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 순례] 8. 작은 도량서 만난 청빈한 삶

기자명 법보신문

공양간 살강은 우리네 시골의 풍경

 
캉첸중가가 굽어 살피는 시킴의 새벽.

“그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 덕킁린포체의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한마디 말에 모두가 눈을 떴다. 시계를 보지 않아 좌선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지 모르겠으나 모두가 눈을 뜬 뒤 약속이나 한 듯 린포체를 바라보았다. 매번 입정이 끝나면 각자의 명상을 진단해 주셨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관상(觀相,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으로 부처나 보살의 모습을 마음에 떠올리면서 하는 수행)을 배운 제자들이었기에 명상에 들었을 때 개개인의 문제점을 일러 주셨는데 신기한 것은 늘 잘못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내신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명의(名醫)가 진단을 해서 병명과 치료법을 일러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니는 너무 긴장했어. 항상 편안하게 해.”
린포체는 시드니에서 함께 온 ‘제니’에게 이 말만 하고 일어났다.
수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이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우리가 앉았었던 ‘산칵촐링사원’의 바위 옆에는 스투파가 줄을 지어 조성돼 있었다. 많은 스투파들을 모신 장소는 마치 수행의 위없음을 드러내고 싶어서인지 사람 키보다 높게 돌로 벽을 쌓아 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타쵸’로 주위를 장엄했다.

‘타쵸’는 깃발 모양으로 된 불경을 적어 놓은 천인데 대개 가로 폭이 좁고 세로의 길이가 길다. ‘룽다’와 같은 의미인데 ‘룽다’는 작아서 운반하기 쉽고 걸기에도 편해 만국기처럼 도량이나 스투파 주위에 걸어 놓기도 한다. ‘타쵸’는 주로 대나무에 걸어 세워놓는다. 어떤 곳에는 흰색의 ‘타쵸’만 걸려 있는 곳도 많은데 특히 ‘스투파’ 주변에는 흰색이 주를 이룬다. 문득 송광사 부도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비전’(碑殿)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거룩한 법명만 남았지만 당대를 대표했던 선승들의 선지(禪知)는 중생들의 마음에 여전하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그것을 남기려는 정성은 티베트나 대한민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마당 끝 난간에 매달린 채 세월을 보냈을 스투파 두 기는 과연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중 한 기는 흰색을 칠했으나 마모된 모습이 무척이나 오래돼 보였다. 그 옆에는 돌무더기처럼 말없이(無言) 서 있는 스투파도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일까, 풀이 숲을 이루어 스투파를 에워싸고 있다. 그래도 아무런 투정 없이 묵묵히 서 있는 스투파는 그 주인처럼 ‘말없는 법문’을 설하듯 그냥 그렇게 서 있다.

“자 이제 갑시다.”
일정 담당인 ‘소남’이 채근한다. 마당에 한 가득 빨래처럼 펄럭이고 있는 ‘타쵸’와 쓰러질 듯 서있는 양철지붕 아래 흙벽돌 도량을 둘러보고 있을 때 ‘소남’은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때가 됐음을 알렸다.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막 몸을 돌리니 나무숲 뒤로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또 ‘캉첸중가’였다. ‘캉첸중가’가 보이는 순간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나도 모르게 얼굴과 마음에 웃음이 번지면서 나의 손은 위대한 산신을 향해 합장한 채 예를 갖추었다.
“저기 저 아래에 보이네요.”

말없는 법문 설하는 스투파

 
덕킁린포체가 복원 중인 사찰 법당의 석가모니불.

