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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라바 미얀마] ⑨ 다시 양곤으로-연재를 마치며

기자명 법보신문

붓다 지혜 가득한 땅에 행복한 미소 영원하리

 
10대 소년들의 단기출가의식인 신쀼행렬. 싯다르타 왕자와 같이 화려하게 치장한 소년의 출가를 축하하며 가족 모두가 사원을 참배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이 여행이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면 그것은 방랑이지 여행은 아닐 터. 순례 또한 마찬가지다. 가고 가다 보면 결국엔 내가 서 있는 곳, 내 마음자리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 순례를 통해 내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방황일 뿐 순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미얀마 순례의 마지막 여정에서 처음 출발지였던 양곤으로 향하는 것은 출발의 자리로 돌아가는 여행의 참 의미인 동시에 미얀마 불교의 심장, 그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순례의 마지막 통과의례와도 같다.

양곤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걸음은 그래서 아쉬움보다는 설렘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미얀마 도착 첫날 아직 어스름한 새벽 아래 두고 떠나온 쉐다곤의 자태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여행의 첫 발을 때는 듯 가벼운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미얀마의 젖줄인 이라와디강 하구에 위치한 양곤은 우리에게 랭군이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미얀마 정치, 경제의 중심지다. 1989년 군사정부가 영국 식민지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목적으로 도시의 이름을 옛 지명인 양곤으로 환원시키면서 지금은 양곤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리고 있다.

1755년 알라웅퍼야왕이 몬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게 된 이 이름에는 ‘적을 무찌름’이라는 미얀마인들의 자부심의 서려있다. 2005년 미얀마의 행정수도가 네삐도로 이전해갔지만 여전히 양곤은 미얀마의 심장부다. 특히 미얀마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세계적 불교성지 쉐다곤파고다가 위치해 있어 양곤은 전 세계 불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양곤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자 쉐다곤파고다가 그 빛나는 얼굴을 보여주며 반갑게 일행을 맞이한다. 쉐다곤파고다의 외관은 마치 금방 단장을 마친 듯 눈부실 만큼 화려하다. 하지만 이처럼 말쑥한 쉐다곤파고다의 역사는 무려 2500여 년에 달한다. 그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쉐다곤의 건립설화는 붓다의 흔적과 맞닿아 있다.

현재 쉐다곤파고다가 위치한 자리는 팅구터라로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당시 이곳은 과거 삼불의 유물이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땅이었다. 2500여 년 전 붓다 재세시 이 지역은 투우나부미의 왕 오칼랍파가 지배하고 있었다. 오칼랍파왕은 과거 삼불의 유물이 안치돼 있는 팅구터라 언덕을 자주 찾아 이 땅에 다시 붓다가 출연하기를 기도하곤 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왕은 이 언덕을 찾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멀리 인도의 수행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어 붓다가 되었다. 정각을 이룬 붓다는 오칼랍파왕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그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었다. 붓다가 선정에든지 49일이 되던 날, 그 앞을 지나가던 몬족의 상인 타포타와 발리카는 선정에 든 붓다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는 자신들의 무사귀환을 발원하며 붓다에게 봉밀(꿀떡)을 공양했다. 붓다는 공양에 대한 답례로 머리카락 여덟 가닥을 뽑아 이들에게 주었다.

‘승리의 도시’서 빛나는 쉐다곤

 
미얀마의 수도 양곤의 심장으로 불리는 쉐다곤 파고다. 2500여 년전 붓다의 머리카락을 봉안해 조성되었다고 하는 전설의 쉐다곤은 이후 수 많은 불자들의 보시로 지금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붓다의 머리카락을 받아든 두 상인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고 오칼랍파왕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붓다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오칼랍파왕은 환희심에 젖어 곧바로 붓다가 현신한 팅구터라 언덕에 여덟 가락의 불발을 안치해 쉐다곤파고다를 세웠다. 쉐다곤파고다의 유래를 전하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 속에는 붓다와의 각별한 인연을 내세우는 미얀마사람들의 불심이 가득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더구나 이 탑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들어 보면 미얀마사람들의 지극한 불심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미얀마는 매년 찾아오는 6개월간의 우기동안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 붓는 전형적인 열대기후지역에 속한다. 특히 양곤은 이라와디강변에 위치한 넓은 평야지대인 까닭에 조금만 비가 내려도 곳곳이 물에 잠기기 일쑤다. 미얀마사람들은 이러한 우기에 대비해 쉐다곤파고다를 짓기 전 팅구터라 언덕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 공사를 감행했다.

인근 지역에서 흙을 퍼 올려 1만 여 평이나 되는 거대한 언덕에 쌓아 올린 것이다. 그것도 무려 60여 미터나. 그렇게 해서 지금의 쉐다곤파고다는 양곤 시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언덕위에 자리 잡게 되었고 흙을 퍼낸 곳에는 인공 호수가 조성되었다. 그 호수가 바로 쉐다곤파고다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깐도지 호수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쉐다곤파고다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가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인 듯 여겨져 새롭게 보인다.

