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가 말을 걸다] 18. ‘그린 존’

기자명 법보신문

전쟁,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미국의 검은 욕심을 파헤치는 밀러 준위.

2003년 3월 20일 오전 5시경. 고요했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화염에 휩싸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한 도시는 아비규환 그 자체가 됩니다. 미국의 바그다드 대공습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바로 민주주의 안착과 이라크 내 대량 살상 무기의 제거였지요. 정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001년 9.11 테러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했습니다. 1년 뒤 미국은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하기에 이릅니다.

정말 미국은 민주주의의 안착과 대량 살상 무기의 제거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미국의 이라크전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였습니다. 미 육군 로이 밀러 준위는 이라크에 숨겨진 대량 살상 무기 제거 명령을 받고 바그다드로 급파됩니다.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한 일급 정보에 따라 수색 작전을 펴지만 매번 허탕을 칩니다. 그리고 세계평화라는 거대한 명분 속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밀러 준위는 프라디라는 이라크인과 함께 진실을 파헤칩니다. 은폐하려는 미국 국방부와 사실을 알려는 밀러와 프라디. 진실에 다가갈수록 밀러와 프라디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프라디는 계속해서 밀러에게 질문을 던지지요. “우리에게 왜 이러느냐. 이라크가 어찌됐건 당신이 결정한 일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쓴웃음 짓게 만드는 모습과 마주합니다. 바로 ‘그린 존’입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후세인이 사용하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구역이지요. 이른바 전쟁 속 안전지대입니다. 이곳에는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클럽뿐만 아니라 댄스 교습소까지 있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지된 술까지 허용되지요. 미군 장교들은 담 너머의 유혈 사태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시내에서 물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쏟는 이라크인들과 수영장에서 한가로이 물놀이를 하는 미군들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 종료 선언 후 만 7년이 지났음에도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지배권 다툼, 권력싸움 등등. 3월 7일 열린 이라크 총선에선 테러로 인해 24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습니다. 미국이 심으려던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일까요.

미국의 욕심은 8만 7천여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난민수는 450만 명에 이르며 미군 사망자도 4천여 명에 달합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웠습니다. 반면 ‘그린 존’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미국 군 수뇌부들. 인류를 위협하는 대량 살상 무기는 욕심이 아닐까요. 전쟁,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야말로 ‘인간실격’입니다. 문득 광주민주화항쟁을 잠재우려던 전두환 정권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가 떠올라 씁쓸합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