다시 굽이치는 산길로 들어섰다. 동서남북으로 오락가락하니 나침반이 없이는 도저히 방향을 알 길이 없다. 한 참을 달려 또 다른 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등성이가 아닌 비탈에 있는 폐사지였는데 린포체께서 복원을 하고 있는 도량이다. 법당 뒤에 이끼가 잔뜩 낀 채로 고즈넉하게 서있는 스투파를 보고 있자니 린포체께서 복원을 하는 데에는 아주 특별한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에 여러 개의 화장실을 새로 조성한 것을 보니 지금이야 법당 한 채와 후원 건물만 있지만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공양을 드시지요.”
아직 단청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법당 안에는 구루린포체를 주불로 모신 불단이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나니 점심 공양을 내왔다. 여기에서도 린포체와 나는 법당에서 공양을 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 마련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엔 세랍이 많으신 노(老) 라마가 주석을 하고 계셨는데 그 분은 바로 강톡에 있는 숙소 여주인의 부친이었다. 공양을 마친 린포체께서는 노 라마와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었고 나는 도량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법당 앞쪽으로는 콘크리트로 된 좁은 산길이 나 있었고 그 주변에는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산길을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꾹 참고 차밭을 구경했다. 그 곳의 차나무는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한국의 그것과 생긴 모양이나 꽃이 너무나 많이 닮았다.

그 절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잡아 끈 것은 공양간의 풍경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모습과 요즘의 싱크대라 할 수 있는 ‘살강’은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 있는 외가의 부엌에서 보았던 것을 빼닮았다. 음식을 끓이기 위한 아궁이와 부엌의 풍경은 나를 20~30년 전 외갓집으로 이끌었다.
‘한량없는 세월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한량없는 세월이로다.’

 
시킴의 작은 도량 공양간에서 만난 아궁이가 우리네 옛 농촌의 여느집 부엌처럼 정겹고 친근하다.

방으로 불길이 향하지는 않았지만 아궁이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불길 위에 놓인 큰 솥에는 음식이 끓고 있었다. 우리와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그들도 밥을 짓고 있었고 밥을 먹고 있었으며 말은 달라도 시킴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함께 만나고 있다. 아궁이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둘로 나뉘었던 ‘나’라는 존재가 하나가 됨을 알아차린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하고 있다’는 충만한 느낌이 오감으로 밀려온다.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들과 풍경들이 시킴의 작은 사찰 아궁이를 보면서 영상처럼 확연해지니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렁인다. 살짝 살갗이 떨린다.
“차 드실래요?”

낮에만 몇 잔의 ‘짜이 차’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나의 더부룩한 속을 달랠 유일한 치료법은 린포체의 손에 있었다. 중국인이 공양올린 ‘보이차’만 마시면 속이 금세 시원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모텔 주인에게 끓인 물을 준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차 도구를 꺼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모텔 주인이 보온병에 한가득 물을 채워 올라왔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 차를 마셨다. 어젯밤에 마신 차에 그들 역시 매료된 것 같았다. 그 날 세 번째 사찰을 방문했을 때 모텔의 남자 주인은 차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식구들을 이끌고 차를 마시겠다는 일념으로 거실로 함께 온 것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린포체께 여쭈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궁금증을 언제나 확실하고도 편안하게 풀어주셨기에 린포체를 존경하고 잘 따르는 것이리라. 순례자들은 린포체 주위로 모여들었다. 누군가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단박에 답을 얻는 것이 그 얼마나 큰 복덕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어렸을 적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질문에 대해 한 점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 명답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은 단연코 없다고 생각했었다. 오만하게도 어떤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예단했었다.

출가 이후에도 오만함은 가시지 않았다. 부처님의 말씀과 관련해 질문을 했을 때 ‘실천적인 경험에서 체득한 답을 주셨던 분들이 내 주변에 몇이나 있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 스승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스승을 몰라본 나의 잘못이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살펴 어루만지면서 답을 주고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 것도 구도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를 들어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의 업장이 얼마나 두터웠는가’를 린포체와의 문답에서 조금씩 풀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두터운 업장도 자연스레 씻어 낼 수 있었다. 마음이 열리니 주위의 모든 것이 나의 스승으로 거듭났다. 오만했던 마음을 참회하고 내려놓았다. 순간순간 입에서 튀어 나온 말들에 깃든 부정의 기운을 참회하기 위해 그 날 밤은 참회진언을 하며 잠에 들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전날 보았던 ‘캉첸중가’가 일출이 드리웠을 때의 장엄함은 어떨까. 직접 보고 싶었다. ‘캉첸중가’의 일출을 보기 위해 전날보다 일찍 일어나려고 시간까지 맞추어 놓고 잠을 잔 덕에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날 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어린 아이처럼 창문 밖을 보았다. 하얀색의 모자(캉첸중가의 봉우리를 덮은 만년설)가 동틀 무렵 태양의 빛을 받으니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서둘러 세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해가 뜰 무렵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 나 홀로 깨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대를 좋아한다.