처음 조성된 쉐다곤파고다의 높이는 약 16미터에 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쉐다곤파고다의 높이는 무려 100여 미터에 달한다. 15세기경 몬족 바고 왕조의 신소부 여왕이 자기 몸무게와 같은 무게에 해당하는 약 40킬로그램의 금을 보시해 파고다의 외벽에 붙인 것이다. 이후 미얀마의 왕과 왕비들이 계속 해서 금을 보시해 탑의 외관을 장엄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파고다의 외벽에는 약 1만3000여 개의 금판이 붙어있는데 그 무게만도 무려 60여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 외관에 붙어있는 금을 가격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라는 불경스런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하지만 지금도 2년 마다 한 번씩 파고다에 기증된 금과 보시금을 모아 파고다 외벽에 새롭게 금을 부착한다니 이런 속된 셈법은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특히 파고다 꼭대기를 장엄하고 있는 높이 10미터의 일산 티(Hit)에는 76캐럿 크기의 초대형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5448개의 다이아몬드와 2317개의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등 각종 보석들을 비롯해 1065개의 금종, 420개의 은종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일반 신자들이 앞 다투어 보시한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등 온갖 금붙이들이 주렁주렁 엮여져 일산을 장엄하고 있다. 파고다 옆에는 이 일산을 탑 위에 봉안하기 전 촬영한 사진들과 당시 몰려든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는데 그 화려함과 엄청난 크기, 어마어마한 인파의 규모에 압도 당해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다.

사진을 보고 나니 쉐다곤파고다의 꼭대기 아득히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점으로 빛나고 있는 일산에 시력을 맞추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짧은 목을 쭉 빼고는 아등거린다. 한 동안 우스꽝스런 자세로 하늘만 올려다본다. ‘사람의 끝없는 욕심이 저 아득한 곳까지 치달아 오르는구나.’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슬며시 고개를 숙이다.

그런데 빛나는 것은 파고다 꼭대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욕심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나니 그제야 땅 위의 빛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어린 아이들의 출가 의식인 신쀼행렬이다. 10대 소년들의 단기 출가 의식인 신쀼는 마치 흥겨운 축제처럼 가족 모두가 동참한 가운데 넘치는 활기와 기쁨 속에서 치러진다.

단기출가 ‘신쀼’는 행복한 축제

 
미얀마 사람들에게 사원은 예배의 공간인 동시에 모임, 공부, 휴식이 모두 이뤄지는 생활공간의 연장이다. 법당에 앉아 불교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의 모습에서 미얀마 불교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

단기출가를 앞두고 있는 소년들은 마치 왕자 싯다르타처럼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일산을 받쳐 든 이의 시봉을 받으며 파고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봉안돼 있는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형제와 가족들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각종 공양물을 받쳐 든 채 출가를 앞둔 소년의 뒤를 따른다. 아이의 아버지는 출가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한다. 그들의 흥겨운 모습에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조차 환희심이 일어날 정도다. 그들에게 출가는 세속의 그 어떤 지위나 명예와도 비견할 수 없는 최상의 영광, 인천의 스승이 되는 지극한 기쁨 그대로인 것이다.

쉐다곤파고다에서는 신쀼 의식 외에도 삼삼오오 모여 불교공부를 하는 미얀마의 청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법당 한 쪽에 모여 앉은 20대의 청년들은 경전을 펼쳐놓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거나 불교 교리 이야기를 듣는다. 사원은 그들에게 기도와 예배의 공간인 동시에 자연스론 모임의 장소이자 교실이기도 하고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성스럽고 엄숙한 공간인 동시에 생활의 일부인 곳, 그렇기에 그들의 신심과 신행 또한 생활 속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한 낮의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아 눈부시게 발산하고 있는 쉐다곤파고다의 하얀 대리석 바닥은 이미 한 발 내딛기조차 버거울 만큼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하지만 그 사원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쀼 의식과 스님들의 순례, 청년들의 토론, 그리고 사원 곳곳을 뛰어다니며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로 인해 사원은 태양빛 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다.

높은 탑 그림자가 시원하게 드리워진 그늘에 앉아 이 모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파랑새를 찾아 먼 길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츠르 남매가 떠오른다.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의 파랑새는 멀고 먼 나라나 미래의 어느 곳이 숨겨져 있는 보물이 아닌 집안에서 기르던 평범한 비둘기였다. 미얀마 사람들의 파랑새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오랜 군사독재와 낙후된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순수하고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도록 지켜준 그들의 파랑새 또한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붓다의 지혜를 통해 지금 이 자리, 자신들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행복을 발견할 줄 아는 이들. 미얀마 사람들의 그 맑은 신심은 가난하고 억압된 세상 속에서도 그들의 삶을 빛나고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다. 그 무한한 신심 앞에 머리 숙이며 이 땅 위에 그들의 삶이 영원히 이어지길 발원한다. <끝>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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