부시게 반짝이는 곳. 시간이 멈추어도 좋을 만큼 푸근한 호수 위에서 오래도록 시간이 멈추길 바래본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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