모텔 앞길에서 위쪽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집들을 구경하면서 ‘캉첸중가’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힘껏 호흡을 했다. 위쪽으로 오르던 발길을 돌려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저 아래에서 린포체께서 올라오고 있었다. 늦잠을 잤을 때는 게으른 수행자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참회했는데 그날만은 당당했다. 일찍 일어났기에 ‘나는 적어도 게으른 수행자는 아니야’라며 자만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린포체에게 다가가는 나의 당당함은 마치 오늘의 부지런함으로 과거의 게으름을 모두 용서 받겠다는 욕심에서 올라온 것을 알아 차렸기에 서서히 누그러졌다.

소박한 부엌엔 과거-현재 공존

 
‘아차만갈라’(Ashtamangala)로 장엄한 창문.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네.”
린포체에게 다가가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린포체께서도 평소처럼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신다. 말없이 뚜벅뚜벅 모텔 쪽으로 올라오니 이번엔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온 시드니의 제자인 ‘야리’가 다가온다. 그녀는 순례자들 가운데 가장 정진을 잘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정진은 출가자인 나를 숙연하게 만들 정도였다.

모텔 건너편 건물 창문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티베트 불교에서 부처님을 표현하는 ‘타시따갸’(Tashi Thagay)였다. ‘타시따갸’는 산스크리스트어로는 ‘아차만갈라’(Ashtamangala)이다. ‘타시’는 ‘행운’이라는 의미이며 ‘따갸’는 ‘여덟’을 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시따갸’ 보다는 영어로 ‘Eight Lucky Signs’(여덟 행운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다. 여덟 개의 행운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덩카’(Dungkar)는 흰색의 소라고둥으로, ‘부처님의 목소리’를 의미하고 두 번째 ‘팔푸’(Palbheu)는 끝없는 선으로, ‘윤회’를 일컫는다. 세 번째 ‘써냐’(Sernya)는 물고기로, ‘부처님의 눈’이며 네 번째 ‘크호로’(Khorlo)는 수레바퀴로, ‘불법’을 뜻한다. 다섯 번째 ‘붐파’(Bhumpa)는 보병(寶甁)으로 ‘지혜’를 의미하며 여섯 번째 ‘걀첸’(Gyaltsen)은 승리의 깃발로, 고통스런 윤회에서의 ‘해탈’을 의미한다. 일곱 번째 ‘페마’(Pema)는 연꽃으로, 근원적 순수인 ‘불성’을 의미하며 마지막으로 ‘덕’(Dug)은 일산으로, ‘고통으로부터의 보호’를 뜻한다.
“줄 것이 없네, 이거라도 받으시게.”

덕킁린포체께서 지난해 시드니를 방문 했을 때 시킴에서 가져온 ‘타시따갸’를 나에게 주셨었다.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든 것이었는데 얼른 보기에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여덟 가지 행운의 상징들이 무더기로 어설프게 조각이 되어 있었고 채색도 되지 않아 ‘좀 더 좋은 것을 주시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의미를 깨닫고 나니 그런 마음이 봄볕에 눈이 녹아 흘러내리듯이 말끔히 사라졌다. 진리의 한 구절이 마음으로 스민다.
‘만약 모습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소리로서 나를 구하면, 이것은 삿된 도를 구하는 것이어서, 여래를 볼 수가 없도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